어두운 욕망의 먹이사슬 끄트머리에서 마지막 식사를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춘권(春卷) (작가: 엄성용, 작품정보)
리뷰어: 글포도, 10월 6일, 조회 75

전 배가 고픈 상태였습니다. 요즘 좀비 소설을 쓰느라 고민인데 점점 잔인한 장면들도 써야 하는 시점이라 퍽 고민입니다. 사람을 뜯어먹는 장면을 실감나게 써야 하는데 너무 어렵네요.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한켠님의 <사람이 사람을 먹을 때> 큐레이션이 눈에 띄어서 작품들을 훑어보았습니다. 부지런한 독자가 아닌지라 아직 읽어 본 작품이 없습니다. 댓글에 반가운 제목이 하나 눈에 띄어서 다시 읽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후안님이 소설 말미에 11년 전, 질풍노도의 시절에 쓰셨다는 소설입니다.

전 이 소설의 전반부에 가난에 대해 쓴 문단 전체가 퍽 마음에 듭니다. 적당한 지점에서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약간 느슨한 서술도 마음에 들고 전체적으로 간결하게 끌어가다 재빨리 끝내버린 것도 좋았습니다.

읽는 내내 주인공과 같이 몽롱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는 상태가 너무 길어지면 답답했을 거니까요. 돼지처럼 먹어대는 사장을 바라보면서 차츰 차츰 진실을 알아가는 전개도 좋았습니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도 충격적이지만 이 소설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분량임에도 꽤 강한 임팩트를 주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야기입니다. 읽은 지 꽤 되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고 또 읽고 싶어지는 걸 보면 저한텐 그때 엄청난 충격을 줬던 건 사실인듯 해요.

좀 다른 얘기를 덧붙이자면,

제가 식인에 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한 건 <<301.302>>(박철수 감독, 1995)라는 영화에서였습니다. 음식을 거부하는 여자와 요리에 집착하는 여자가 이웃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지요. 욕망과 먹고 먹히는 관계를 독특하게 표현한 영화입니다. 또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피터 그리너웨이 감독, 1989) 라는 영화에서도 아주 충격적인 식인 장면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 더 충격적인 건 소중히 여기는 책을 그 주인에게 뜯어서 꾸역꾸역 먹여 죽이는 장면이었지만요.

이 영화들은 욕망과 그 복수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오래전에 본 이 영화들을 떠올렸습니다. 심상하게 시작해서 충격적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보는 과정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각 개인의 욕망이 닮았습니다. 자신이 품은 잘못된 욕망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개인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도요. 게다가 그 대가가 너무 혹독해서 안타깝기도 하지요.

이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뭔가를 욕망하고 그 욕망의 먹이사슬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무너뜨리게 만듭니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나’는 마지막까지 살아있으나 결코 승리자는 아닙니다. 가장 잔인한 대가를 치루기 위해 대기중일 뿐이니까요.

이런 이야기들에 비하면 영화 <<얼라이브>>에서 내 엉덩이를 먹으라는 친구들은 정말 귀엽습니다. 그건 어두운 욕망이라기보다는 식욕이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니 이 이야기와는 약간 동떨어진 이야기 같습니다.

예전에도 리뷰를 한번 쓰고 싶었으나 ‘식인’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망설이다 포기했는데 저 큐레이션으로 이미 다 알려졌으니 읽은 김에 리뷰를 써봅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정도론 스포일러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밖에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식탁 앞에는 기름기 번들거리는 튀김을 뜯어먹는 고용주 앞에 마주 앉아 있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 식사의 끝엔 뭐가 있을지 짐작할 수 있을까요? 전혀 감이 안 오시죠? 그러니까 읽어보셔야죠.

 

전 다 읽고 나니 입안에서 욕망에 버무려진 사람맛이 납니다. 왠지 그 미지의 독특한 맛을 아는 기분이 들어요. 여러분도 한번 그 으스스한 맛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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