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함 속에서 펼쳐 보이는 무한한 상상력 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밤바다 (작가: 홍윤표, 작품정보)
리뷰어: 고수고수, 19년 9월, 조회 225

우선 리뷰에 앞서, 홍윤표 작가님의 ‘밤바다’, ‘여름휴가’, ‘빈말 주식회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작품을 미리 읽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스포일러 숏코드를 사용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좀 귀찮은 일…이 아니라 길어야 4매, 짧으면 2매짜리 엽편이기 때문에 한 문장만 언급해도 스포일러가 되어 버리거든요. 아마 저 세 작품을 다 읽는다 해도 이 리뷰보다 더 짧을 것 같으니 리뷰 읽는 김에 작품 먼저 읽어 주세요.

 

롬아지 님이 쓰신 ‘빈말 주식회사’ 리뷰를 읽고 호기심에 해당 작품을 읽었다가 홍윤표 작가님의 엽편 작품을 전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작품들은 장르도 소재도 제각각이었지만, 전체를 아우르면서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었으니 바로 <담담함>과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빈말 주식회사’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빈말 주식회사에 취직했다.”

당연히 독자는 첫 문장에서부터 당황할 수밖에 없어요. 도대체 빈말 주식회사가 뭐며, 어떻게 빈말로 회사 운영이 가능하며 왜 그런 회사가 있는지, 작가님 찾아가서 묻고 싶은 말이 방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은 종이를 모으면 열두 광주리가 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그런 것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없어요. 그냥 당연히 어딘가에 붙어 있는 회사, 당연히 존재하는 회사인 것처럼 담담하고 자연스럽게 내용이 흘러갑니다.

재미있는 것은, 독자가 그 흐름에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몸을 맡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짧은 이야기지만 읽다 보면 글에 대한 물음을 언제 가졌느냐 싶을 정도로 이야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인 ‘여름휴가’의 첫 문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 오는 퇴근길, 골목 한구석에서 고래 한 마리를 주웠다.”

뭐 이렇게 담담합니까. 냥줍을 해도 이보다는 호들갑스러운 문장을 쓰겠습니다. 어찌나 담담한지 ‘길 가다 고래 줍줍 한 번 안 해 본 내가 혹시 이상한 건가.’ 한번 자문까지 해 보게 됩니다.

거기다 욕조에 담가 둔 고래는 내내 물분수를 뿜고, 덕분에 말하는이는 샤워를 한 달째 못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날로 피폐해지는 말하는이의 정신 상태의 변화를 다뤘다면 이 작품의 장르는 호러가 될 것이요, 해양학자며 동물학자를 초빙해 고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면 장르는…그러니까 <세상에 이런 일이!>가 되겠군요.

하지만 말하는이는 그런 행동 안 합니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 인간으로서 차마 공개적으로 쓸 수 없는, ‘ㅈ’으로 시작하는 한 글자짜리 낱말이 되었다고 외치는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올여름 휴가는 동해로 갈 계획이다.” 너무나도 담담하게요.

리뷰를 하겠다고 한 ‘밤바다’ 역시 그렇습니다. 친구들과 속초로 놀러가 회를 먹던 말하는이는 화장실을 찾아 나왔다가 거인을 봅니다. 거인이 왜 나타났는지, 아니 그보다 거인이라는 게 존재나 하는지, 이런 논리적이고도 합리적인 의문은 저어기 멀리 산너머에 묻어 두고, 이 작품에서는 그저 담담하게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바다 멀리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달빛을 받으며 걸어왔다. 거인이었다. 거인은 얌전한 파도를 거칠게 밀치며 바닷가로 나왔고 지친 듯이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말하는이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수긍이 가는 행동, 이를테면 손에서 절대 놓지 않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림으로써 주작이네 합성이네 키보드 배틀을 유발시키고 SNS의 스타로 등극한다든가, 술자리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자신이 본 거인의 크기를 63빌딩 크기 정도로 과장하면서 거인을 쫓아버린 자신의 무용담을 7900원어치 노가리 한 접시에 필적하는 술자리 안주로 만드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말하는이는 그저 거인을 보기만 합니다. 마치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듯, 파도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바위를 보듯 그렇게 담담하게 말이죠.

거인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을 성벽 안으로 몰아넣고 마구잡이로 잡아먹는 행동 하나쯤은 할만도 한데, 이 작품에서 거인은 그냥 나타나서 훌쩍훌쩍 울다가 다시 원래대로 조용히 사라질 뿐입니다. 거인이 왜 나타나서 울었는지조차 설명이 없어요. 짝사랑하는 거순이에게 술김에 고백했다가 ‘우리 좋은 오빠 동생 사이로 남자.’라는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지식인에서 <눈물없이 양파 써는 법>을 검색도 않고 냅다 칼질부터 시작했다가 펑펑 눈물을 쏟게 되었는지 어떠한 설명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저 독자의 몫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다 보면 독자는 <왜>나 <어떻게>를 물어야 한다는 것을 잊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은 앞에서도 계속 반복한 말입니다만 너무나도 담담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호흡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 독자는 마치 자신도 고래 한 마리 줍줍한 것처럼, 고개를 돌리다 거인을 본 것처럼, 환상의 우주 속을 잠시 거닐다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상상력의 우주는 무한하게 커도 그걸 담아내는 데에는 몇 개의 낱말이면 충분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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