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현대와 닿아있는 판타지 세상 이야기 감상

대상작품: 피어클리벤의 금화 (작가: 신서로, 작품정보)
리뷰어: 듀콩, 7월 28일, 조회 103

 “너를 먹겠다.”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한번이라도 읽어보신 분들은 다들 기억하고 있는 대사일 것 입니다. 아마 작품을 끝까지 다 읽고 새로운 회차를 기다리고 있는 분도, 읽어가다 도중에 여정을 잠시 쉬고 있으신 분도, 그리고 저처럼 계속 달리고 계신 분도 이 대사는 전부 아시겠지요. 가난한 영지의 딸과 용이 시작한 교섭전설의 시작을, 대 서사시의 시작을 알리는 대사였으니 말이죠. 저 역시도 머릿 속에 박혀있는 작품의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판타지 소설 매니아라고 하기엔 명함을 내밀기도 부끄럽지만, 국내외 판타지 명작이라 불리는 소설 시리즈들을 여럿 붙잡아 보았던 사람으로서, 용이 자신의 ‘음식’ 앞에서 먹겠다고 선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간에, 용이 이렇게 말한 그 ‘음식’의 대상은 비록 작고 가난하지만 그래도 어엿한 남작가의 영애입니다. 이제 판타지 소설의 공식이 다 갖추어 진것 같군요. 용과 용이 납치한 높은 신분-귀족-의 여성. 이제는 모험가가 나타나 용을 무찌르고 영애를 구출하는 전개가 펼쳐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그저 평범한 공식을 따르는 여러 판타지 소설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 것 이라는 평을 받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양해를 구하시는 것 입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이 아가씨는 용의 말에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울리케 피어클리벤. 열 일곱살, 피어클리벤 남작의 열 세명이나 되는 자식들 중 여덟번째인 그녀는 가난한 영지 사정 때문에 직접 식량을 구하러 해변가에 나와있다 용에게 납치된 후, 자신의 생사를 두고 용과 지적인 논쟁을 벌여 결국엔 용의 입에서 자신을 먹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게 합니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읽어내려가던 저는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었습니다. 순간 제가 읽고 있는 것이 판타지 소설인지 철학서인지 의심을 할 뻔 했죠. 울리케와 용 빌러디저드가 이렇게 서장에서 서로 누가 누가 더 똑똑한가를 여지없이 보여주며 단순한 판타지를 기대하고 들어온 독자들의 기를 죽여놓고 난 이후에도, ‘교섭전설’이라는 이 작품의 별명에 걸맞게 대화와 교섭은 이 세계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또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며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저는 감히 ‘판타지 소설은~~ ‘하면서 무언가를 말할 위치도, 독자도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읽어가면서, 소위 ‘이건 된다!’ 하는 촉을 세우게 된 데에 몇가지 이 작품만이 가지고있는 무기이자 매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작품의 주요 제재인-역시나 앞서 언급한- 대화와 교섭입니다. 저 같은 보통 사람들이 판타지 소설을 생각하면 흔히 볼 수 있는 도트형 RPG 게임과 같은 세계관과 분위기와 서사를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중세 유럽같은 세상에서 모험가가 동료를 만나고, 여러 마을과 도시를 돌아다니며 문제를 해결해주며 성장하다 마지막엔 용이나 마왕을 무찌르면서 영웅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그런 느낌 말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그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합니다. 물론, 중세 유럽풍의 판타지 세계관-전제정치, 신분사회, 영지와 촌락과 도시, 기사, 몬스터, 그리고 마법-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작품을 처음 접한 독자를 당황케 할 정도로 다른 노선을 타고 있습니다. 우선 서장에서부터 우리의 주인공 울리케는 그의 언변으로 인해 스스로 용의 식사에서 교섭 대상으로 지위를 탈바꿈해 영지의 후견으로 용을 두기에 이릅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울리케는 이후 고블린 대사이자 영지의 행정관이 되기까지 하지요. 모두 대화와 교섭으로 스스로가 이루어낸 일 입니다. 하지만 이는 울리케만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닙니다. 고블린 아우게트, 마법사 시그리드, 서리심 뉘뉴르, 도시의 치안판관 크누드 모두 문제를 해결할 때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대화와 교섭을 사용합니다. 정신없이 작품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들판이나 성의 광장, 산 속 요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저기 어딘가 고층 빌딩의 사무실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각종 프레젠테이션과 문서들 사이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혼동이 올 지경으로 말이죠. 그 동안 저에겐 무의식적으로 중세풍의 판타지 작품 속 인물들은 그 사고방식이나 지적능력도 중세에 머물러 있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다는 것도 이 작품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중세’풍’일 뿐이지 실제로 그 시절의 이야기가 아닐 텐데 말이지요. 판타지 세계 속 사람들도 얼마든지 독자들이 살고있는 21세기와 같은 사고방식과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계속 말해주는 듯 합니다. 작품을 읽어내려가면서 자꾸만 무엇인가의 위화감이 들었었는데 그 정체를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분명 판타지인데 계속 현대 배경을 겹쳐 떠오르게 만드는 대화와 교섭이라는 요소 덕분에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판타지 소설에서는 상당히 보기 드문 관계를 목도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론 울리케가 대표하는 인간 진영과 아우게트가 대표하는 고블린 진영의 동맹이라 할 수 있겠지요. 새로운 인물들이 피어클리벤 영지에 발을 디디면서 이 둘의 관계에 경악하고 아연실색하는걸 구경하는 것이 그들의 관계가 다져지는 과정을 지켜본 독자로서의 소소한 재미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피어클리벤의 금화>만의 무기이자 매력은 다른 판타지 계의 작품들에선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캐릭터들에게 관심을 주고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점 입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울리케 만큼이나 열렬한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을 고르라면 망설이지 않고 고블린 아우게트를 뽑을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고블린들은, 주인공들의 ‘경험치 셔틀’정도로 취급되고 말 몬스터들에 불과하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고블린은 다릅니다. 물론 아우게트가 상당히 특이한 경우이긴 하지만 인간과의 공존, 서리심과의 공존을 위해 교섭을 하여 한쪽에게만 유리하지 않도록 현명하게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거나, 더 나아가 모두가 놓쳤던 맹점을 지적하고 궁극적인 개념과 관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는 ‘현자’ 캐릭터의 종족을 고블린에게 주었다는 점은 상당히 재미있고 이례적인 설정이지요. 그의 저력을 맛본 인물들이 모두 ‘사실은 인간 아니냐’며 혀를 내두르는 장면도 제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아우게트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에선 엘프, 그리고 정령으로 불릴 류그나들과 서리심도 이 작품에서 가지는 위치와 성격들 또한 가히 파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울리케의 위치에도 주목하였습니다. 용에게 납치 되어 죽을-정확히는 먹힐- 뻔 했던 영애가 용과 교섭하여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영지의 후견을 해주도록 계약을 맺고, 돌아오는 길에 고블린들과도 교섭하여 대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지의 가족들은 전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바로 ‘울리케가 이런 아이였을 줄이야!’ 였죠. 그리고 울리케는 열 세명의 남매들 중에서 여덟번째 입니다. 보통 주인공이 되거나 주목받는 위치는 아니지요. 그런데 그런 울리케가 당당히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가 되도록 스스로를 끌어올렸다는 점이 매력을 넘어서서 짜릿하기 까지 합니다. 물론 울리케가 ‘완벽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언질이 계속해서 등장하긴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울리케가 여기서 더 성장하리라는 복선을 주고 있는 것 같아 기쁘게 격려합니다. 이 처럼, 저는 다른 작품에선 주목받지 못했을 그들이 서사를 주도하는 것을 보면서 이 작품을 읽고 있을 현대의 우리들에게, 숨겨진 잠재력을 발휘해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다양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잔뜩 등장하는 이 작품을 읽으며 그들을 모두 똑같이 응원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또 하나는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판타지 소설이지만, 결코 판타지만을 이 작품의 장르로 칭할 수 없다는 점 입니다. 이는 앞서서 언급하였던 대화와 교섭과도 맞물린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판타지 인물들이 단순히 검을 휘두르고, 화살을 쏘고, 마법을 부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성과 판단력으로 일을 해결해 나가다 보니 여러 장르가 겹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서조차 세세하고 탄탄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풀어나가면서도 기존 서사의 뿌리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는 새삼 작가님의 저력에 감탄했습니다. 자꾸 작품만의 특별함을 이야기하다보니 언급할 적절한 때를 잡지 못했지만, ‘판타지’로서의 <피어클리벤의 금화>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마법사와 환상의 종족들, 그리고 괴수들이 존재하는 한 이 작품은 ‘판타지스러운’전개가 나올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인물들이 교섭을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흑막 세력들이 조용히 계략을 꾸며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장르가 떠오르기도 하고, 법의 경계와 ‘정의’의 정의에 대해 논하고, 언어체계를 도모하는 장면을 읽을 때면 인문학 저서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제국의 체제나 도시의 구성원들, 고블린과 류그나들의 사회를 알아갈 때면 사회학이나 인류학을 상기시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순식간에 기사들은 와이번과 싸우고 마법사들은 불기둥을 만들어 눈트롤들을 물리치며 독자를 판타지의 한복판에 떨어뜨려놓죠! 이렇게 여러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때문에 판타지 소설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판타지 입문작으로서도 저는 <피어클리벤의 금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가지를 뻗친 장르가 다양해서 다른 장르를 좋아하던 사람도 큰 어려움 없이 판타지 세상으로 넘어올 수 있게 해줄 단단한 다리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피어클리벤의 금화>가 연재되고 있는 동시간대에 살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짧은 책벌레 인생에서, 접해본 판타지 소설들로는 해외로는 해리포터 시리즈나 어술러 르 귄 작가의 작품집들, 국내로는 이영도 작가의 작품들 몇 가지와 룬의 아이들 시리즈 정도 입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한창 연재 중일땐 제가 이 작품을 읽기엔 너무 어렸습니다. 그래서 작품들을 순식간에 연재 된 부분까지 다 읽어버려서 다음 이야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거나, 작품을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복선에 관하여 추측 해보고 순수한 감상을 나누면서 ‘앓이’를 하는 순간을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는 점을 너무나도 아쉽게 여기고 있습니다.(룬의 아이들 시리즈 같은 경우는 3부가 연재중이긴 하지만, 아직은 제가 연재분까지 따라잡지 못해서 팬 커뮤니티에 쉽게 들어 갈 수 없기도 하고요.) 그런 저에게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제 소설 ‘덕질’ 인생의 금화 같은 작품입니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 완결이 나고 모든 회차가 출판 될 때동안, 작품이 숨 쉬고 있는 동안 모쪼록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접하면서, 저와 함께 울리케와 주변 인물들을 응원하면서 이 작품을 즐겁게 사랑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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