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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꿈꾸는 여행자 (작가: 꿀벅스라이프, 작품정보)
리뷰어: Enlil, 8월 17일, 조회 58

나는 하이텔 등의 PC 통신 세대가 아니라 그 시절 연재됐던 장르 소설들을ㅡ유명한 것들 빼고ㅡ모른다. 온갖 글들이 넘쳐나는 지금보다 그때가 더 좋은 글들이 많았으리라 막연히 기대할 뿐이다. 근래의 장르 소설들은 대부분 빠르다. 문장, 문장, 휙휙 끊어지는 문장들을 읽으며 계속 스크롤을 내리고, 제대로 읽은 것 같지도 않은 문장은 시선을 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너무도 쉽게 지나간다. 문단으로 묶여야 할 것처럼 보이는 문장들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어 그 퍼져있음에 날 이끄는 중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가볍고, 글을 읽으며 얻는 것이 없다. 책은 도끼일진대 작은 회초리만 못하다.

잘 짜인 문단은 소설을 소설이게 하는 힘이다. 이어지는 흐름은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이다. 느리지만 힘 있고, 그래서 하나하나 소설을 즐길 수 있다. 나는 근래의 장르 소설에서 이런 맛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이런 글맛은 대부분 우리가 그냥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본다. 왜 꼭 장르 소설은 가벼워야 하는가. 장르 소설엔 ‘개똥철학’조차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인가.

그런 면에서 『꿈꾸는 여행자』는 요즈음 나오는 장르 소설 같지가 않다. 문장들은 문단이라는 이름으로 적절하게 묶여있고 그것이 날 끌어당겨 도저히 보지 않고서는 지나칠 수 없다. 수많은 무협 소설에 표현된 극강하되 느릿한 보법들마냥ㅡ이를테면 뭐, 천마군림보 같은 이름의ㅡ진중한 느낌이 이 소설의 맛이다.

또, 느린 만큼 깊고자 한다. 소설은 삶에 대해 묻고 있다. 작게는 개인의, 크게는 인류 전체의 삶에 대해. 작 중 신학에 나타난 인간의 도덕과 죄가 그렇고, 허크의 분노(와 용서)로 대표할 수 있을 둘의 약속이 그렇고, “성인이라면 자신의 기준에 충실해야 한다.”는 로저의 말이 그렇고, 조합의 ‘규격’이 그렇고, 로체의 산신령이 허크에게 한 질문이 그렇고, 로체의 산신령 퇴치 의뢰와 출항의 이유ㅡ부를 향한 욕망이라 할 수 있을ㅡ가 그렇다.

위와 같은 설정과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이 모순 없이 이루어진다면. 나는 이런 것들이 좋다. 이런 질문들이 좋다. 고민할 가치가 있고 선택될 수 있는 삶의 지표다. 아직 챕터는 두 개밖에 쓰이지 않았다. 앞으로 나올 챕터가 너무나도 많음에 나는 이런 것들을 더 늘리고 풀어낼 스토리가 기대된다. 그리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나를 기대한다. 작가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나는 기다릴 것이다. 현재까지는 좋았다.

완결 안 된 작품을 비평하기란 궁극적으로 읽을 만한 작품인지를,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가치판단하는 일이다. 아직 풀지 못한 보따리가 많은 이 소설을 나는 인내심 많은 이에게, 느림의 미학을 아는 이에게, 목적지를 향해 걷다가도 찬찬히 주변 것을 둘러볼 여유가 있는 이에게 추천한다. 『꿈꾸는 여행자』는 아직 좋은 작품이고, 좋은 작품으로 끝맺을 수 있다.

 

『꿈꾸는 여행자』로 밥 벌어먹을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장르 소설판 다수 독자에게 매력 있는 전개도, 소재도 아니다. 시간 보내기와 얕은 즐거움이라는 두 경향이 장르 소설판의 지배적 경향인데, 꿈꾸는 여행자는 시간 보내기 적합한 소설도 아니고 쉬이 즐길 요소도 적다. 작가의 바람과 달리 이 소설로 당장 삼시세끼 밥 먹으며 잘 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안타깝다.

그러나 시장에서 희소한 매력을 지닌 소설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적지만 발길이 끊기진 않을 것이고, 읽은 사람들은 다른 이에게도 글을 알리며 작가의 다른 글에도 찾아갈 것이다. 어쩌면 이런 희소한 매력이 수많은 이들을 끌어당길 수도 있다. 하지만 부를 욕망한다면 다른 글을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지배적 경향을 충족시키며 말이다. 아예 다른 글을 쓰라는 이유는 이 소설이 가진 분위기가 얕아질 것 같지 않아서다. 내가 아는 근래의 장르 소설판에서, 『꿈꾸는 여행자』는 힘들다.

이건 현실적인 조언은 아닌데, 목적지로 가는 길에 벽이 있다면 부수든, 무너뜨리든, 넘든, 돌아가든 그 벽을 기둥 삼아 집을 짓진 말았으면 한다. 잠깐은 멈춰설 수 있다고, 조금만 쉰다고, 집을 지었어도 다시 길을 걷길 바란다.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꿈꾸는 여행자』가 작가가 진정 쓰고 싶은 소설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작가에게 바라듯 나는 작가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을 썼으면 한다.

 

사담, 응원

작가가 나를 기억할진 모르겠으나 나는 작가를 안다. 몇 해 전 어느 소설 카페에서 작가를 알게 되었다. 채팅하는 여느 인터넷 사람들이 그렇듯 막 친하지도, 꺼리지도 않는 그냥 그 정도 사이.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몇 살이고 어느 학교 어느 과였다는 것 정도가 내가 아는 작가였다. 이 정도면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치곤 가까웠다고 볼 수 있나? 아직도 이 소설을 쓰고 있다니 놀랍다. 완결되면 읽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나는 좋은 건 아껴 먹고, 먹을 땐 한 번에 먹는다), 공모 내용이 뭣하면 때려치려는 것 같길래 그냥 읽었다.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라는 차원에서, 무슨 글이든 기왕이면 계속 글을 썼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담, 그려보기.

내 생각에, 결국 허크는 용서할 것이다. 결국 허크는 좋을 대로 살 것이다. 결국 허크는 두려움을 알게 될 것이다. 갖게 될 것이다. 둘의 약속 안으로 들어가 인간이 될 것이다. ‘용기’가 그럴 것처럼 ‘힘’도, ‘지혜’도, ‘꿈’도 둘과 함께할 것이다. 신의 아이는 사라지고 인간만 남을 것이다. 신이 있든 없든 세상은 욕망할 것이다. 규격을 갖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뭉뚱그려서, 그러다 나중에는 잘게 잘게 나노미터 너머까지, 원자 너머까지. 세상은 이해의 영역으로 재구축될 것이다. 신화는 사라지고, 남는 것은 인간뿐일 것이다. 꿈꾸지 않아도 가까이 있던 꿈은 현실에 치여 다가가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뭐.

라고 묻는다면.

언젠가 당신은 꿈을 그리워할 것이다.

리뷰도 다 썼으니 이제 챕터 3을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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