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을 써 본 사람이 야설을 쓰고자 하는 분에게 감상

대상작품: 살인자x살인자 (작가: BornWriter, 작품정보)
리뷰어: 도련, 18년 4월, 조회 2383

+ 아니… 리뷰는 웹에서만 봐서 몰랐는데 앱에서 보니까 이 무도한 리뷰가 아직도 인기 리뷰 순위에 있어 5월 11일에 덧붙입니다.

저는 이 리뷰가 결코 잘 쓴 리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러니 제목에 현혹되지 마시고, 직접 읽어보신 다음 생각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19금 BL 소설을 써서 출간을 한 전력이 있는 몸입니다.

반응은 다음과 같았죠.

“으, 역겹고 징그러워서 하차합니다.”

“너무 고어해요.”

“고어합니다 ㅠㅜㅠ 딥 다크하니 꼭 미리보기 하세요.”

그러니 짧게나마 제가 이 글에 꼰대처럼 뭐라고 할 자격이 있으리라 믿어보겠습니다.

 

전에 작품 <심계항진>에 대해 쓰신 리뷰를 읽었습니다.

결코 좋은 리뷰가 아니었습니다.

다음은 전혀 상관이 없는 <심계항진>의 스포가 나오니 가립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았습니다. <흡입력이 상당한 야설>이라는 다른 분의 리뷰 제목을 보고 호기심이 들기도 했고요.

 

결코 야한 것을 잘 쓰는 몸이 아닙니다만, 제 감상은 이렇습니다.

 

하드코어 SM 야설을 쓰고 싶으시다면 우선 고개를 들어 다른 곳을 보시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왜 지난 리뷰에서 이것을 ‘야설’이라고 칭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야설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참 부족합니다. 흡입력이 있지도 않고요.

그 이유를 잘 적기에는 전 감정이 너무 앞서고 논리력이 매우 부족한 사람입니다만,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1. 열린 결말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열린 결말은 참 좋은 말이죠. 저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 ‘결말이 열렸다’는 말이 곧 서사에 아무런 완결이 없이 갑자기 끝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 단편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세연이라는 배구부 학생이 자신의 약점을 잡고 성추행하던 국어교사를 죽이다가 그걸 우연히도 같은 반의 범생이에게 들켰는데, 알고 봤더니 얘가 요즘 한창 화제인 연쇄살인마더라……. 끝.

기~~~~결.

발단만 쭉 이어지다가 확 끝납니다. 전개와 절정이 없습니다. 그러면 결말도 있을 리 없죠.

이건 결말이 아니라, 이야기를 중간에 쓰다 말고 끊은 것입니다.

열린 결말은 기승전결에서 기승전을 충실하게 구축한 다음에 터지는 불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인셉션>을 예로 들까요.

<인셉션>이 닫힌 결말입니까? 누구나 고개를 저을 것입니다.

그러면 <인셉션>에 기승전이 없습니까? 역시 누구나 고개를 저을 것입니다.

여운을 남기려면, 그리고 열린 결말이 확실하게 기억에 남으려면 닫힌 결말보다도 오히려 이야기의 기승전결이 더 짜임새가 있어야 합니다.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단어 그대로 독자가 결말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야기를 중간에 쓰다 말고 (그것도 생각하면 겨우 등장인물 소개 부분이니까 발단 발단 발단 끝이네요^^) 끊는다고 독자는 결말을 자유롭게 상상하지 않습니다. 저 같은 독자는 이렇게 생각하겠죠. 와, 작가는 자기가 <인셉션>을 쓴다고 착각하고 사실은 <파리의 연인>도 못 되는 것을 썼구나.

<파리의 연인> 결말이 그렇게 욕을 먹었던 이유가 뭡니까? 그동안 다 쌓아올린 기승전을 굳이 무너뜨리면서 개연성이 하나도 없는 결말을 ‘열린 결말’이라고 시청자에게 던져주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살인자x살인자>는 확실히 실패한 단편입니다.

 

 

2. 성과 폭력을 소재로 사용했다고 하드코어 SM 야설이 됩니까?

 

성과 폭력을 소재로 사용한다고 다 나가이 고나 마루오 스에히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만화 <데빌맨>과 영화 <데빌맨>이 같지 않은 것처럼요.

저는 성과 폭력을 매우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이 소설이 매우 측은합니다.

선정적인 소재를 잘 버무리는 사람이 있고 못 버무리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작가님은 못 버무리는 사람이거든요.

차라리 파국으로 치달았다면 박수라도 보냈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요.

아니, 대체 야설을 얼마나 우습게 보신 겁니까.

큰 철학을 바라고 읽은 것도 아닙니다. 야설에는 숨길 수 없는 욕망이 있습니다.

“잘생긴 미남 떡대수가 예쁜 미인공 밑에 깔리는 걸 보고 싶다!”

이러면서 장편을 쓰시는 분이 실제로 있고 저러면서 장편을 읽는 분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소설에서 보이는 욕망은 “난 이렇게 금기를 깨 보고 싶었다!” 정도이고요.

더 불행하게도……. 그 금기의 수준이 매우 낮아요.

나가이 고는 <데빌맨>에서 숨길 수 없는 성적 욕망과 공포,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허무함을 보여줍니다.

마루오 스에히로의 <웃는 흡혈귀>(번역은 영영 안 되겠지만)에서는 그 넘쳐나는 폭력과 악만큼이나 불로장생을 향한 욕망이 얼마나 허무한 지 보여줘요.

<견신박사>에서는 아예 정의의 편이 처참하게 실패하며 끝나죠.

망가가 이러한데, 좀 분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자신이 비정상이라고요? 삐빅! 당신은 지극히 평범합니다!

 

저는 작가의 말을 두고 이러쿵 저러쿵 시비거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인간입니다만, 딴지를 걸어보겠습니다.

알맹이가 깊이 썩어있지 않으니까 이런 단편이 나오죠……. 너무 정상이신데요.

그저 소재를 겉핥기로 훑을 뿐, 그조차 모두 위악(이라는 말도 사실 아깝습니다만)이라는 게 이 <살인자x살인자>를 처음 읽어보고 내린 결론이었습니다.

법치주의 사회에 어울리는 인간이 아니라고 자평하는 대신 정말로 변태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작가를 심도있게 읽어보시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예를 들면 누구나 인정하는 변태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라든가. 제가 특히 추천하는 건 <치인의 사랑>입니다. 정말 금기를 부수는 작품을 읽고 싶으시다면 장 주네의 작품 중 <도둑 일기>를 읽으셔도 괜찮고, 내가 위악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항변하고 싶으시다면 위악 따위 없는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도 괜찮습니다.

이쯤에서 왜 제가 장르문학(저는 순문학과 장르문학 분류를 매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만!)을 추천하지 않는지 의문이 드실 수도 있겠는데요.

글쎄요, 우선 자신이 법치주의에 지극히 어울리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수순 아니겠습니까?

불온함이 없는 야설이란 자고로 앙꼬 없는 찐빵이요 얼음 없는 팥빙수이거늘.

 

 

이상입니다.

 

+

4월 21일 덧붙입니다.

결코 성공한 리뷰가 아닌 이 글이 이 정도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 리뷰 4위에까지 오른 건, 제가 보기엔 다음의 이유밖에 없네요.

1. ‘야설’이 두 번이나 들어간 제목이 사람의 쓸데없는 호기심을 자극했거나,

2. 자극적인 내용과 댓글에 펼쳐진 내용이 사람의 쓸데없는 호기심을 자극했거나.

둘 다 그리 달가운 현상이 아니니, 만일 둘 중 하나에 해당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클릭하신 분이라면(특히 후자) 이 다음부터는 이 글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정중하게 거두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고개를 돌려 리뷰란을 바라보세요. 이 글보다 훨씬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해야 할 좋은 글이 많이 있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