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 그래서 더욱 곱씹게 되는 이야기… 공모 브릿G 추천

대상작품: 늦은 나이 신드롬 (작가: 잎숨, 작품정보)
리뷰어: 후더닛, 3월 28일, 조회 35

“늦은 나이 신드롬이요?”

“그렇네.”

(…)

“들어본 적 없는 신드롬인데요.”

“당연히 그렇겠지. 이건 내가 새로 만든 별칭일세. 혹시 자신의 나이가 늦었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비정상적인 공포를 지칭하는 말이오.”

 

 

뭔가 서글퍼지는 이야기네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 저 역시 몇 번은 생각하거나 말하기도 했던 것이라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늦은 나이.’ 살면서 이 말만큼 갈수록 그 무게가 점점 커지는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어떤 때는 선택을 제한하고 또 어떤 때는 아예 뭔가 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하지요.

그래도 요즘은 블라인드 채용이다 뭐다 해서 연령에 따른 제한이나 차별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이고 헌법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나이에 대한 차별 금지를 선언하고 있는 바 입니다만,

현실은 아직 그만큼 따라와주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죠. 옹고집마냥 그런 추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 웨이’를 고수하고 있는 곳도 여전히 많구요. 이런 현실이 ‘늦은 나이’가 주는 아픔과 불안을 더 부채질하는 것이겠죠. 더하여 드라마 ‘미생’에도 나왔던 대사처럼, ‘도대체 그 나이 먹도록 뭘 한 거야?’를 담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 또한.

그러므로 위의 ‘늦은 나이 신드롬’을 설명하는 교수의 말에서 딱 하나를 수정하고 싶네요.

‘늦은 나이 신드롬’은 비정상적인 공포가 아니라 정상적인 공포라는 사실을.

두 가지 사항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며 또 하나는 누구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사람은 늘 내가 가지 않은 길, 걸어보지 못한 길에 미련이 생기기 마련이죠.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시간과 육체의 한계로 이제 그런 길을 걸어볼 가능성이 점점 더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에서 연유하기도 할 거예요.

이런 것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긴 해도 이런 말이 마음에 차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네요.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나이에게 주눅이 들어버렸는가?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하면 되지 않나? 나이 먹는 걸 꼭 과식이나 식중독으로 생각해야만 하나?’ 하고 말이죠.

소설의 주인공은 31살의 늦깎이 대학원생인 민규가 교수를 도와 ‘늦은 나이 신드롬’을 연구하다 자신도 모르게 ‘늦은 나이’를 식중독으로 여기고 그 결과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유혹이 있었죠.

피실험자로 만나게 된 A양이 알려준 육체의 시간을 되돌린다는 약이 존재한다는 유혹이.

유혹은 아주 멀리 있을 때보다 손에 잡힐만한 거리에 있을 때 그 강도가 더 세지는 법입니다. 농구 골대가 한없이 높으면 아무도 공을 던지지 않겠지만 적당히 높으면 누구나 공을 던져보는 것처럼 말이죠.

적당한 금액만 지불하면 그 약을 사서 덜 나이 먹은 자신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민규는 만족하고 살았던 자신의 현재를 새삼 불만족스럽게 여깁니다. 성공 보다는 실패의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르고 자신이 그 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약을 먹고 보다 젊어진 민규는 세상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기준에 충족한 삶을 살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준을 충족하면 충족할수록 더 커다란 불만족만 느끼게 됩니다. 마치 아무리 채워도 늘 한 뼘 정도 남아 계속 채우게 만드는 ‘악마의 항아리’와도 같습니다. 그것을 모조리 채우기 위해 아주 어린 나이까지 되지만 그래도 역시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이 이야기가 결국은 무엇을 말하는지 어느 정도 분명해지는 것 같네요.

쉽게 말하면,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일까요?

그 나이를 숫자가 아니라 자신을 억죄는 닻으로 여기는 것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과 관계 되어 있고 나이란 자신을 부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을 만화 ‘슬램덩크’에 나오는 유명한 말처럼 ‘거드는 왼손’일 뿐이라는 것이죠.

문제는 어째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부족하게 바라보는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늦은 나이에 주눅드는 까닭과 상통하기도 하구요.

그건 분명 우리 자신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는 모르고 오직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뒤쫓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모습보다는 남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모습만을 늘 추구하느라고 말이죠. 프랑스의 철학자 라캉 식으로 말하자면 ‘대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착각하고 이루려 애쓰는 것이겠죠.

문제는 그런 욕망 또한 절대적인 게 없고 실은 비어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더 많고 높으며 다른 것이 존재하기에 사람은 대타자의 욕망에 따라 아무리 높고 크게 성취했어도 찰라의 충족에 불과합니다.

그저 그것을 ‘이만하면 되었다.’ 자족하지 않으면 지금 구속된 MB처럼 욕망의 끝없는 노예가 되어 급기야 자기 파괴의 길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인공 민규의 삶이 다르지 않듯이 말이죠.

그러므로 ‘늦은 나이’에 대한 주눅으로 집약되는 현재 내 삶에 대한 불만과 원망은 결국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로 풀어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정 욕망에 따른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의 기준으로 내 삶을 바라보는 것. 그렇게 되면 내 삶이 가진 긍정적인 가치들이 보다 많이 들어날테고 그런만큼 나이에 대한 주눅도 떨쳐낼 수 있을테죠.

아, 너무 이상적인가요?

그래도 여기에 판돈을 걸어보고 싶은데요.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일단 ‘늦은 나이 신드롬’부터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그러면 당신 역시 판돈을 추렴하려 지갑을 꺼내게 되시리라 감히 예언해 봅니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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