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이보시오, 젊은이! 그리로 가다간 죽소! 또는 장점과 단점은 언제나 손의 앞뒷면 의뢰 브릿G추천

대상작품: 포식자들 – 3[완] (작가: 송이문, 작품정보)
리뷰어: 도련, 18년 2월, 조회 129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전지식 없이 처음 이 글을 읽어나갈 때, 저는 지금이라도 리뷰를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했습니다. 왜냐고요? 장의 이력을 읽고는 이것이 첩보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읽은 첩보물은 고작해야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단 둘. 과연 이딴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리뷰가 가능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리뷰 쓰기를 포기하고 정중한 거절 의사를 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고 또 고민할 때, 저는 ‘사냥’이라는 단어를 보았습니다.

아이고! 이보시오, 젊은이! 그리로 가다간 죽소……!

통곡과 함께 안심했습니다.

이건 호러구나!

불행하게도, 제게 있어서 안심했다는 말은 내용을 예측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제가 예측한대로 장과 그 일행은 처음부터 포식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냥감이었지요. 그들은 자신이 사냥하는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반대였습니다. 무사히 돌아오기는커녕 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하나씩 탈락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들어맞았고요.

아쉬웠던 지점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항상 어느 정도 제 예측을 벗어납니다. 적어도 “하하하! 네가 호러물 조금 많이 봤다고 오만하게 깝치진 말라고! 이 세상에는 네 머릿속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는 재기 넘치는 창작자가 많으니까 말이다!”하고 제 머리를 후드려패지요.

좋게 말하면 무난한 호러물이고, 나쁘게 말하면 장르의 공식을 아예 깨지는 못한 점.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포식자들」의 장점과 단점입니다.

사람이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어느 정도 이상이라면 장점과 단점은 언제나 손의 앞뒷면이지요. 차라리 아예 못 썼다면 고심할 필요도 없이 “제가 생각하기에 작가님은 우선 다독 다작 다상량이 필요합니다. 많이 읽으세요. 많이 쓰세요. 많이 생각하세요. 작가님에게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읽으며 자신의 글이 다른 사람의 글과 어떻게 다른지 고민하고 생각하며 꾸준히 습작을 써 보는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식자들」은 그러한 단계는 이미 뛰어넘었습니다. 남은 목표는 장르의 공식을 한계까지 밀어붙여 보는 것이겠네요.

또 아쉬웠던 점이라면 인물과 설정을 풀어나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 에릭, 후안, 와타나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설명은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저는 설명이 많은 작품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설정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소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리버럴과 약과의 관계는 조금 뜬금없이 튀어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현재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작품을 그리 꼼꼼하게 읽지 못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리버럴 진영에서 그동안 약을 공급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한 문장이라도 이것이 주인공의 시선에서 어떠한 의미인지 드러났다면 좋았을 것 같네요.
물론 앞부분에서 리버럴 진영과 약과 연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어렴풋하게나마 드러나기는 합니다만, 그 부분은 1부에 있고 리버럴 진영이 나오는 부분은 2부입니다. 1부 거의 첫머리에 나오는 사실을 굳이 미주알고주알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저라면 그 부분에서 1부 첫머리에 이미 작가가 복선을 깔아두었음을 환기시키는 장면을 짤막하게 넣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소설을 읽으며 실망하지 않았던 이유를 꼽자면, 결말이야 제가 예측한 대로 나기는 했습니다만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자연스럽고 전체적인 구성이 잘 짜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요, 무난한 호러물이라고. 이것이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저에게는 욕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그저 잔인한 장면만 줄창 때려박으면 그것이 곧 호러인 줄 아는 작품도 많습니다. 좀비물이라고 하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비슷비슷한 장면과 묘사가 나와서 한숨을 쉴 때도 많았고요. 저에게 왜 리뷰를 의뢰하셨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괜찮은 호러물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호러물을 읽을 때 항상 기본점수를 깔고 들어가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괜찮았어요.

나중에 작품 소개를 읽고 이 작품의 전신이 ZA 문학상 본심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왜 그랬는지 납득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 작가님은 제가 지적한 단점에 굴하지 마시고 앞으로도 꾸준히 호러물을 써 주시길 바랍니다.

아쉬운 점이야 고치면 되고, 자신의 장점은 발전시키면 되지요.

세상에서 가장 귀하디 귀한 감정이 공포라고 믿는 사람의 하나로서 부탁드립니다.

 

* 혹시 다시 ZA 공모전에 도전하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차기작을 쓰실 때 참고가 될까 하여 적어봅니다.

제가 좀비물 앤솔로지 『THE 좀비스』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작품을 셋만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올해의 학급 사진」. 댄 시먼스.

「미트하우스 맨」. 조지 R. R.마틴.

「좀비가 부른 노래」. 할런 앨리슨 & 로버트 실버버그.

제가 이렇게 작품 목록을 적는 까닭은 앤솔로지에 실린 나머지 작품이 미흡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예를 들어보아도 스티븐 킹의 작품이나 클라이브 바커, 닐 게이먼 같은 사람의 작품이 미흡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 리뷰에는 어디까지나 제 취향이 들어가 있으니, 한번 이 작품들을 읽어보신 뒤 거를 부분은 거르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무조건적인 비판이 작가에게 꼭 도움이 되리라는 법은 없잖아요?

어디에선가 비판할 부분을 적는 것보다 좋은 점과 궁금한 점을 적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동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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