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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나의 모든 렐리스에게 (작가: 리체르카, 작품정보)
리뷰어: 한샘, 1월 16일, 조회 90

편지는 끝까지 읽히지 않았다.

당신은, 그녀가 겪은 일 외에는 알 수 없다.

 

살면서 편지를 얼마나 써보고 받아봤습니까? 콧물이 묻은 어린 쪽지, 대견함을 담은 부모의 편지, 생일을 축하한다는 기쁨, 정성이 접힌 사랑, 대충 그러나 제법 골똘히 노력한 우정, 군대 위문편지, 전 연인의 청첩장(…) 등등. 이처럼 편지란 수많은 장르를 가지고 있는, 쓰기 위한 것과 동시에 읽기 위한 것. 그리고 인간이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자 목적. 때론 서랍장 깊숙이 보관되고, 때론 춤추는 불꽃에 안겨 장렬히 하늘로 날아가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 여기 이러한 ‘편지’라는 걸 가지고 이야기를 들러주는 글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작품, <나의 모든 렐리스에게>죠.

 

다른 누군가의 편지를 읽는 것은 꽤 흥미를 돋우는 일이죠. 물론 허락된 사이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요. 옛날 학창시절 짝꿍이 받아온 편지를 같이 읽을 때 꽤 집중했듯이, 편지라는 건 너무나 매력적인 소재 같아요. 그것이 비극적인 이별 편지였어도 말이죠. 뭐, 아무튼 이 <나의 모든 렐리스에게>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호러인줄 알았습니다. 이별을 ‘당한’ 소녀 렐리스에게 쓴 스토커의 편지가 처음을 꾸며주거든요. 아차, 앞으로는 스포일러가 어느 정도 함유되어 있으니 주의해 주십시오.

 

스토커가 아니라 천사였어요. 그것도 수호천사. 두 번째 회차인 6-11부터 그의 존재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6번 편지에서까지도 렐리스는 자신을 차버린 남자(일로테)에겐 아무 죄가 없을 거라 생각하네요. 사실 여기가 꽤 큰 포인트로 보입니다. 인간이 가지는 사랑의 맹점을 은근하게 띄웠어요. 후반부로 가면 더욱 느낄 수 있는 아주 멋진 연출입니다.

 

답장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수호천사에게 렐리스가 드디어 처음으로─대문짝만하게 붙여놓은 한 줄짜리 편지를 제외하면─답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외모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죠. 그런데 수호천사는 그것을 해결해줍니다. 대가를 받고요. 어라? 천사가 왜? 라는 의구심을 품었던 저는 렐리스가 되었습니다. 렐리스도 그런 의구심을 품게 되거든요.

 

어쨌든 렐리스가 수호천사의 힘으로 아름다운 얼굴을 얻게 되자, 믿음이 생깁니다. ‘천사’에 대한 믿음 말이죠. 그 믿음이 참 고약하게 작용합니다. 일로테를 끝까지 감쌌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골려주고 싶어 하게 됩니다. 자신의 용돈을 다 털어서라도 말이죠! 이 부분에서 렐리스의 순수함과 동시에 인간의 본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든 증오든 어떠한 감정에 빠지면 아슬아슬한 절벽으로 향하는 인간의 본성 말이죠. 그것을 이끌어낸 것은 역시 천사의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실 이 편지라는 소재가 자칫 상투적이게 될 수도 있지만, 작가님은 세세한 설정을 놓치지 않았군요. 이를테면, 렐리스가 천사에게 준 ‘열여덟 생일날 받은 선물’과 ‘성년식 때 받은 브로치’ 등이 말이죠. 그리고 그 대가로 받은 외형적인, 그러니까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 그리고 장학금을 토대로 얽히고 풀리는 캐릭터간의 실을 잘 드러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점이 꽤 괜찮았어요.

 

캐릭터 얘기가 나왔는데, 제가 판타지를 쉽게 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수많은 캐릭터의 이름 때문인데요. 이국적인 이름들이 계속 나오면 제가 헷갈려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러면 도중에 포기해버려요. 뭐, 저의 독해력 탓이 우선이겠죠. 하지만 이 <나의 모든 렐리스에게>는 전혀 헷갈리지 않았어요. 물론 분량도 길지 않았고, 편지가 등장하는 글의 특성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지만, 제 생각엔 그만큼 연출이 좋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자, 다시 이야기로 넘어가면, 천사는 렐리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주며, ‘선택’을 권유합니다. 이 과정에서 렐리스는 ‘다른 인간’에게 분노와 허탈함을 느낍니다. 참 이상하죠. 순수한 사랑─그것이 X같은 남자 때문에 조각났더라도─을 하던 렐리스에게 점차 생겨나는 감정 말입니다. 왜 그런 감정이 생겨났을까요? 선택을 권유한 천사 때문일까요? 이 부분이 후에 보게 될 에필로그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도움닫기 부분이었습니다.

 

어쨌든 렐리스를 돕기 위해 또 다른 천사 윈저가 나타납니다. 엄청나게 잘생기고 예쁜 천사. 저는 새로운 캐릭터가 나타나면 늘 상상을 하는데요. 이 천사가 등장했을 때 전 배우 강동원을 떠올렸어요. (왜냐고 묻지는 말아주세요.) 이처럼 상상에 빠지게 해주는 글입니다. 왜 그런 느낌 있잖아요. 분명 텍스트를 읽는 건데, 영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요. 그것의 전제조건인 ‘캐릭터의 선명함’을 잘 드러냈습니다. 다만, 윈저에 한해서 말이죠. 예컨대 일로테는 그냥 텍스트의 느낌이 강했어요. 이 자식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약간의 붓질을 해줬다면 어땠을까요? 소설 속으로 조금 더 끌어당길 수 있도록 말이죠. 물론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렐리스는 윈저 덕에 멋진 하루를 보냅니다. 깨끗한 미소로 렐리스만 바라보는 윈저. 그것으로 인한 부러움과 질투. 저는 이 부분이 좋았던 이유가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 때문이었어요. 부러움이나 질투라는 그 감정이 자기 자신의 하루를 멋지게 만들 수 있다니! 인간이란? 뭔가 공감도 되면서 느끼는 점도 많았습니다.

 

이 <나의 모든 렐리스에게>는 갈수록 인간의 내면 색이 어떤지를 드러냅니다. 그것이 순수했던 소녀였어도 말이죠. 윈저 덕분에 고급 레스토랑을 다녀온 렐리스는 거울 속에 날씬해진 자신을 보면 음식을 많이 먹는 게 죄악인 것처럼 느낀다고 천사에게 편지로 말하죠. 점차 외적인 것에 치중하는 겁니다. 인간이죠. 그 인간을 다루는 천사는 과연 어떤 천사인지 궁금해지게 합니다.

 

성당이라는 공간과 신부라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이건 분명한 장치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게 그냥 등장할 리가 없거든요. 역시나 읽어보면 의미심장한 대목이 눈에 띕니다. 신부의 행동과 윈저의 설명 등…… 그리고 천사에게 편지를 보낸 뒤 기도를 하는 렐리스. 그녀의 머뭇거림. 너무나 멋진 흐름입니다.

 

그가 친절한 건 다 천사이기 때문인 거겠죠?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요.

 

이번엔 19번 편지의 일부, 렐리스가 쓴 편지입니다. 제가 처음 읽고 잠시 머물렀던 부분입니다. 아름다운 얼굴과 몸매를 얻었음에도 렐리스는 어째서 저런 말을 했을까? 천사가 아름다움을 준 이유는 뭘까? 하고요. 그리고 이어지는 천사의 20번 편지.. 수신인이 ‘나의 렐리스’입니다. 여기서 어라? 싶었습니다. ‘나의’라는 수식어를 처음 붙였거든요. 렐리스를 긍휼이 여기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 사랑스러워서? 어쨌든 천사는 그녀를 달래주는 군요. 하지만 렐리스는 편지와 조각상 하나를 받고 슬퍼합니다. 이 모든 게 천사가 일러준 강요 아닌 강요 즉 ‘선택’에서 시작했습니다. 편지이기 때문에 글이 툭툭 끊어질 수밖에 없지만, 흐름은 끊이질 않는다는 점에서 박수를 드리고 싶네요.

 

그 뒤로도 이어지는 천사와 렐리스의 편지. 여러 감정을 얻게 되는 렐리스. 뭔가 노골적인 느낌이 드러나는 천사의 편지. 의미심장한 말들. 뭐 하나 함부로 지나칠 수 없는 이 <나의 모든 렐리스에게>. 결국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천사가 나오고 신이 언급되는 판타지이지만, 인간의 심리 그리고 무언가로 가득 찬 내면을 드러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은 독자는 과연 렐리스의 편지를 끝까지 읽은 것일까요? 생각을 요하게 하는 글을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합니다. 이 <나의 모든 렐리스에게>가 그렇습니다.

 

이것이 연재가 아닌 하나의 중단편으로 올라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느낌이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반전(?)이 있는 글이거든요. 그 반전이 한 번에 확 오진 않았습니다. 아주 진하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세심한 설정들과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유혹과 욕망을 느끼죠. 그것이 천사의 손짓이든, 악마의 속삭임이든 간에 우리 인간은 무언가를 위해 편지를 기꺼이 써낼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 편지의 장르는 무엇인지 차마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끊임없을 테니까요.

 

아마도 그 무언가는 외적인 요소가 대다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모나 재력, 그리고 명예 등. 그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명심해야할 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 그 선택에 따라 선으로 갈지, 악으로 갈지 정해진다는 것. 당신의 그 선택을 움직이게 만들 존재가 미소와 함께 조만간 보자는 말을 건넬 겁니다. 그때 당신은 어쩌시겠습니까?

 

제 감상이 적절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걸 떠나서, 이 <나의 모든 렐리스에게>는 작가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발신인이 적혀있지 않은 비밀편지처럼 말이죠. 그것을 알아내려는 재미가 있을 수밖에요.

 

마지막으로 <나의 모든 렐리스에게>가 말합니다.

 

우리 조만간 볼까요?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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