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감상문. 근데 제멋대로 해석을 곁들인. 공모(감상)

대상작품: 그 땅 아래에는 (작가: 이규락, 작품정보)
리뷰어: 적사각, 11월 27일, 조회 40

 ‘그 땅 아래에는’ 이라는 제목과 장르 ‘호러’를 보자마자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그 땅 아래에는 무엇이 있길래 ‘호러’ 장르를 달고 있을까. 필자는 그 땅 아래에 있는 것과 그 땅 아래로 가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땅 아래로 가는 인물들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필자가 제목에 환장한다는 건 필자의 리뷰를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제 지겹도록 익숙할 것이다. 들어가기 앞서 이런 이야기를 매번 하는 것은 어떻게 감상문을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쓰는 것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다.

 소설 전반과 결말을 다룰 것이므로 감상문을 읽기 전에 소설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다. 분량도 그리 길지 않고 몰입감이 있고 재밌어서 금방 읽을 수 있다.

 

 

 


 

 

 

 독자는 시작부터 갑자기 민정과 현수를 만난다. 두 사람은 이름부터 으스스한 기흉산 중턱에서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하산하지 못하고 길을 헤매고 있다. 따라오는 게 아니었어. 민정의 대사로 두 사람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와중에 민정과 현수 앞에 정체 모를 할머니가 나타난다. 현수는 할머니를 도와야 한다며 갑자기 할머니를 쫓아나서고 민정은 어쩔 수 없이 현수를 따라나선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시설에 도착하게 되고 현수는 눈앞에서 사라진 할머니를 찾기 위해 헤맨다. 두 사람은 어두컴컴한 시설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겪는 일이 소설의 내용이다.

 소설은 2부로 나눠져 있다. 1은 시설까지 가는 과정, 2는 시설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필자는 1은 문제편, 2는 해답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해답이 나오기까지 할머니의 정체나 시설의 진실을 나름 추리했다. 필자는 시설을 방문자의 ‘기억’이라고 생각했다. 벙커의 입구가 화물차가 다섯 대는 들어갈 정도로 넓어보였지만 막상 들어가니 단칸방만하다는 표현이나 유리관이 깨져 있는 모습이나 인간이 보고 들은 많은 것을 머릿속에 넣은 걸 은유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시설이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의 뇌인 것이다. 그 뇌에 들어간 민정과 현수는 뇌를 탐험하며 기이한 뇌에 영향을 받아 그들도 애써 잊은 기억, 들추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예상했었다. 보란듯이 예상을 빗나갔다.

 2에서 현수와 민정의 행동 이유가 어떤 기억에 기반한 것인지 설명되고, 시설에 대한 진실이 밝혀진다. 필자는 두루뭉술한 존재로 예상했는데 소설은 형태와 습성을 포함한 기이한 현상의 구체적인 정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모습을 드러나면서 소설은 분위기로 독자를 조였던 것에서 괴수에게서 도망쳐야 하는 것으로 장르가 달라진다. 종국에는 현수가 그것에 희생당하고, 민정마저 그것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암시하며 소설이 끝난다.

 소설은 아주 구체적으로 상황을 묘사한다. 주위 상황은 물론 인물의 심정까지도. 그래서 필자는 민정과 현수와 함께 기흉산 시설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시설의 묘사—특히 실험체(?) 유리관이 깨진 모습과 검은 호수, 그리고 그것과의 사투는 자세하면서 매끄러워서 눈앞에 모습이 그려지다 못해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체험형 소설이 적절한 표현이겠다.

 이것이 좋은 한편 아쉬운 점도 있었다. 1과 2의 소설 분위기가 달라진 점이다. 분위기를 조이는 무드 호러(이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에서 괴수물로 탈바꿈한 것이다. 올해 개봉한 ‘파묘’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소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필자의 편협한 관점에선 처음 느낌이 끝까지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것의 정체를 뭉개면 뭉갠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어쩌라는 거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이규락 작가님의 선택이 옳다는 것이다. 빨리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필자 나름대로 제목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 땅 아래,는 단어가 가진 뜻대로 기흉산 땅 아래 있는 시설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실험체들, 검은 호수와 그 안에 있는 Z66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며 독자들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필자는 여기서 한발짝 더 들어가보려고 한다. 필자가 1의 뒷이야기를 예상한 것에서 기인한 생각이다. 그 땅은 민정과 현수의 기억 표면을 뜻한다. 표면에는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이 있다. 행복한 일이나 잊어버려도 좋을, 예를 들어 현수에 대한 불만 같이 잊어도 괜찮은 기억들 말이다. 그러면 심층에는 어떤 기억이 있을까? 잊고 싶은 기억, 다시는 꺼내보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현수에게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고, 민정에게는 아빠에 대한 기억이다. 두 기억 모두 두 사람에게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차이점이 존재한다. 현수는 죽도록 후회하는 기억이고, 민정은 공포스러운 기억이다. 현수가 민정보다 먼저 Z66에 당한 이유도 이 차이 때문이다. 인간은 미련이 남은 기억에는 자꾸 뒤를 돌아보고 만지작거리고 고치려고 한다. 하지만 공포스러운 기억은 외면하거나 그것을 극복하고 싶어한다. 민정을 억압한 아빠의 기억에 민정은 괴로워하지만 종국에는 그것을 극복한다. 민정이 입구를 막고 있는 아빠를 밀쳐낸 행동이 그것의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Z66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걸 보면 극복하고 싶은 기억마저도 Z66이 환상으로 보여준 것이다. 민정이 바라는 그것은 결코 일어날 수, 이룰 수 없다고 말이다. 필자의 (제멋대로인) 해석과 작품의 결말을 이으면 인간은 잊고 싶은 기억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일까, 라는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해피엔딩과 배드엔딩을 구분짓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현수 때문에 끌려 들어간 민정은 마주하기 싫은 과거를 극복하고 살아남는 엔딩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필자는 본 소설의 결말도 극에 어울리며 좋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너무 깊게 연관 짓고 의미를 두려는 성향과 두 인물이 다른 결말을 맞이하며 비교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이처럼 독자가 해석할 여지가 있는 작품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작품에 구멍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단한 뿌리 위에 독자가 제멋대로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로 ‘그 땅 아래에는’은 좋은 소설이다. 장르를 ‘호러’라고 두었지만 그다지 ‘호러’스럽지 않다’. (이건 이규락 작가님께 실례되는 말일까?!) 그러니 호러’니까 주저하시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좋은 작품을 놓치기엔 아쉬우니까!

 필자가 제멋대로 해석한 부분은 깊은 아량으로 헤아려주셨으면 좋겠다. 항상 흥미로운 소설 재밌게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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