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닿아 있는 금화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피어클리벤의 금화 (작가: 신서로, 작품정보)
리뷰어: 유자청, 17년 7월, 조회 500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드래곤 때문에 변방의 가난한 영지와 주인공이 미증유의 사태를 겪게 되는 일은 한국 1세대 판타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어떤 이야기의 가장 기초적인 얼개입니다. 또 영지물이라고 했을 때, 굳이 회상한다면 부족한 전개와 허술한 문체로 쓰여진 무수한 아류작이 대여점이나 서점에 놓였던 시절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자면 피어클리벤의 금화(이하 피어클리벤)는 저 두 시기의 작품으로 판타지를 접하거나 알게 된 독자에게 익숙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수작입니다. 한 마디의 주문으로 하늘을 가르고, 검을 휘둘러 대륙을 통일하는 무한한 권능은 이 책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불멸하는 드래곤의 가호와 그 위용에 걸맞은 재보로 세상의 상권을 휘어잡아 성공하는 이야기 또한 아닙니다. 주인공 울리케는 자신의 대범함과 적재적소에 알맞은 상황판단으로 용이 나타나기 전에도 그가 살아왔던 이 세상을 뜻 깊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지어낸 세상은 2부까지 쉼없이 달려오는 지금까지 수많은 캐릭터를 선보였습니다. 원고지에만 묘사되는 세상에는 허구에 뿌리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히 살아 숨쉬는 개개인이 있으며, 그들 모두는 울리케가 그러한 것처럼 제각각 다른 강점을 보입니다.

 

모든 캐릭터가 장점만을 내보이며 앞으로 다가올 이야기의 전개에 순응했다면, 다소 평탄하여 독자로 하여금 결말을 예상케 했을 것입니다. 피어클리벤의 캐릭터에는 분명 단점도 있고, 한계도 있습니다. 옥(玉)은 흠결이 없고 투명한 것을 상품으로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주인공과 캐릭터에게 흠결은 그 캐릭터의 모티브와 행동부터 작품에서 대수롭지 않게 하는 한 줄의 대사에 이르기까지 개연성을 부여하며 깊이 관여합니다. 피어클리벤은 캐릭터의 한계를 단순한 단점으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결핍은 그들이 다른 캐릭터를 어떻게 보고, 남들과 똑같은 상황에 놓였다 하더라도 어떻게 행동하는 일까지 두루 닿아 있습니다. 단점이 있더라도 이들 모두의 기저에는 욕망이 있습니다. 피어클리벤은 캐릭터의 한계를 단순한 부족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어떨 때는 캐릭터 간의 알력을 거친 이해, 사건을 해결하면서 느낀 충족감, 캐릭터 스스로가 돌파구를 찾아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때문에 독자는 캐릭터가 겪는 사건을 더 가까이서 호흡하듯이 느끼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사는 간접적인 설명체식 서술로 이뤄진 문장보다도 독자를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게 합니다. 대륙 전반에 걸친 정치적 이해관계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많은 비밀, 곧 일어나리라 암시되는 의뭉스러운 사건의 실마리는 독특한 개성과 독자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캐릭터들의 입으로 읽는 이에게 직접 전달됩니다. 독자는 베틀에서 직물이 완성되는 과정을 감상하듯 문단과 대화문을 읽어내려가게 됩니다.

 

여기에 피어클리벤을 더 숨죽이며 감상하게 된 점으로는 울리케가 여자라는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피어클리벤의

모두 여성(그 대부분은 단순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판타지 장르에서 특별한 종족이 아닐 경우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거나 때로는 눈요깃감(소설의 메인스트림은 결코 아니며 쉬어가는 이벤트 식으로 주어지던 여캐의 성적대상화)으로 소비되어온 여성 캐릭터를 볼 때마다 느껴온 답답함, 이것밖에 볼 수 없냐는 실망, 무분별한 성적대상화를 접하며 느낀 수치를 넘어선 발전을 읽게 된 기쁨이 있습니다. 결점조차 찾을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 신비한 존재가 아니라 서투르거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캐릭터의 성장하고자 하는 면모가 캐릭터를 살아 숨쉬게 하며 그들을 입체적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각설하고, 그리하여 피어클리벤 영지에는 용이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을 사건에 앞서 말한 각각의 인물이 관여하며 자기의 목적을 이루고자 합니다. 순수한 목적보다는 얽히고설킨 욕망이 피어클리벤 영지에 폭풍의 전조를 알리는 먹구름처럼 드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윤곽을 보인 것 말고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은 앞으로도 많이 있겠으나 ‘교섭전설’, ‘영지물’이라는 작품 소개말을 떠올려 봅니다. 피어클리벤이 대륙의 새 판도를 열어 부귀영화를 달성할 곳이 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지금껏 소개된 인물들이 또 얼마나 성장하고 갈등을 겪으며 사건을 해결하게 될 것인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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