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이 탈모약이 된다고?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고르디우스 블랙 (작가: 이멍,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2월, 조회 30

이 소설 <고르디우스 블랙>을 읽으며 ‘문장이 참 차분하고 균형 잡혀 있다’라며 감탄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딱 깔끔한 문장력으로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자칫하면 어지러워질 수도 있는 구성이지만 혼란을 야기하지 않고 너무도 유려하게 읽힌다.

SF 소설로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상 현실에 가까운 판타지라고도 생각했다. 너무도 있을 법한 이야기여서다. 환갑에 가까운 나이의 여인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기생충에 진심인 제약회사 연구원 남편이 한 기생충을 ‘탈모치료제’로 개발하는 ‘과거’ 서사와 남편이 죽고 난 뒤 그 제약회사를 직접 방문하며 과거를 회고하는 ‘현재’ 서사가 교차되는데 흥미로운 지점은 그 장소가 ‘아르헨티나’라는 것이다.

어째서 아르헨티나일까,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다만 짐작할 뿐이다. 그 나라 특유의 아열대 기후와 앞날을 기약하지 못하면서 기생충 연구에 천착하는 이들의 기이한 열기가 통하는 거 같아서가 아닐까. 작가의 의도였더라도, 아니었더라도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그 후덥지근 하면서도 갑갑한 분위기가 나는 좋았다.

특히 발상이 재미있었는데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는 연구원 남편이 기생충 연구에 집중하고, 바로 그 연구가 인간의 탈모를 해소한다는 부분 말이다. 이게 정말일까 생각하면서 읽었고, 결말에서는 이것이 ‘진실’로 이뤄질 수 있든 허구든 관계없어졌다. 소설의 이야기란 그 안에서 나름의 논리만 획득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 소설 안에서 그 설정은 나를 설득시켰다. 그 연구가 초래한 부부의 결별과 그녀 홀로 돌아온 한국에서의 비애와 다시 돌아간 아리헨티나를 살펴보는 심경까지 덤덤하면서도 서늘하게, 그러나 애잔하게 잘 전해졌다.

서술되는 시점이 ‘현재’이기 때문에, ‘과거’에서 이미 그 연구가 성공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독자로서 직감하고 있었기에 결말으로 나아갈 수록 더 슬펐고, 주인공 여자의 태도가 덤덤해서 더 감정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연구와 매달린 남편, 그런 그를 열심히 보필하던 아내, 그러나 ‘모종의 사건’으로 남편을 떠나오고도 한참 뒤에야 그가 남긴 ‘유산’을 손에 거머쥐게 된다. 그 ‘회환의 세월’이 그녀를 체념적이면서도 비정한 면을 가진 여인으로 만들었을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도 나는 한참 생각했다.

이 리뷰를 읽게 된다면 소설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녀와 남편이 헤어지게 된 사건의 이유는 ‘비밀’로 남겨뒀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이 리뷰를 읽고 있다면 더욱 반갑다.

기생충이라는 낯선, (사실은 너무도 부정적인) 소재를 재해석하여 하나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을 그려낸 이 소설 <고르디우스 블랙>. 나는 결말에 이르러서 이 여인이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야’ 남편과 제대로 결별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다. 한 번은 국경이, 또 한 번은 남편의 죽음이 갈라 놓은 두 사람의 사랑은 결별의 예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수십년이 지나 남편의 유품을 받고서야 과거의 장소로 떠난 여인도, 그 여인의 복수 아닌 복수도, 사랑을 떠나보내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불꽃은 붉을 때보다 푸를 때 더 뜨거운 법이고, 어떠한 결별은 서늘할 때 더 마음이 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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