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세계, 사랑이라는 의무 감상

대상작품: 기이담 (작가: 이소플라본,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11월 2일, 조회 40

세상에 부모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부모가 일찍 죽었건, 나를 버렸건, 혹은 그래서 어떤 얼굴을 한 누구였는지 전혀 알 수 없건 우리는 모두 부모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인간이 나를 임신해 낳았기에, 나는 인간으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인간의 자식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모와 자식 관계는 참 특별한 것 같습니다. 부모 역시 자식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부모’로서 실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이 아무리 부모의 사랑만을 강조하여도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때로는 그게 누구인지 몰라 표현할 기회조차 없는 채로 한가득 품고 있는 사랑 역시 못지않게 강렬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쉬이 잊습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 라는 것을 규정해보자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믿건 그렇지 않건, 그 신이 어떤 형태와 습성을 지녔다고 믿건 신은 인간이라는 존재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근간과 떼어놓을 수 없으며 신 역시 인간이 있기 때문에 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오래도록 아주 자주 어떤 질문과 마주칩니다. 부모는, 신은 어떤 존재인가? 사람은 누구이고 자식은 무엇인가? 부모와 신은 나를 사랑하는가? 모든 부모와 신이 자식을, 인간을 아끼는가? 그런데, 그것이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의무일까? 반대로 자그만 인간인, 신의 자식인 우리는 어떠한가. 이소플라본 작가는 연작소설 <기이담> 중 ‘앨리 앨리 라마 사박다니’ 에피소드에서 이 질문에 대해 끈질기게 다룹니다.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요. 누구든 스치듯 막연하게라도 품곤 하는 인간의 깊은 질문을 던지는 주인공들을 쫓아가며 저 역시 함께 답을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지요. 나를 온전히 받아주고 원하는 바를 들어줄 존재도요. 그런데 인생에 딱 한 시기 그런 때가 있습니다. 바로 아기 적입니다. 배가 고파 울면 젖이 입에 들어오고, 잠이 안 와 울면 나를 흔들어 재워주는 존재, 부모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시기를 갖지 못한 채 자라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니 사람이 신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영유아기 부모에 대해 품었던 상과 닮아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겁니다. 귀신이나 영적 존재에 투영하는 것이 개인 각자의 두려움과 욕망이듯이요. 자, 그래서 저는 <기이담>의 주인공들처럼 저 자신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는가?’, ‘신은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인간은 신을 사랑해야 하는가?’.

 

<기이담> 속 인물들은 신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었고 그 영향을 겪어내며 살아갑니다. 소설이 그려내는 무속적 세계관 안에서 ‘신’은 인간의 소원을 품고 태어난 인간의 자식입니다. 그래서 끝없이 사랑을 요구하고 사랑을 주고자 합니다. 상호작용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지요. 그러나 어떤 신들의 욕구는 좌절됩니다. 이 욕구는 생존과 밀접합니다. 주위에 사랑을 주고받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인간이 없을 때, 신은 존재의 의미를 잃고 흔들립니다. 그때 그들은 신이되 신이 아닌, ‘두억시니’와 같은 존재가 됩니다. 두억시니의 모습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 머리가 으스러지듯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소설 속 두억시니는 상대를 향해 선한 의도를 갖고 접근하나 그 방법이 인간을 겁에 질리게 만듭니다. 이 모순 앞에 혼란스러워하는 일행에게, ‘내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여도 속은 썩어문드러진지라, 가다듬고 깎아내어도 흉한 기운이 풍긴단다.’ 라고 고백하는 두억시니의 말이 마음을 저리게 하는 까닭은, 나도 때로 그러했고 내가 만난 누군가도 그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만들어놓고 내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았는가, 인간을 향해 울부짖는 두억시니는 괴물이 되어갑니다. 그 앞에선 인간들은 또한 신에 의해 해를 입었던 자들이지요. 이 비극적인 풍경 앞에서 제가 떠올린, 오래된 질문과 그 답은 이렇습니다. 신은, 부모는 사람과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가? 사람은 신을, 이 세계를, 부모를, 그리고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런 법은 없다. 어디에도 그것에 대해 명문화된 법이나, 하늘에 새겨진 율법 같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내 곁에 두기로 결정한 것들에 대해 사랑으로 끝까지 책임지기를, 날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한다. 이것이 제 개인적인 답지입니다.

 

세상은 불완전하고 인간도 그러하지요. 이러한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난 나 역시 부족한 존재여서, 누군가를 사랑하기 이전에 나 자신조차 사랑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해서만은 미흡하게라도 사랑을 가지려 발버둥치는 것이 의무라고 여깁니다. 세계는 얼마나 황폐해지기 쉬운가요. 신의 손이 닿지 않아 질서도 평화도 깨져버린 산골짜기 같은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서로를 끝없이 구하는 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어떤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 아니라서, 내가 원해 세상에 내놓은 자식마저 사랑하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한계라서, 우리는 각자의 삶에 자그만 법칙들을 세워갑니다. 다만 나의 작은 신들이 두억시니가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일. <기이담>을 읽고 그 일에 대해 오래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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