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을 위한 로맨스 비평

대상작품: 좋아하는 척 (작가: 오메르타,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8월 5일, 조회 39

소위 ‘경성시대’는 문화 창작자들에게 뜨거운 감자입니다. 서울이 경성이라 불리던 1900년대 초반의 어느 시기를 그릴 때 주인공은 대개 모던 걸, 모던보이 혹은 친일파 그리고 지식인이 되기 쉽지요. 식민지배 하에서 고통받던 대다수 소시민을 스치는 풍경 삼으며 시대를 낭만화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잦은 까닭은 그래서일 겁니다. 역으로 말하면,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이야기의 배경으로 택할만한 가치가 있는 시기기도 합니다. 그게 비록 소수의 문화였더라도 서구식 문물이 도입되고, 어느새 그늘처럼 자연스레 드리운 식민지배의 참혹함 아래서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하고 누군가는 나라를 팔고 누군가는 시대를 외면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너무나 다른 이들이 서로 엮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부딪치며 나오는 긴장감은 로맨스와 스릴러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그렇다면 위험지대를 피하며 강점을 활용해 불편하지 않고 즐거운 ‘경성 로맨스’를 만드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오메르타 작가의 <좋아하는 척>이 한 길을 보여줍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극단 ‘유월회’ 소속 단원인 희수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희수가 속한 유월회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시대를 넘어 희곡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인생과 사랑을 은유합니다. 유월회 사람들을 포함해 연극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야 많겠지만, 이 소설에는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이 크게 셋 눈에 띕니다. 희수, 또 한 사람, 그리고 소설의 작가입니다. 이야기의 흐름과 인물들의 대사를 따라가며 뚝뚝 묻어나는 연극에 대한 애정을 접하다 보면 독자 역시 그 마음에 물듭니다. 소설은 하나의 극이 오르고 내리려면 주연뿐 아니라 조연을 비롯해 눈에 띄지 않는 이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보편적 주제를 말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작중 세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잇걸’ 예진이 그리고 –그가 포함되기도 하는-적극적 독립운동가들은 주연의 역할을 맡지만, 소설 자체의 주연은 희수와 ‘미스타 정’으로 불리는 엽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야기에서 주연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대사는,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가는 것으로 소설에서 사라진 예진 그리고 숱한 독립운동가와 민초에게까지 확장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와 타협한 두 사람의 아릿하고 사랑스러운 로맨스, 그리고 원치 않는 이미지를 덧써가면서까지 예진이 택한 옳은 길 모두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임을 압니다. 위장한 독립운동가와 친일 기업가, 태연한 얼굴의 모던걸, 그리고 이들이 벌이는 심리전과 로맨스라는 보편적 플롯 속에서 작품은 이렇게 고유함을 갖습니다.

 

<좋아하는 척>은 원고지 150매 분량의 소설입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요. 그런 만큼 단순히 강렬하고 명확한 서사구조를 넘어 매력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할 것입니다. 오메르타 작가는 작중 인물이 바라보는 세계의 디테일 하나하나를 세밀하고도 경쾌하게 그리며 독자를 이야기 안에 끌어들입니다. 예를 들어 희수는 가배를 여러 차례 마시지만, 장면 장면에서 그 가배를 둘러싼 묘사는 모두 새롭고 고유하지요. 이야기는 주제의식에 짓눌리는 대신 장르 공식과 유려한 스토리텔링 위를 산뜻하게 뛰어다닙니다. 의뭉스럽지만 끝에 가서야 정체를 드러내는 맥거핀의 입체적 캐릭터가 모두 직업적 배경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로맨스와 스릴러가 결합한 장르, 그리고 시대극을 찾는 독자들이 기대한 정서적 체험을 만족스럽게 마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오메르타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역사의 뒤편에 있을 수많은 예진을 기억하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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