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는 것들을 보이지 않은 척하는 일들에 관하여. 공모(감상)

대상작품: 거대한 호수와 그 너머 어딘가 (작가: 권선율,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7월 18일, 조회 31

떠나가는 일에는 이유가 있을까. 자신에게만 침잠할 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는 것들을 보이지 않은 척하는 일들을 슬프게도 우리는 어느 때를 놓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아름다운 이별이 아닌 추한 이별이다. 그리고 그 이별 속에서 서러움에 잠기는 일이야 말로 자기혐오의 일환이다. 필경, 자신의 약함과 추함을 마주하는 일은 서러운 일이다. 자신의 못남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모습과 비교하며 자신의 못남을 반추하는 일은 패배감과 질투만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패배감과 질투는 열등감을 일으키고 끝내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문제는, 그 악순환 속에서 타인을 보지 못한 채 자신에게만 침잠할 뿐이라는 것이다. 보이는 것들을 외면하면서, 보아야하는 것들을 보지 못하면서, 권선율 작가님의 소설 <거대한 호수와 그 너머 어딘가>는 그런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과 윤정의 관계는 비대칭이다. 의존적인 관계, 주지 못하며 받기만 하는 관계는 건강하지 못하다. 그것을 증명하듯 평소의 관계에서, 주인공이 윤정의 상냥함에 기대기만 했다고 회고한다. 일례로, 주인공이 감기 걸렸을 당시 윤정이 해준 간호를 주인공은 귀찮다고 화를 낸다. 그러나 윤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한다. 더욱이, 주인공은 윤정과 달리 임용 시험에도 탈락했고 윤정이 소개해준 학원에서도 해고 통보를 받는다. 이렇듯 서로의 사회적 입지는 상이하다. 연인의 도식에서 이러한 관계는 정서적인 착취이다. 그리고 착취이기 때문에 이런 관계가 영원토록 계속될 리는 없다. 주인공의 회고 속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렸다는 발언은 당연히 배려 받을 줄 알았던 착각으로부터 기인한다. 주인공은 자신에게만 침잠하며 윤정을 바라보지 못했으나, 윤정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자명한 명제를 주인공은 바로보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의 다정함을 부담스러워하는 등, 스스로의 감정에 치우친다.

소설은 마치 수미상관을 이루듯, 결혼식장에서 일을 일으킨 사내와 내가 해고 통보를 받은 일을 앞뒤로 배치한다. 둘의 해고 사유는 상이하면서도 비슷하다. 사내는 폭언으로 직원이 자살하는 상황에 이르러 파국에 이르렀고, 주인공은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문제되는 발언으로 학원에 해고 통보를 받음으로써 파국의 시발점에 이른다. 그리고 파국은 점점 커져나가 끝내 윤정이 ‘나’를 떠나게 만든다. 둘은 모두 자신의 발언이 왜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하며, 아울러 그 발언이 무슨 의미를 지녔는지도 제대로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습게도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원인으로 서로를 지목한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는 옳고 어떤 점에서는 그르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가리는 아집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했고, 사내는 스스로의 권력과 상황에만 집중한 채 주변을 살펴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정은 왜 주인공과 결혼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리고 할슈탈트로 가자는 약속을 어겼을 때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어떤 사유로 주인공을 떠난 것일까. 소설에서는 그 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관계의 비대칭의 피해자로서 어느 순간 주인공을 감당하지 못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마도 결혼을 하게 된 후엔, 서로의 관계성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그마한 희망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주인공이 홀로 마주친 호수는 일종의 거울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그리고 그 곳에 길은 없었으니 스스로만 오롯하며, 이내 스스로에게만 침잠한 자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이 같이 호수를 봤다는 가정은 무의미하다.

자신에게 이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는 사내에게 주인공이 5만원을 건네는 일은 너무 늦은 후회임과 동시에 아직 자신에게 침잠해있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사내와는 달리 폭언으로 누군가를 간접살해하지도 않았다고 되레 사내로 인해 윤정을 잃었다고 회고하는 것이 그 예다. 이 장면은 맨 처음 제시된 영화의 장면과 오버랩 된다. 영화 속에서 소년은 친구를 위해 또래 아이로부터 돈을 뺏어 도망친다. 그 사유는 소년이 뺏은 돈이 바로 소년의 친구로부터 빼앗은 돈이었기 때문이다. 이 돈은, 사내가 하객 알바로 원래 받아야했던 돈을, 회사에 컴플레인 걸어서 받지 못하게 한 돈과 겹쳐 보인다. 그렇게 소년과 아이가 집으로 잘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직 윤정과의 관계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채 재결합하고자 하는 욕망의 소산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끝내 할슈탈트에 도달할 수 없었으니 영화와는 다른 상황일 뿐이다.

눈이 되지 못한 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우산이 없으니, 그저 서글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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