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천명을 받들라 감상

대상작품: 호귀(虎鬼) (작가: 테라리엄,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6월 30일, 조회 50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다. 학문보다는 기술을, 허울 좋은 지위보다는 더 나은 생산을 추구하던 그는 당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지금까지 널리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러나 대중이 이미 알고 있듯이 그를 ‘실학’이라는 것으로만 소개하기는 어렵다. 박지원은 철학과 사상, 과학과 문학 등에 두루 박식했던 문필가이기도 하다. 수필로는 청나라 황제 건륭제의 생일을 맞아 사절로 파견되어 두루 그곳을 돌아보고 귀국해 저술한 『열하일기』와 코끼리를 보고 그 감상을 적은 짧은 글 「상기」가 대표적이다. 소설로는 양반 직분의 허상과 매관매직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양반전」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친 「허생전」, 노동자인 엄 행수를 ‘예덕선생’이라 높이며 그의 노동력을 찬양한 「예덕선생전」, 호랑이의 입을 빌려 인간의 잘잘못을 낱낱이 가리는 「호질」 등이 있다. 박지원은 농서인 「과농소초」를 쓰기도 했다. 그는 문집인 『연암집』 제2권에 「백자 증정부인박씨묘지명」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맏누이를 추모하는 글도 실었으니 과연 장르와 주제를 가리지 않은 진정한 문인이었다고 평할 만하다.

그중 소설 「호질」은 단연코 지금까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호랑이가 (인간을) 질책한다’라는 의미의 이 소설에는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있다. 『열하일기』에 따르면 ‘호질’이 박지원의 순수 창작물이 아닌 심유붕이라는 사람의 점포 격상에 적힌 글을 정 진사와 함께 베껴온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혹자는 이것이 박지원의 저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실제로 문학사적인 의미에서 「호질」의 원저자를 밝히는 연구가 다수 있었다. 그러나 ‘기’라는 장르의 특성상 「호질」의 기원에 대한 박지원의 진술조차 완전한 사실인지 알 수 없으며, 박지원 저작에서 드러나는 특징이 소설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을 근거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호질」의 원저자가 박지원이라고 주장한다.

「호질」’은 동물이 인간을 꾸짖는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갖는다. 호랑이의 몸에 붙은 귀신들이 인간 중 선비를 잡아먹을 것을 호랑이에게 권하지만 ‘북곽선생’이라 불리는 그 선비는 본래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아첨하기 좋아하는 자니 범이 그를 먹지 못하고 오히려 훈계한다. 북곽선생인 홀로 사는 ‘동리자’라는 여성을 사랑하고 수절 과부로 소문난 동리자에게는 성씨가 다른 아들이 다섯 있었다는 점이 당대의 시선으로 인간을 비판하는 대목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박지원은 이를 통해 「양반전」, 「예덕선생전」과 마찬가지로 양반의 허례허식과 학문을 실용으로 이끌지 못하는 학자들을 비판한다.

「호질」은 인간을 신랄하게 평가하는 소설임에도 환상성이 두드러진다. 호랑이가 말을 한다는 것, 호랑이의 몸에 붙은 귀신이 호랑이에게 말을 건다는 것, 소설의 초반에 ‘비위’, ‘범우’, 박’, ‘오색 사자’, ‘자백’, ‘표견’, ‘황요’, ‘활’, ‘추이’ 등 호랑이를 잡아먹는 가상의 동물이 등장한다는 것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박지원이 「양반전」과 「허생전」에서 현실 속 장면을 생생한 문학으로 남겼다면, 「호질」은 작가로서 그의 상상력을 양껏 펼친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원저자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이 소설은 작품성의 면에서 뛰어남을 먼저 인정받았다. 호랑이가 인간을 꾸짖는다는 환상성과 ‘북곽선생’, ‘동리자’ 등 상징적인 인물상을 통해 완전한 허구로만 보이는 이 소설이 상상이 아닌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였다면 어떨까. 호질의 원작을 소장하고 있던 심유붕은 그 이야기를 어디선가 전해들었고, 박지원이 이를 소설로 각색했다면, 그리고 「호질」’이 사실 박지원의 잃어버린 아들과 깊이 연관된 소설이었다면. 「호질」 속 ‘귀신 붙은 호랑이’가 실존했다면. 그리고 박지원에게 귀신을 보는 아들이 있었다면. 우리는 이 소설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위의 가정은 박지원의 어떤 저작과 역사서에도 없는 완전한 거짓이다. 그러나, 흥미롭지 않은가. 테라리움 작가의 장편 연재작 《호귀》는 이런 가정에서 출발했다. ‘귀신 붙은 호랑이’가 아닌 ‘귀신이 된 호랑이’. 산천을 호령하는 호랑이 ‘산군’에 대해 어느 날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 산군에게는 아귀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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