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여성’이라 불린다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템플릿(Template) (작가: 사피엔스,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2년 6월, 조회 64

생식하지 않고 번식하는 인간.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인간 생식의 다양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먼 미래의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번식할까. 특히 오래 전부터 장르로서의 SF는 여성이 임신하지 않는 사회를 다루는 데에 적극적이었다. 배양 수조, 인공포궁, 3D 프린터 등 번식의 방법은 다양했으며 인간들이 그렇게 다음 세대를 만드는 이유 또한 여러 가지였다. SF 작가들은 우생학과 인간 착취의 비판 등 심도 있는 논의부터 단순 유희에 이르기까지 콘텐츠 속 체외 임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인공생식은 인간과 인간이 만나 다른 인간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의 고통을 줄이기 때문에 여성해방의 면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번식을 위한 생식은 한 인간과 다른 인간의 생식세포를 결합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특정 사회적 주제를 다루기 위해, 또는 획일화된 사회상을 반영하기 위해 인간 ‘복제’를 등장시키는 스토리텔링도 꾸준히 생산되는 중이다.

인간 복제는 한 사람과 동일한 유전자형의 사람을 한 명부터 무한대로 복사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 복제는 왜 서사로서 매력적일까.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투영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복제인간은 치료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신체 전반을 복제하는 것이 아닌 특정 세포를 배양해 장기를 만들어 이식하는 기술은 이미 개발되었다. 자신의 세포를 배양해 복제한 장기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장기보다 이식 후 부작용이 덜하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사고처럼 위급한 순간에 곧바로 쓰일 수 없다. 그렇다면 이미 완성된 신체 부위를 가진 인간을 만들어 그런 급박한 경우를 대비한다면 어떨까. 분명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은 복제를 통해 자신의 생명을 ‘연속’할 수도 있다. 신체의 노화로 생명을 ‘연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메모리가 개발된다면 새로운 신체에 기존의 기억을 이식해 다음 수명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인간은 복제를 통해 노동력을 증대할 수도 있다. 로봇에 비해 인간 신체 유지에는 많은 자원이 필요하지만, 의사소통의 면에서 편리함이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인간 복제는 엄격한 윤리적 잣대로 금지된다. 일반적으로 인간복제가 상용화된다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대두될 것은 ‘누가 원본인가’ 하는 논쟁이다. 분명 인간 복제는 태초의 원본에서 복사본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원본과 복사본이 동시대에 존재할 경우, 특히 생명의 연속이 아닌 치료와 노동력을 목적으로 인간 복제를 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점이 문제시될 수 있다. 둘의 유전형질이 동일한데 한쪽이 다른 한쪽보다 우월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모순이기 떄문이다. 둘째로 이런 인간 복제는 대체로 생명 존재를 수단화한다는 문제에 부딪힌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인간 복제가 실현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치료 목적의 장기 배양에서 인간을 복제하는 단계로 쉽사리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도, 분명한 이점이 있지만 노동력을 위해 인간 생산을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세 번째로 인간 복제는 계층 간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 인간 복제가 존재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도 인간 사회는 양극화의 극단을 달리고 있다. 이는 주로 경제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지만, 의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수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인간복제까지 실현된다면 어떨까. 이는 새로운 노예제의 탄생으로 이어져 돈 많은 사람이 다시금 노동력을 독점하는 사회 구조를 만들 수도 있다.

전술하였듯 이런 윤리적 질문의 반대편에는 항상 인간의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의 폭발을 제한하기 위한 윤리적 질문이 있기에 수많은 SF 작가들은 윤리와 인간의 욕망을 대척점에 놓고 주로 그들의 끝없는 욕심을 강조해 왔다. 그리고 여기, 드디어 인간 복제의 ‘템플릿’을 상상하기에 이른 소설이 있다. 무제한으로 인간을 복제해 진짜 노동력으로 삼는 세상. 인간이 거의 절멸한 범지구적인 사건 이후, 밀폐된 공간에서 끊임없이 복제된 인간들. 일련번호로 불리는 그들이 자신의 세상에 발생한 오류를 깨닫고 단절되어 있던 곳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그들은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 세계에 일어난 오류는 ‘템플릿’의 고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불완전한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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