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 속 우리의 차원이 만나는 날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도덕적 관점 (작가: 삶이황천길,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6월 24일, 조회 49

한 광고를 본 적이 있다.“제 이름은 김소희입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영상은 실제 청각장애인 김소희 씨와 그의 가족 사례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광고의 요는 청각장애인 김 씨의 목소리를 AI 기술을 통해 복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광고 속 기술자들은 가족의 목소리와 소희 씨의 구강 구조를 분석해 김 씨의 것이라 예상되는 음성을 만들었다.  이 영상을 보며 많은 사람이 기적을 본 듯 감동했고 해당 광고를 만든 통신사는 ‘따뜻한 기술’의 발전을 소비자에게 확실히 각인하는 효과를 얻었다. 영상 속 김 씨와 가족들이 흘리는 눈물은 ‘사라졌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음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고, 기술의 발전이 그렇게 차갑지만은 아닐 것이라는 낙관론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이 광고가 등장한 지 2년 여가 흐른 지금, 장애인 당사자뿐 아니라 대중들에게서도 이 광고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광고를 보는 내내 분명히 감동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음에도 어딘가 찝찝함을 감지한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직접적인 논평을 시작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들이었다. 먼저 농인 유튜버 하개월은 유튜브 채널 ‘당장만나’에 게시된 영상을 통해 이 광고에서 보이는 ‘오디즘(청인 중심 사회에서 농인에게 구화를 강요하는 것)’을 언급했다. 농인도 분명히 그들의 언어인 수어가 있지만, 광고에서는 수어가 ‘언어’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광고 속 김씨와 그의 가족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기획자들 또한 나쁜 의도로 이 광고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청인이 중심되어 기획한 프로젝트인 만큼 이 광고가 오디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소설가 김초엽은 작가 김원영과 공저한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가지니가 김씨에게 선물한 ‘목소리’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 청인들이 청각장애인에게서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다”. 농인이 평생에 걸쳐 지적받는 발음의 어눌함은 비장애인들이 “왜 입모양이 잘 보이게 말하지 않는지, 왜 그렇게 입을 불분명하게 움직이는지”로 치환되지 않는다.

위의 사례에서 보이듯, 여전히 장애인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은 편향적이고 왜곡되어 있다. 이런 경향은 장애인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모든 관점으로 확대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무인화, 비대면이 새로운 시류가 됨에 따라 키오스크의 사용이 급증했다. 이 기계의 편리함은 어디까지 한정되어 있을까. 대부분의 키오스크는 세로로 긴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직립한 성인의 키에 맞춰 설계된 키오스크에서 키가 작은 어린이나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선택하는 메뉴에 한계가 생긴다. 눈을 감고 키오스크를 사용해보자. 우리는 키오스크는 버튼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 수 없다. 대체로 음성 해설 기능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시각장애인에게 키오스크의 접근성이 매우 낮음을 증명한다. 기술 소외계층이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일정 시간의 교육이 있지 않은 이상 그들에게도 기술의 편리함이 닿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금보다 더욱 기술이 발전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장애와의 진정한 조화를 이루게 될까. 아니면 더욱 정상성을 공고히 다지는 사회에 살게 될까. 삶이황천길 작가의 단편 〈도덕적 관점〉은 기술의 도약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꾀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알맞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멀지 않은 미래에 개발된 로봇 한 대와 장애를 가진 노인 엘렌의 짧은 이야기에서 독자가 감지하는 기시감은 ‘그들’의 삶이 우리와 얼마나 비슷한가에서 출발한다.

 

불편한 편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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