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안티고네, 그리고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랍다코스 가문의 마지막 사람 (작가: 아르샤트, 작품정보)
리뷰어: 휴락, 5월 19일, 조회 41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들, 아니. 인류문학사의 전 비극을 걸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를 통틀어 이토록 처절하게 파멸하는 영웅은 드물다. 더구나 지혜를 무기로 영웅이 된 그가, 정작 그 지혜로 인해 몰락한다니. 그의 아이러니한 삶은 다양한 형태로 후대에 변주 되었으며, 또한 그 이름은 후대에도 ‘아킬레스건’, ‘트로이의 목마’ 등처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형태로 ‘무언가에 빗대어질 수 있는 존재’, 즉, 하나의 거대한 관념으로 남았다.

그에 걸맞게도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라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는 모두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비극을 써냈다. 그리스 비극은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아테네의 승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아테네가 몰락하기까지 1세기 남짓 유행하였는데, 3대 작가 중 1세대인 아이스퀼로스가 소포클레스의 스승이며, 소포클레스가 91살까지 활동하며 3세대인 에우리피데스와 활동 시기가 겹치는 것으로 보아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당대에도 반복적으로 답습할 만큼 상당히 인기 있는 소재였던 것으로 보인다. 본작은 그중에서도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이야기에서 참고했다고 밝혔다.

본작의 화자는 특이하게도 오이디푸스의 살아남은 딸 이스메네다. 이스메네는 그간의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중심에서 다소 벗어난 인물이었다. 그녀는 테베에서 추방된 오이디푸스와 동행하였고,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숙부 크레온에게 납치되었다가 테세우스에게 구출되기도 하지만 그뿐이다. 비로소 ‘안티고네’에서야 비중을 얻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중심은 언니 안티고네다. 이스메네는 위기를 자초하는 언니를 만류한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의 왕위를 둔 내전은 둘 모두의 죽음으로 끝났다. 새로 왕이 된 크레온은 비록 1년 주기로 서로 왕위를 번갈아 차지하자는 약속을 먼저 어긴 것은 에테오클레스였으나, 타국인 타르고스를 끌어들여 테베를 공격한 폴리네이케스를 반역자로 간주하여 그를 추모하고 장례지내는 자 역시 반역자로 간주하겠다 선포한다. 반면에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는 성대히 치러 준다. 크레온 본인이 두 형제의 내전 중 두 아들을 잃고, 직후 여동생이자 오이디푸스의 아내인 이오카스테를 잃은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관대한 처분이라 할 수도 있겠다.

안티고네는 혈육의 정과 자신의 양심을 이유로 들며 폴리네이케스를 추모하고자 하고, 이스메네는 자신들의 현실적인 처지와 이성적인 판단을 들어 언니를 만류한다. 안티고네는 동생의 충고를 경청하지만, 따르지는 않는다. 안티고네는 분노한 크레온에 의해 감옥에 갇혔다 자살한다. 이후 그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 하이몬 역시 자살하고, 뒤이어 하이몬의 어머니이자 크레온의 아내인 에우리디케 역시 자살한다. 그로써 오이디푸스 가문의 저주는 또다시 완성되었다.

본작 시점의 이스메네는 온 가족을 모두 잃고, 남은 혈육은 외숙부 크레온 뿐인 처지다. 그녀는 청중 앞에 비극의 이야기꾼으로서 선다. 이스메네는 상술한 일족의 비극에 지치고 싸늘해진 상태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새로운 저주와 비극을 낳은 아버지 오이디푸스를, 오빠를 추모하고 자살한 언니 안티고네에게 울분을 터뜨린다. 이스메네에게 그들의 죽음은 ‘황당한’ 것으로, 노력을 거듭해도 수렁에 빠져들 뿐인 상황에 절망해 자살한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자신들의 욕망에 먹혀 서로를 죽인 두 오빠, 덧붙이면 외숙모 에우리디케의 죽음과 대비된다.

이스메네는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를 ‘참 닮은 부녀’라 냉소한다. 그녀의 시선에서 그들은 ‘자신만을 사랑한 사람’으로, 자신의 운명, 자신의 이상, 자신의 이름만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자신을 사랑하는 다른 이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을 수 있었고, 자신들의 고집을 밀어붙여 그들의 유아론적 세계의 문을 스스로 걸어 닫았다. 이스메네는 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녀의 눈에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한층 삐뚤어진 형태의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스스로 비극의 종지부를 찍으려는 자기파괴 행위인 것이다.

이스메네는 이어서 언니의 약혼자였던 하이몬 역시 비난한다. 하지만 앞선 인물들을 향한 분노와는 결이 다른데, 하이몬을 향한 분노는 안타까움과 연민이 혼재된 형태다. 하이몬은 보다 평범함에 가까운 성품의 청년이었고, 그렇기에 안티고네의 자기파멸에 휘말렸다. 마찬가지로 평범함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해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이스메네는, 다시 한 번 그마저 앗아간 안티고네에 분노한다.

마지막 분노의 불꽃마저 태우고, 이스메네는 마치 잔불처럼 허탈하게 말을 잇는다. 이스메네는 처음 이야기에 앞서 ‘평범한 이름도 낙인이자 저주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끝끝내 배제된 존재고,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기도 하다. 이스메네는 마찬가지의 처지인 크레온을 동정한다. 이스메네는 ‘우리가 자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삶이 제 알아서 끝나기 전까지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랍다코스 가의 마지막 사람, 아무 쓸모도 없는 이스메네’라 소개한다.

소포클레스의 ‘테베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오이디푸스 왕’은 그의 불후의 역작으로 꼽을 수 있으며, 현대에서도 노벨연구소 선정 최고의 책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소포클레스는 비극을 다루며 개인에 가장 중점을 두었는데, 이성적이고 영웅적인 주인공과 불합리한 세계 간의 대립과 그로 인한 고뇌가 그의 작품의 키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본작은 이야기의 상대적 외측에서 소외된 ‘평범한 사람’ 이스메네에 집중하며, 그러한 갈등관계를 보다 극대화시켰다.

본작의 이스메네는 끝끝내 자신까지도 자살하거나(소포클레스), 이어진 훗날의 비극에서 희생되는(아이스퀼로스, ‘테베를 공격하는 일곱 영웅’) 것과는 달리 ‘그럼에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미약하게나마 보여준다. 물론 이는 ‘스스로의 삶과 가치를 개척해 나갈 것’이라는 능동적 허무주의나 실존주의식 결말과는 다르고, 오히려 ‘더 나아질 수는 없겠지만 더 나빠질 수도 없을 것’이라는 수동적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에 가깝다. 그렇더라도 소소한 희망을 느껴봄직 하지 않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비극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던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오늘날의 사람들 역시 소위 ‘사이다’라는 것으로 안정을 얻곤 하는 것 같다. 이러한 흐름을 옳다 그르다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찾아오는, 이러한 ‘반동적’이고 ‘복고적’인 작품 또한 틀리다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양비론이 아니다. 나는 비극과 염세주의 작풍을 좋아하며, 흔한 판타지물에서의 서유럽식 작명에 지겨워하는 독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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