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찬란하게 쓸쓸했던 세상으로부터. 공모(감상)

대상작품: 그 세계가 따스했던 나날에 (작가: 겨울볕, 작품정보)
리뷰어: NahrDijla, 5월 11일, 조회 27

※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겨울볕님의 소설 <그 세계가 따스했던 나날에>의 기본적인 정서는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애수입니다. 멸망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것의 진위를 찾아가는 이야기, 두 가지 층위로 구성되어 있는 애수는 복합적이면서도 일견 따스한 톤을 유지합니다. 그 것은 아마도 잊혀져가는 것을 다시금 현세로 불러내어 애도하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혼 후 방황하던 시절 다소 치기 어린 방향으로 쓰여진 논문 <문명 신호로서의 고에너지 광자 복사>가 사실로 밝혀지면서, 스타 과학자가 된 나는 논문의 대상이 된 행성을 탐사하게 되는 팀에 포함되게 됩니다. 팀에 포함되었다고 해도 행성의 조사에는 천문학자가 할 일이 없었기에 자료 해석하는 일에 차출 됩니다. 그렇게 지질조사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도중, 나는 도굴(!)한 시각 자료를 보는 도중, 하나의 가설을 생각하고 그 것의 증명을 요청합니다. 그 것은 이 행성의 문명이 136억 년 전 우주가 따스했던 시기에 번성했던 문명이었으며 떠돌이 별이었던 사실이었습니다.

소설에서 SF의 인지적 소외는 두가지 층위 모두에서 반전적인 역할로 드러납니다. 멸망한지 ‘상대적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던 추측은 136억년이라는 거의 태초의 시간대에 생존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부서집니다. 그 것은 우리의 존재가 처음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삶의 끝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삶이 우리에게 이어지는 순간을 아름답고 쓸쓸하게 표현합니다. 그들의 시점에서 자신들에게 위기를 안내하고 표본을 수집하게 했던 ‘할머니’의 존재가 사실 컴퓨터였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겨울을 끝내기 위한 노력이 사실은 거짓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페카는 의연하게 마지막 역할을 수용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은 우리의 곁에 주어진 항성의 끝에는 어떤 현실이 존재 할지를 상상하게 됩니다. 행성간 이동이 가능해진 소설의 시점에서는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가 그리 먼 미래만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점에서 멸망한 문명이 인간을 기억 저장 장치로 이용할 정도로 고도화된 문명이었을 것이나, 그들이 우주로 나서지 못했던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그들의 후손이라고 하기엔, 136억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기니까요.

아이러니한 것은 에리니스라는 보복, 질투, 분노의 여신이라는 이름을 차용한 것입니다. 그 것이 따스했던 우주의 마지막 생존자들에게 어울릴법한 작명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에페카의 마지막 말이 다소 따스하면서도 서글프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아이러니함 위에 세워졌기에 더욱 그리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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