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당스의 장막 너머에서 풍겨 오는 달콤하고도 위험한 향기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발광하는 여자친구 (작가: 이준, 작품정보)
리뷰어: Izedokia, 3월 19일, 조회 78

※본문은 작품의 전체 줄거리를 다루고 있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독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리뷰는 비평이 아닌 ‘감상’이며, 본문에 나타나 있는 읽기 방식과 해석을 작품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스포일러 및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원치 않는 분은 작품을 먼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발광發光이라는 단어의 매력은 가시광선을 통해 세계를 보는 우리에게 있어 저항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생물에게 적용되었을 때는, 전통적으로 낭만의 상징으로 쓰였던 ― 가령 반딧불이 같은 ― 몇몇 종족을 제외하고는 도리어 신비와 경외를 느끼게 한다. 적지 않은 수의 해양 생물이 생체 발광bioluminescence 기제를 지니고 있으며, 육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생체 발광의 사례는 그에 비해 훨씬 적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생체 발광에 대한 최초의 기록에서는 ‘죽은 생선의 발광 사례’를, 플리니우스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서는 ‘축축한 나무에서 발생하는 도깨비불foxfire’에 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고대인들의 선구적이고 예리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발광 기제가 바르게 연구된 것은 무려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생물의 발광은 그만큼 육상에서 관찰하기 드문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환상적인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

‘발광하는’ 여자친구라니, 이 얼마나 기이한 제목인가? 여자친구라는 호칭어는 그 명명의 모호함 때문에 줄곧 오남용되어 온 단어다. 그런데 사회의 상투성 때문에 힘을 잃은 이 단어 옆에 낯설고 용례가 없는 연결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의 취약한 내면 세계는 친숙한 개념이 이방의 것으로 변모하는 순간 부조화를 느낀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진위에 관한 근본적 의문’이 호기심의 시작이다. ‘코스미시즘cosmicism의 현란하고도 기괴한 색채가 “여자친구”라는 허물을 입고 있을까?’ 제목을 보는 순간, 필자는 두 어절의 간극 속에 숨은 맥락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질적인 조합의 언어로부터 침습하는 속삭임에 과연 어느 독자가 저항하겠는가?

 

브랜디의 희미한 향기 위로 무겁게 깔린 ‘영민’의 초조함과 함께 글은 시작된다. 아이가 동양계 혼혈이면 베를린으로 돌아와야 할 거라는 여자의 메시지 ― 자신이 근원일지도 모르는 어느 소식을 대하는 ‘영민’의 태도는 건조하고 타산적이다. ‘확률 게임.’ 그것이 개인의 책임을 바라보는 ‘영민’의 해석 방식이다. 그는 본명을 걸고 데이트를 하지도, 자신의 희로애락을 전시하지도 않는다. ‘영민’은 베를린에서의 업보가 그를 추적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지만, 그는 여전히 재즈바의 어두운 조명 아래 죄악을 숨긴 밀수업자처럼 웅크리고 있다.

‘영민’의 리모델링 방식은 비상계단실의 난간을 제거하고, 형광등을 부수고, 콘돔을 장식으로 걸어두는 것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안전장치의 해체로 이루어져 있다. 야릇하게 놀던 남자들에게 불쾌감을 느끼는 ‘영민’이지만, 그들이 재즈바를 찾게 만든 것은 결과적으로 그의 설계다. 그 자신은 힙스터의 유흥에 무관심하다 느낄지 몰라도, 그는 향락적인 공기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는 않다.

(다소 뜬금없는 말이지만,) 인지·지각에서 가장 비중이 큰 감각은 시각이다. 우리는 시각 자극을 해석하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반면, 후각 자극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수준의 정의를 내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 특히 시각 단서가 제시되지 않은 향기는 그 자체로 미지의 영역이다. 그리고 책임으로부터 도망친 ‘영민’의 무방비한 정신을 향해, 미지는 “달콤한 향기”라는 미상의 형태로 돌연 다가온다.

당질을 섭취하는 생물에게 있어 달콤한 향기는 유혹의 신호다. 그리고 어떤 유혹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달콤한 향미를 지닌 물질 중 일부는 섭취·흡입 시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하며, 어떤 포식자는 향기로 먹잇감을 유혹하는 전략을 쓰기도 한다. 앞서 형성된 인물에 대한 선입견 탓일까, ‘영민’의 주의를 사로잡은 달콤한 향기가 어쩐지 불길하게만 느껴진다. 마치 한 사건이 인물을 끌어당기는 독특한 향취를 지닌 것처럼, 정체 모를 향기는 그 자체로 계기가 되어 ‘영민’을 움직이고 이끈다. 그를 기다리는 것은 독일까? 아니면 포식자일까?

향기를 쫓는 ‘영민’의 시선이 몬스테라의 구멍을 관통하는 순간, 글의 긴장 곡선은 드라마틱한 상승을 보이기 시작한다.

 

〈발광하는 여자친구〉는 필자조차 그 연결고리를 유추하지 못할 정도의 무수한 지식의 합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많은 정보가 어떻게 한 사람의 지성에 의해 통합되었다가, 이내 흩어져 텍스트의 바다 속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광범위한 정보와 의제를 “황금 같은 문체”에 녹여낸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점은, 작가의 전작 〈자매의 탄생〉에서도 보여주었던 안정적인 문체가 본작에 이르러 원숙하고 대담해졌다는 것이다.

본작은 퇴폐미 속에 ‘관습적인 색채 감각’과 ‘강렬한 이미지로 구현된 알레고리’, 그리고 ‘낯선 존재에 대한 이질감’을 세련미 있게 병치한 수작이다. 크리처creature나 랩lab 호러에서 느낄 수 있는 ‘생리적 불안감’이 데카당스의 외피를 두르고 현란하게 반짝이는 중반부는, 필자에게 있어 “심해의 초롱불을 향해 빠져드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질감과 아름다움의 쌍곡선 가운데 서서히 드러나는 주제 의식은 (이 이야기가 괴담임에도 불구하고) 기묘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장담컨대, 당신은 이 작품의 색채와 향취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발광하는 여자친구〉와 〈자매의 탄생〉 모두를 읽어볼 것을 필자는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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