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해변이 있어 천혜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항구 도시에 낯선 세 사람이 등장한다. 그들을 맞이한 건 이 도시의 고위 공무원. 유력 인사가 마중을 나온 것으로 보아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듯한데, 마중 나온 사람의 태도에서 은근한 경계와 멸시가 느껴지는 걸 보면 편한 관계는 아닌 것 같다. 이들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와서 이런 대접을 받는 걸까. 알 듯 모를 듯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읽다 보니 어느덧 연재분을 다 읽고 다음 회차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게 된 이 작품. 바로 <역외조세청 쿠데타 조사팀>이다.
이야기는 역외조사청장의 조카이자 연락관인 마르쿠스 크렐이 청장의 심복인 베테랑 통제관 하인리히 모크, 신입 감찰원 헬가 복스와 함께 제국과 공화국의 변경에 위치한 카스틸 연합공국에 오면서 시작된다. 공식적으로는 역외조사청 공무원이라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파견 업무를 치르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이들은 역외조사청장이자 마르쿠스의 삼촌인 빌헬름 크렐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받고 이곳에 왔다. 그 임무는 바로 카스틸 연합공국 내부에 쿠데타 모의가 있다는 첩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 대놓고 쿠데타 모의를 확인하러 왔다고 할 수 없으니, 마르쿠스는 삼촌만 믿고 거들먹거리는 망나니인 척, 하인리히와 헬가는 그런 마르쿠스가 마뜩잖은 척하며 은밀하고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역외조세청 쿠데타 조사팀>은 전형적인 판타지 소설의 설정과 전개를 따르지만,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하는 판타지 소설로 볼 수 없고 나아가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이라는 오해를 해소하기에 충분한 세 가지 미덕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는 마치 롤 플레잉 게임처럼 독자가 주인공이 되어 가상의 세계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 마르쿠스는 임무에 대해 독자만큼이나 아는 것이 없다. 이야기의 무대인 카스틸 연합공국에 처음 와본 건 물론이고, 지원군으로 같이 온 하인리히, 헬가와도 거의 초면이다. 마르쿠스가 유력 가문 출신이며 청장의 조카라는 이유로 떠받들어지기는 해도 실제로는 큰 야망이나 포부를 가질 여유 없이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 급급한 소시민이라는 점 또한 독자의 감정이입을 돕는다. 그런 마르쿠스가 낯선 장소에서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돌발하는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은 한 편의 모험 서사로도 읽히고 성장 서사로도 읽힌다.
두 번째는 미스터리 소설로는 드물게 쿠데타 모의를 소재로 한 점이다. 대부분의 미스터리 소설이 주로 살인이나 절도 등의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찾는 과정을 그린 데 반해, 이 소설은 쿠데타 모의라는 기존의 미스터리 소설에서 보기 힘들었던 범죄를 저지른 범인을 찾는 과정을 그린다. 살인이나 절도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피해자가 존재하는 반면, 쿠데타 ‘모의’는 아직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고 정황 정도만 짐작할 수 있다. 구체적인 피해자가 없는 상태에서 정치나 경제 상황이나 인물들의 관계 같은 정황만으로 범인(정확히는 모의 주동자)을 추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독자가 이 소설에서 마주하게 되는 미스터리는 상당히 난도가 높다.
세 번째는 현실과의 연결이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차원의 문제들이 나온다. 작게는 역외조세청이라는 조직 내부의 갈등부터 역외조세청, 통치청, 안보청, 신앙청 같은 제국 정부 내의 조직 간 갈등, 카스틸 연합공국 내부의 갈등, 카스틸 연합공국을 둘러싼 제국과 공화국 간의 갈등 등이 나오며, 넓게는 한 세기 전 남부 전역에 역병이 창궐했을 때 등장한 배교자 요한과 그를 따르는 신도들에 관한 문제, 제국과 공화국 간의 갈등이 표면화된 잘리어 내전을 비롯한 역사 문제 등이 언급된다. 이러한 소설 내부의 갈등과 문제들은 관료제의 위기,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갈등, 정교분리, 정치체제별 장단점 같은 소설 외부의 문제들을 연상케 하고, 이 소설이 결코 평범한 판타지 소설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과연 앞으로 어떤 전개가 이어질지 궁금하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