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자격을 묻다 감상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히키코모리만병통치부 (작가: 이사구,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7월 17일, 조회 64

<회복>, 까미유 끌로델, 대리석에 조각.

소설 <히키코모리만병통치부>에는 어쩌다 보니 무속인 곁에서 일하게 된 디자이너가 화자로 등장한다. 이 무속인이 어떤 무속인이냐면, 화자의 말에 따르면 ‘가짜’로 의심되는 사람이다. 그는 잔 다르크 장군 신을 모신다고 말하는데, 잔 다르크가 자신에게 온 것이 아니라 그저 멋있어 보여서 갖다 쓴 것이라고 한다. 부적을 쓰는 일은 디자인을 전공한 화자에게 아예 맡겨버린다. 그렇게 아리송한 상태로 얼렁뚱땅 무속 디자이너라는 블루오션에서 헤엄치던 주인공은, 자신의 보스가 ‘큰 손’ 고객을 맡게 되며 그 현장에 동행한다. 그런데, ‘진짜’ 무당은 과연 어떤 사람을 말하나?

 

1. 한국 사회 안 무속

 

무당. 수많은 공포물에 등장하고, 또 마을버스 좌석 커버 위 광고 속에 친숙한 글씨체와 함께 등장하기도 하는 이름이다. 무속인은 의뢰인의 과거를 읽고, 미래를 점치고, 원하는 부적을 써주고 굿을 한다. 그렇다면 신당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일까. 다름 아닌 간절히 떨치고픈 어제가 있거나, 오늘이 너무 힘들거나, 내일에 대한 절박함을 가진 마음들이다. 한국에서 무당은 이렇듯 다양한 욕망과 취약한 심리를 다루어왔다. 임상심리사도 정신과 의사도 없던 전통 사회에서 무속은 이들을 대신해 마음을 어루만지며 지역에서 나름의 단단한 위상을 갖고 전승되어왔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정을 털어놓고 굿판 앞에서 간절히 양손을 비비는 동안 내면의 응어리는 비로소 풀릴 장소를 만났을 것이다. 신비주의를 배격하자는 구호 아래 포함되어 수난을 겪고, 편견에 시달리고, 다시 무형문화재로서 인정받는 긴 세월 동안 무속인들은 변함없이 그러한 역할을 맡아왔다. 그가 진정한 무속인이라면 말이다.

 

2. ‘진짜’라 불릴 자격

 

어떤 무속인을 진짜 무속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공인된 자격이나 면허가 없는 일에도 가짜와 진짜는 있으리라. 또한, 어떤 직업에 있어 면허나 자격을 발급받았다고 해서 그의 모든 것이 증명 완료된 것 역시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는 언론 보도와 세간에 들려오는 참담한 이야기를 통해 직업현장이 범죄의 온상이 되는 수많은 사례를 접한다. 거기엔 환자를 추행하고 폭행하고 속여서 연구 자료로 이용하는 의료인이 있다. 또, 내담자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약점을 이용하는 심리상담사가 있다. 그리고 귀신을 쫓겠다며 약자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금전적 손해를 끼치고 때로는 살인까지 범하는 무속인이 있다. 이들이 어떤 논문을 썼고, 어디에서 수련받았고, 얼마나 긴 세월 일을 했으며 어떤 지위를 갖고 있느냐와 무관하게 이들은 전문가로서 가짜다. 자신이 부여받은 책임과 익힌 기술을, 상대를 돕는 일이 아니라 해하는 데 사용할 때 그 책임과 기술은 아무리 빛나도 무용하다. 다시 말해 직업인으로서 한 인간의 자격은 전문지식과 타이틀을 얼마나 책임감 있게 다루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책임은, ‘사람을 향한 책임감’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해 본다. 화려한 작두 타기, 소름 끼치는 신점, 모시는 신의 종류, 그런 것은 무속인의 진위를 가르는 기준이 아닐 수 있다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서술됐다고 보이는 ‘가짜’, ‘사기꾼’과 같은 표현이 반복되어 등장함에도 <히키코모리만병통치부> 속 무당과 그의 조수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까닭은 거기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귀신이 들렸다는-실은 귀신 들린 척한-의뢰인의 아이에게 어떠한 무속적 행위도 하지 않는다. 다만 마음들을 읽고 그 마음을 책임감 있게 보듬는다. 그들은 아이를 방에서 끌어내 일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수많은 무속인을 찾았을 부모의 마음을 읽어낸다. 외롭고 상처받기 싫어서 악귀에 들린 연기까지 하며 방에 고립된 아이의 심정 또한 읽어낸다. <히키코모리만병통치부>의 인물들은, 그렇게 고통을 안고 자신 앞에 온 이들이 아픔에서 한 발짝 걸어 나올 때까지 잠잠히 곁을 지킨다. 어떠한 것도 착취하거나 망가트리지 않은 채로. 신이나 묘술이 아니라, 현실에 단단히 발 디딘 책임감이 그 순간 그들을 진짜로 만든다. 즉, 비로소 ‘거기 있어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3. 무당다운, 이야기다운

 

주인공과 그를 고용한 ‘무당 언니’가 자신들의 의뢰인을 치유(?)하는 과정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진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문제의 중심을 놓치지 않는다. 이러한 능력은 자신의 삶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질 아닐까. <히키코모리만병통치부>는 작가의 연작 소설 중 세 번째 작품이다. 나는 인물들이 시리즈에 처음 등장하기 이전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그려본다. 부적을 그려 이웃 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도, 어쩌면 그 이전에도 주인공은 온몸으로 제 인생을 살아냈을 거라고. ‘무당 언니’ 역시 마찬가지다. 생활에 있는 힘껏 부딪쳐온 사람에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고고한 힘이 있다. 나아가 다른 이의 존엄성 또한 존중한다. 타자 역시 자신처럼 각자의 역경에 맞서온 고유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힘을 바탕으로 두 인물은 타인과 연결되고, 타인도 그럴 수 있게 돕는다. 그러면서 자신과 자신의 고용인을 의심하던 주인공 역시 한 발짝 성장한다. 어쩌면 여기엔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강렬한 카타르시스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만병통치부를 정성껏 그려내는 주인공의 손길처럼 묵직하고도 부담스럽지 않은 섬세함, 그리고 기교 없이 단순한 진리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할 때 요구되는 책임감은 실은 이토록 간단하고 투박한 것이다. 어떤 현란한 재간도 행위의 대상이 되는 한 인간 위에 있을 수 없다. 왜냐면, 사람을 가르치고 치료하고 보듬는 모든 전문영역은 다름 아닌 사람으로부터 출발했고 사람의 덕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실은 그가 스스로 나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키는 일이다. 우리가 아기를 돌볼 때 아기는 스스로 자라고 있다. 아이를 가르칠 때 아이는 저 혼자 이미 무언가를 깨우치고 있다. 의료적 처치란 환자의 몸이 자발적으로 회복되는 일이 잘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다루는 모든 일은, 곁에 있는 누군가의 어려운 시간을 함께 지키려는 개인의 몸짓에서 시작됐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훈련받은 의료인, 사회복지사, 교사, 임상심리사가 활동하기 전부터 인간은 다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살아남았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직업 활동의 근간을 아주 깊이 찾아가 보면 개인적 구호 활동이 그 시작이다. 신을 모신다는 무속인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사람의 이야기를 옮기는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이 다름 아닌 사람에 있다는 것을 인지할 때, 사람은 겸허히 제 몫을 다한다. 다만 그러한 순간에야, 그가 그려낸 부적과 적어 내려간 글은 사람의 마음에 섬세히 가닿는다. 사람 위에 군림하여 타인의 민감한 사정을 아무렇게나 드러내고 이용하는 대신. 그리하여 비로소 무속은 무속다워지고, 이야기는 이야기다워진다. 신비하고 작은 기적을 불러일으키며 말이다. <히키코모리만병통치부>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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