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이 아니잖아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빨간 제비부리댕기 (작가: 장아미, 작품정보)
리뷰어: 햄해미, 4월 18일, 조회 64

타임리프 소설에서 당선된 꼬리명주나비를 쓴 장아미 작가님의 또다른 작품인 <빨간 제비부리댕기>를 읽어보았다. <꼬리명주나비>에 나온 묘사처럼, 다소 관능적이고 달큰한 묘사들이 이어진다.

 

죄의 시작과 끝

소설과는 상관없는! 내가 이홍을 생각하는 방식의 배경을 설명하고자 한다.

‘희생양’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에 뿌리내린 공포를 몰아내기 위해 ‘쓰인’ 사회·문화·심리적 희생자를 의미한다. 오늘날 희생양을 떠올렸을 때, 그 모습은 처녀의 모습을 닮아있다. 산·대지의 신인 아버지를 잠재우기 위해 한 번도 다른 남성에게 손이 닿은 적 없는 처녀의 ‘순결함’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내포된 생각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로 사회적 분노는 남자의 형상을 하고 있고, 두 번째는 여성에게 다른 남자의 손길이 닿을 때 죄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사회적 죄악을 씻어낼 때에도 성행위적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죄의 원인과 대책이 모두 성행위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왜 처녀와의 결합이 죄를 잠재울 수 있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남성이 여성의 몸을 취하는 것이 사회적 공포를 잠재우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처녀 아닌 처녀

이홍은 조금 특별한 희생양이다. 그녀는 작품 초반에 흰 치마폭을 두른 가녀린 소녀로 그려진다. 길잡이의 험한 손놀림에 한없이 떠밀려야만 하는 존재이다. 그랬던 그녀가 백이를 만나고, 소년을 만나며 ‘무해한 신부’의 이미지를 벗어나게 된다. 백이는 그녀에게 단도를 주었고, 소년은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기 직전까지 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이홍은 유해하고(단도), 처녀가 아닌(소년과의 만남) 어린 신부가 된다.

“나는 꽃이 아니잖아. 무턱대고 손대거나 하면 불쾌하다고”

순결한. 착한. 무방비한. 무고한 육신을 가진. 그런 이미지를 이홍에게 씌워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말한 것은 사회이다. 그녀가 결정한 것이 아니다. 마냥 “된다”고만 말할 줄 알았던 소녀는 사실 모든 정세를 뒤바꿀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소년에게 말을 걸고, 소년의 품을 집요하게 파고 들어 부자 관계까지 변질시킬 수 있는 것이 소녀가 가진 힘이다.

 

원래 희생양을 숫양이었다

희생양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찾아보니, 이홍이 산군을 제압한 마지막 장면이 새롭게 보인다. 고대의 이스라엘인들은 속죄일에 숫염소를 잡아 제단에 뿌린 뒤 모든 죄를 고백한다고 한다. 즉, 본래 희생양은 숫양이었다. 이홍은 뭉툭한 단도로 산군의 눈을 제압해 산군 위에 선다. 그리고는 새로운 삼각산의 주인이 탄생했음을 고한다. 본래 제물이 숫양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이홍이 산군을 제압하는 것은 희생자와 권능자의 위치를 본래대로 돌려놓는 행위를 빗댄 것이 아닐까. 어쩌면 이홍이 산짐승의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본래 산의 주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머니가 말한 “바느질을 끝내라”는 의미는 단도로 “전 왕의 혈율을 몰아내는”일일 것이다. 소녀가 희생양이 되어버린 소년을 “착하”고 “어여쁘”다고 부른 것 역시 희생자/권능자의 위치가 바뀌었음을 암시한다.

(이홍이 소년으로부터 처녀이기도 하고, 처녀가 아니기도 한 모호한 존재가 되며 어머니의 당부를 떠올리는 장면 역시 의미심장하다.)

 

소설은 관능적인 묘사로 사람을 혹하게 했다가, 새로운 이야기를 남기고 끝난다. 소년과 소녀의 싸움 이야기말이다. 그 갈등을 해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이야기가 사회적 희생양이 가진 어떤 힘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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