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풍 코즈믹 호러에 기반한 시각적인 가문 호러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선형 무덤의 끝 (작가: 파란약, 작품정보)
리뷰어: 랜돌프23, 20년 8월, 조회 72

본 리뷰에는 주관성이 다량 함유되어있습니다.

 

언제나 제 리뷰글이 그렇듯, 개인적인 잡설부터 시작하자면, 이 소설을 읽고나서 제가 코즈믹 호러를 처음 접했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인터넷에서 국가 가리지 않고 온갖 괴담과 도시전설과 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와 실제로 있었던 미스터리 사건(ex.퉁구스카 대폭발) 등을 찾아다니던 거의 인터넷 유목민이나 마찬가지였던 때, 그 중에서 저에게 큰 인상을 준 건 일본의 괴담들이었습니다. 영화계에선 J-호러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리를 들려오고 있을 그 즈음, 그래도 인터넷에서는 일본 네티즌들이 여전히 무시무시한 것들을 쏟아내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찝찝하고 서늘하고 현실적인 느낌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건지… 아무튼, 참신하고 흥미롭고 오싹해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이 있긴 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제가 봤던 이야기들은 전부 귀신, 초능력, 저주, 악령, 신사, 금기, 살인마(한창 유행하던 사이코패스 테스트), 무속신앙, 요괴 같은 영역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혜성 같이 등장한 크툴루 신화!

어쩌다 그쪽으로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인터넷 서핑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자토스’에 관해 설명하는 블로그 글이었고, 배경음악으로는 carol of the old ones 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유튜브에 치면 바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때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더라고요. 세상에, 이런 호러가 있다니! 터무니없이 장대하고 거대하면서 스산하고 광기에 넘치는… 인간은 우주에서 별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존재론적인 공포! 뭐든지 처음이 강렬하고, 새로 알아가는 흥분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정말 닥치는대로 크툴루 신화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러브크래프트 전집도 망설임없이 구매해버렸습니다. 물론 소설들이 오래된 것들이라 지금 보면 세련되었다거나 깔끔하다고 보긴 힘들지만, 이전에 접하던 괴담과 호러와는 결이 다른 방향성이 무척 인상에 깊게 남더라고요. 저 또한 크툴루 신화를 기반으로 거의 팬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것들을 많이 썼고요.

 

드디어 본론입니다.

파란약 작가님의 ‘나선형 무덤의 끝’이라는 소설은 제가 처음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손에 쥐고 읽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던 글입니다. 물론 브릿g에 코즈믹 호러를 다룬 호러 소설은 굉장히 많습니다. 다만, 제가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건, 러브크래프트의 고전작들을 연상케 하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개 방식 때문입니다. 현재에는 코즈믹호러도 시대상에 맞추어 많이 변주되고 변용되고 있죠. 그걸 부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건 아닙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원전를 빼놓고 다른 건 인정할 수 없다, 어거스트 덜레스부터 변형된 크툴루 신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외치는 보수주의자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이 시대가 바뀌면서 호러의 뒤켠으로 사라지고 판타지 종족으로서 로맨스나 액션에 나서게 된 것처럼, 코즈믹호러도 1900년대에서 벗어나서 현대에 맞춰 바뀌는 게 당연하지만, 제가 하려는 말은 ‘개인적인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기에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처음 접했을 때 강렬하고, 새로 알아갈 때 흥분된다’고 했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처음 같은 감정이 안 느껴집니다. 이젠 니알라토텝이라든가 우주적 존재라든가 고대신이 이웃집 토토로 같기도 합니다. ‘이웃집 크툴루’를 찍어도 될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가끔 그런 초기의 감정을 건드리는 작품을 만났을 때 그렇게 반갑고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저에게는 ‘나선형 무덤의 끝’이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 소설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색채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그냥 러브크래프트 소설을 읽지, 제가 이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쓰고 있진 않을 겁니다. 사실 위에서 길게 서술한 러브크래프트와 코즈믹호러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사실 배경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알맹이죠.

이런 배경 속에서, 이 소설을 인상깊게 읽은 이유를 나열하면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선, 작가의 말에서도 나와있듯, 이 소설에는 작가님의 러브크래프트풍에 대한 애정이 잘 담겨있습니다. 그냥 그런 요소들을 차용하거나 틀을 가져와 쓰는 것과, 정말로 애정을 가지고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을 내죠. 이 소설은 후자라고 봤습니다. 이렇게 파란약 작가님도 개인적인 애정을 가지고 알맹이를 써내려갔기에, 제가 그런 향수를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같은 팬으로서 어떤 게 나와야 좋아하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지하로 통하는 무덤, 불길한 가문의 비밀, 기괴한 기하학, 숭배와 광신…  이 모든 게 종합세트로 들어있습니다!

 

두번째는, 인간 존재의 가치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격하시킨다는 것입니다. 코즈믹호러의 진미는 인간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 인간이 의미 있다고 여기는 가치들은 사실 우주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인간의 저항과 의지가 소용없다고 인간의 무기력함을 강조하는 부분이죠. 일반적으로 이 부분은 인간이 자신의 지성과 이성으로 감히 인지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에 마주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 소설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이 소설이 인간의 동물성을 강조하며 코즈믹호러를 자아낸다고 봤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시종일관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욕’도 후반부에서는 중요한 장치고요.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며 사람의 내면을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진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리고 그게 맞고요. 근데 과학적으로는 외모를 보는 게 동물들의 본능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외모지상주의가 타당하다고 과학은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건 자연주의의 오류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동물의 신체기관 중 생존에 쓸모없어보이는 건 다 성선택 때문이다’라는 얘기도 있으니까요. 화려한 장식, 천적에게 노출되기 쉬운 색깔과 무늬, 다윈을 그렇게 괴롭혔다는 공작의 깃털  등등…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아내가 내면으로는 얼마나 끔찍한 존재이며,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 때문에 다시 찾아와 가문에 스스로 속박됩니다. 외모 때문에 내면을 보지 못 하는 모습이 극단적으로 표현되는 것이죠. 외모는 그저 껍데기일 뿐인데, 이성으로는 그걸 알고 있는데, 동물적 본능에 져서 가문을 이어가기로 결정합니다. 인간도 결국 동물일 뿐이라는 것이죠. 소설에서 나오는 뭔지 모를 미지의 고대존재는 그런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고 있고요. 그 존재의 눈에 인간은 색깔이 화려한 꽃에 모여드는 나비나 벌처럼, 외모에 홀려 달려드는, 종족번식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와 같은 동물에 불과할 겁니다.

결국 내면을 알면서도 외모에 홀려, 성욕을 못 이겨, 가문을 이어가고, 속박되어 숭배의 길을 걷게 되는 이 이야기는,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나 프로이트가 ‘인간은 이성이 아닌 성욕과 무의식에 잠재된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병든 동물’이라고 선언했을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의 지위를 내립니다. (물론 진화론과 초기정신분석학의 의의는 그게 아니겠지만, 당시 사회가 받았던 충격에 초점을 맞춰 저렇게 서술했습니다) 저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막연하게 ‘우리보다 훨씬 초월적인 존재가 있어’하고 미쳐버리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랑은 그렇게 특별한 감정이 아닌 번식을 위한 것이고, 인간도 욕구에 따라 행동하는 어리석은 외모지상주의의 포로이자 동물이라는 걸 드러내는 게 좋았습니다.

 

셋째는 시각적인 부분입니다. 이 소설은 재미있게도, 모든 문단이 가운데 열로 맞춰져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읽어내려가다보면 통이 넓어졌다가 좁아졌다가 하는 물결이나 파도처럼 되는데, 이게 나선형의 무덤이라든가 내려가는 계단의 이미지와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느낌을 주더라고요. 실제로 작가님의 의도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흘러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런 구성 덕에 짧게 문장들이나 단어가 끊어져 튀어나올 때 꽤나 임팩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글씨체의 변화나 글자 크기의 변화를 이미지로 붙여넣은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마치 글자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모양으로, 그리고 마치 불협화음을 연상케하는 들쭉날쭉한 크기 배열로 주인공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주인공의 혼란과 무너지는 정신, 초조함 등이 시각적으로 체험되는 것 같아 매우 인상깊고 좋았습니다.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SAN値が下がる感じ(정신력 깎이는 느낌)였습니다. 글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상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작가님이 공들이셨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에 대한 건 아니라 조금 다른 얘기긴 한데, 크툴루 신화를 좋아하는 많은 팬들에게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죠. 러브크래프트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는 겁니다. 1800~1900년대 미국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그런 건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게 아니죠. 그 점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스티븐 킹을 비롯해서 그의 세계관에 영감을 받았던 많은 작가들도 입을 모아 그 부분은 비판을 합니다. 러브크래프트와 크툴루 신화에 대한 팬심을 드러낸 리뷰글이기에 이 점을 확실하게 하고 꼭 덧붙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평가나 분석이라기 보다는, 제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 근거해 주관적인 호감을 늘어놓은 것이므로 비평보다는 감상에 가깝다고 생각되네요. 그래도 이번엔 서론보다 본론이 길어서 다행입니다 ㅋㅋㅋ

러브크래프트풍 분위기뿐만 아니라, 파란약 작가님의 시각적 효과와 주제의식, 전개방식이 인상적이었던 소설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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