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창작물들에 큰 영향을 준 공포의 원형 공모(비평)

리뷰어: pibchaban, 17년 2월, 조회 246

소위 “장르물”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좋아하기에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매체에서 장르물만 찾아 즐기고 있는데. 이런 작품들을 보다보면 계속 나오는 이름이 있다. H.P. 러브크래프트. 많은 창작자들이 그에게서 영향을 받아 작품을 쓰고 있고, 그들이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들은 모두 내 취향에 꼭 맞았다. 그러나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며 어떤 부분에서 H.P. 러브크래프트의 레퍼런스를 따왔는지 설명해도 나는 아직 그의 글을 읽지 않아 레퍼런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브릿G에 무료로 연재되는 기회에 러브크래프트를 읽어보기로 했다.

창작자들이 따온 레퍼런스 외에 러브크래프트에 대해 익히 들어온 말은 “크툴루 신화”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브릿G에 연재된 14화까지엔 정확하게 크툴루를 지칭하는 글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 (리뷰를 쓰는 지금 15화가 올라왔고 이것의 제목이 <크툴루의 부름>이다. 이제 나도 크툴루가 뭔지 알게되는 것인가!) “크툴루 신화”와 관련해 내가 상상한 그의 글에 대한 이미지는 촉수 연체 괴물 괴수물(…)을 쓰는 작가인가? 였는데. 직접 읽어본 그의 글들은 그보다 더 고딕한 느낌이 강했다. 괴수가 나오는 끈적끈적하고 물성있는 공포물과는 다른, 안개와 구름이 자욱한 가운데 오래된 것에서 전해 내려온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한 공포에 가까웠다.

<데이곤>은 바다에서 표류된 화자가 고대의 해양생물체를 보고 겪는 이야기인데, 석조물에 대한 묘사는 자세하면서도 정작 데이곤에 대한 묘사는 모호하다는게 인상깊었다. 화자는 “내가 감히 그 얼굴과 생김새를 자세히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며 자신이 본 것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하지 않으면서 “물갈퀴달린 손, 놀라울 정도로 흐물흐물한 입술, 비늘이 달린 커다란 팔” 이라는 부분적인 설명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독자 개개인이 떠올리는 데이곤의 형상은 각자가 상상하는 최대한의 공포적인 모습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니알라토텝>은 단순히 공포를 일으키는 괴생물체가 아닌 신이나 악마에 가까운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자는 니알라토텝을 만난 후 겪는 여러 환상적 상황을 묘사하는데 그 모습은 세상이 멸망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집에 있는 그림>을 읽는건 한 편의 공포게임을 플레이 하는 듯 한 느낌이었다. 길을 헤매다 문이 열리는 유일한 집에 들어가고, 그 집에 있는 여러 아이템을 조사하다가 NPC에 해당하는 집주인을 만나 대화를 이어가고 그 다음 보스전에 돌입하게 되는 과정같았달까. 글에서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지만 분위기와 상황만으로 나는 배드엔딩을 상상하게 된다. (분명 그 집주인은 식인을 하는걸거야!)

<에리히 잔의 선율>은 여태까지의 글들이 시각적인 이미지에 많이 의존하는 것과 다르게 청각적인 요소를 통해 공포를 전달한다. 그렇다고 시각적인 공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전망이 아주 좋을 거라는 창에서 끝없는 어둠을 바라봤을 때 화자가 느끼는 공포는, 많은걸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이들이 가지고 있을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끌어내기 충분한 상황으로 설정되어있어 쉽게 전해진다.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는 좀비, 미라같은 소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다른 소재들과 다르게 이 소설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점은, 실패한 실험의 결과물이 이 세상 어딘가를 계속 떠돌고 있다는 점이다. 언젠가 그들이 찾아와 자신들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혹은 자신들의 실험이 그들에 의해 들킬지도 모른다는 점을 화자는 계속 무서워 하지만 허버트 웨스트는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벽속의 쥐>는 내가 좋아하는 여러 공포영화를 생각나게 했다. 흔히 “haunted house film”이라 불리는 것들인데, 악령이 깃든 집이란걸 모르고 그 집에 살게 된 가족들이 여러 초자연적 현상을 겪는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은 그 집에 어떤 이유로 악령이 깃들게 되었는지 과거의 사건을 통해 설명하곤 하는데, <벽속의 쥐>는 후손이 직접 선조의 집을 사들여 자신이 겪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 알아보다가 집에 붙은 괴담의 원인에 대해 알게되는 과정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집 아래 존재하는 커다란 동굴을 발견하는 것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팔묘촌’에서도 본 전개이지만, 추리소설을 지향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은 결국 모든 공포의 원인은 인간에 의한 사건에서 비롯되고, 러브크래프트는 그와 다르게 어두운 동굴을 내달리는 쥐라는 존재가 주는 알 수 없는 공포가 주요 소재이기에, 익숙한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임에도 전혀 다른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즐긴 작품들 중 러브크래프트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한 두 작품은 “Welcome to night vale”이라는 미국의 팟캐스트와 “Stranger things”라는 미국드라마이다. “Welcome to night vale”은 팟캐스트이기에 무료로 즐길 수 있으며, 그 대신 한글로 된 번역이 없다. 대신 팬들이 만든 스크립트가 있다. “Stranger things”는 넷플릭스에서 한글자막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여태 즐겼던 공포물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대한 원인을 설명하곤 했다. 그러나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은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기 보다는 그것의 원인을 모르기에, 또는 출처를 모르기에 느낄 수 있는 공포에 집중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Welcome to night vale”은 팟캐스트이기에 오직 음성으로만 즐길 수 있는 매체이다. 시각적으로 무언가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팬들은 상상만으로 Night vale 이란 마을에 대해 팬아트를 그리고 설정을 이어나간다. 팟캐스트라는 매체의 형식 자체가 러브크래프트의 공포가 발동하는 형식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Stranger things”의 주인공들은 upside down이라는 세계에서 온 괴물과 맞써 싸우지만 그 괴물이 무엇인지 또는 어떻게 존재하는 지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 자신들이 아는 세계관, TRPG 게임에 나오는 몬스터의 이름을 붙이고 그 방식을 통해 몬스터를 이해하고 공포를 느낀다.

 

결국 공포는 자신이 겪은 일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 가장 큰 공포인 것이다. 러브크래프트의 글은 누군가가 겪은 아주 무서운 일을 설명하지 않고 독자 각자가 가진 마음속 깊은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글들을 쓴 듯하다. 그렇기에 많은 창작자들이 그의 글을 통해 또 다른 공포를 만들어 낼 수 있었겠지.

작가소개에 3권까지 무료연재가 될 예정이라고 써있던데, 연재가 되기전에 책을 구해서 읽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