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작가

혹은 타자로의 변신 단상 브릿G추천

리뷰어: 일월명, 23년 11월, 조회 90

구병모 작가님의 작품 중 <타자의 탄생>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벗어날 수 없는 구멍 속에 끼여버린 남자의 심신과 관계가 점점 망가져가는, 그렇게 누구의 공감과 이해도 받지 못하는 ‘타자’가 되어버리는 이야기죠. 줄거리를 보시면, 또 소설을 읽어보시면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프란츠 카프카 작 <변신>의 오마주입니다. 디듀우 작가님의 <부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왼손 약지(약지가 보통 관계에 대한 관습과 관련되는 신체부위인 걸 생각하면 보다 상징적으로 읽힙니다.)에 박힌 작은 벌레로부터 시작되는 신체 변형의 과정은 주인공을 다른 이들에게서 유리시킵니다. <변신>과 다른 이소설의 재미는 바로 이 지점, 어느 날의 불안한 꿈과 함께 벼락처럼 일어나는 변신 이후가 아닌 몸을 파먹는 벌레들로 인한 느린 변신-부패의 과정에 집중한다는 데 있습니다.

소설은 여름날 반팔옷 아래로 드러난 딱정벌레 무리가 어느 한순간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걸 짚어냅니다. 누군가가 타자로 보인다면, 그때 포착되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진 변신의 과도기 내지는 끝무렵입니다. 이는 우리로하여금 그가 타자가 되기 전에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