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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리셋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긴 수명과 젊은 육체라는 축복을 누리는 500명의 엘리트가 탑승한 우주선에서, 몇몇 인물들의 기억이 소멸되는 사건이 연달아 터진다.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기억과 지식을 완전히 삭제하여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해야만 하는 이 행위는 ‘살인’이나 다름없는 중대한 범죄로 여겨지고, 함내의 유일한 치안관은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피해자들과 접촉한다. 우주선이란 폐쇄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연쇄 범죄를 다룬 추적극처럼 시작되는 이야기는 피해자들이 ‘텍스트’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또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기나긴 삶이 권태로운 클리셰가 되는 순간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는 단편이다.

2019년 6월 2차 편집부 추천작

산다는 것의 지루함에 대하여

지구를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한 엘리트들이 탑승한 채 아주 느린 속도로 우주를 유영하는 초거대 우주선 별누리. 지구를 떠나기 전 기대 수명을 연장하는 시술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구성원을 알고 있고 각자의 역할을 철저히 수행하고 있었기에, 지난 200년 동안 별누리의 세계는 무척 안전한 공동체로서 공고하게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2년 전부터 비슷한 시간을 주기로 특정 사람들의 기억이 완전히 소멸되는 기이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별누리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진다. 기억과 지식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은 ‘살인’ 행위와 다름없다며 연쇄 살인 사건으로 여겨지고, 우주선 유일의 치안관인 ‘곽현우’는 사건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클리셰」는 초엘리트 집단이 탑승한 우주선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수사하는 치안관을 중심으로, 더욱 내밀하게는 ‘클리셰’라는 개념을 둘러싼 주제 의식을 펼쳐 나가는 이야기다. 초반에는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으로 시작되지만, 정신과 기억이 소거되는 사건을 쫓는다는 점에서 사건의 전개 양상은 급격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별누리라는 우주선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가운데, 작품 제목 그 자체이기도 한 메시지가 ‘활자’를 매개로 익숙하게 변주되며 다채롭게 펼쳐지는 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