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차 편집부 추천작

감정 대리업 시대의 개막! 데이터 인력의 생애주기로 고찰하는 어느 시대의 초상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한 여자가 있었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번번이 탈락하면서도 열망을 쉬이 놓을 수 없던 그녀는 인력을 거래하는 신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일거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초대 받은 결혼식은 가지 않지만, 의뢰 받은 결혼식은 꼬박꼬박 참석하는 여자. 결혼식 하객 알바부터 택배를 대리 수령하는 일까지, 여자는 사람들이 의뢰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대신하면서 이 황당한 일과 황당한 사람들을 소재로 새로운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하루하루를 버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신 이별을 통보해달라는 역대급 일을 의뢰 받고 나간 곳에서 여자는 상대로 나온 남자에게 황당한 발언을 듣게 되는데…….

영화 ‘토탈 리콜’로 유명한 필립 K. 딕의 원작 단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서 제목을 착안했다고 밝힌 본 작품은, 감정의 측면에 보다 집중한 인류의 미래상을 예리한 상상력으로 적나라하게 펼쳐놓는다. 이미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굳이 직접 할 필요도 없는’ 크고 작은 노동 거래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대이기에, 감정 대리업이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는 모습은 조금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곤란한 감정을 물질적 재화로 소비하고, 타인의 감정을 대리해 돈을 벌고, 나아가 공감과 연민을 거래하는 모습은 과연 어떨까?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는 남자와 여자, 즉 ‘데이터 인력들’의 생애주기로 들여다 본 오지 않은 미래의 초상이 씁쓸하고도 날카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