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차 편집부 추천작

날카롭고 불안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심리 스릴러

모친을 잃고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남편을 위안하듯 부부는 어린 딸과 함께 이국행을 택한다. 하지만 낯선 환경과 기묘한 이웃들이 주는 첫 인상은 날카롭고 불안하기만 하다. 특히 마주치자마자 마녀의 대사 같은 저주의 말을 퍼붓는 아래층 할머니는 더더욱 수상쩍다. 이웃의 소음까지 고스란히 전달될 정도로 열악한 아파트, 모든 것이 낯선 문화, 늦어지는 남편의 귀가. 한편 부부의 관계가 몹시 단절되어 보이지만, 그것을 이어 붙이려는 시도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화자인 아내의 시선은 담담하다 못해 냉기가 흐른다. 아내는 모든 것이 낯선 환경에서도 남편의 이해나 도움을 구하기는커녕 그를 밀어내고 스스로를 더욱 부적응과 고립의 상태로 밀어 넣는다. 부부는 어느 순간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그 길은 결코 만나지 않을 것만 같다.

아파트라는 닫힌 공간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잘 묘사되는 초반부에서는 『로즈메리의 아기』와 같은 인상마저 받았으나, 「맨발로 릴을 추면서」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로즈메리 류의 초현실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코앞에 닥친 비극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순진한 젊음의 어리석음만이 있을 뿐. 릴은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다리를 움직이며 추는 아일랜드의 전통 춤이다. 이야기의 종막에서 오래 된 비극을 화석처럼 품어온 늙은 여인의 진실이 드러날 때, 느끼는 감상은 다양하겠지만 불에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허공에 흩날리며 맨발로 릴을 추는 한 소녀의 인상은 오래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