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여인 – 1

  • 장르: 판타지 | 태그: #환상문학 #단편 #에이브러햄메릿
  • 평점×34 | 분량: 79매
  • 소개: 인간으로부터 숲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법을 다룬 작품 「숲의 여인」은 인간과 나무의 대립을 숲의 부름에 이끌린 한 청년이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기괴하게 묘사한다. 더보기

숲의 여인 – 1

미리보기

맥케이는 호숫가의 동쪽을 뒤덮고 있는 소나무 숲 한가운데 갈색 놈(땅속의 보물을 지킨다는 땅 신령, 꼬마 도깨비)처럼 엎드려 있는 작은 여인숙의 발코니에 앉아 있었다.

그곳은 보주 산맥 저 높은 곳의 작고 쓸쓸한 호숫가였다. 하지만 ‘쓸쓸한’이라는 단어만으로는 그곳의 분위기를 표현할 수 없다. 차라리 냉랭하고 고립된 느낌이랄까.

사방에서 뻗어 내린 산맥의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처음 그 풍경을 보았을 때 맥케이는 표면이 잔잔한 포도주로 가득 찬 거대한 나무 사발을 연상했다.

맥케이는 세계 대전에서 명예롭게 공군 기장 배지를 달았다. 그리고 새가 나무들을 사랑하듯, 맥케이도 나무들을 사랑했다.

그에게 나무들은 단순히 줄기와 뿌리, 가지와 잎사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격체들이었다. 실제로 그는 같은 종자의 나무들 각각에게서조차 성격 차이를 읽어냈다…….

소나무는 명랑하고 인정이 많다. 저놈은 승려처럼 근엄하다. 저기에 서 있는 것은 뽐내길 좋아하는 녀석이고 저쪽 것은 숲에서 명상에 몰두하고 있는 현자이다. 저 자작나무는 장난꾸러기이고, 그 곁에 서 있는 것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순수한 몽상가이다.

전쟁은 맥케이를, 그의 신경을, 뇌를, 그리고 영혼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전쟁의 세월을 거치면서 상처는 계속해서 벌어졌다.

하지만 거대한 초록 사발 옆으로 차를 몰아 내려가는 동안, 그는 산의 평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반드시 회복될 거라고 약속하면서 자신을 어루만지고 달래는 것을 느꼈다. 그는 깍지 낀 나무들 사이로 얼러주는 나무들의 손에 이리저리 기분 좋게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한 잎의 낙엽처럼 보였다.

맥케이는 작은 놈 같은 여인숙 앞에 차를 멈췄다. 그리고 그곳에서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또 한 주가 지나갔다.

나무들은 그를 간호해 주었다. 잎사귀들의 부드러운 속삭임, 솔방울 가시들의 느린 읊조림이 메아리치던 전쟁의 아우성과 슬픔을 차츰 약화시키더니 몰아냈다.

영혼의 상처는 나무들의 치료를 통해 아물었고, 그렇게 아물어서 흉터가 되었다. 그런 후에는 그 흉터마저도 새살에 묻혀 사라졌다. 대지의 가슴에 남은 흉터가 가을의 낙엽들 밑에서 덮이고 묻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무들은 그 치유의 손을 그의 눈에도 얹어주었다. 그는 산들의 푸른 젖줄에서 나무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그 기운이 내부로 흘러 들어오면서 맥케이는 점차 그곳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 안에 끓어 오르는 어떤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무들은 자기들의 근심을 알리기 전에 우선 맥케이가 완쾌되길 기다린 듯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고 있었다.

잎사귀들의 속삭임과 솔방울 가시들의 읊조림 속에는 불안과 분노를 드러내는 날카로운 기운이 있었다. 맥케이가 그 여인숙에 계속 머물렀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애원하는 기운에의 분명한 감지.

그는 나뭇가지들이 스치는 소리 사이로 의미를 잡아내려 귀를 세웠다. 인간의 이해력 그 경계에서 맴도는 말들, 그 말들은 결코 그 경계선을 넘어오지 않았다. 그는 서서히 그 계곡이 근심하고 있는 요체에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랬다고 믿었다.

호숫가 주변에는 집이라곤 단 두 채가 있었다. 하나는 여인숙이었고, 여인숙 주변으로는 그 집을 보호해 주기라도 하듯 나무들이 믿음직스럽게 몰려 있었다. 여인숙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일부로 만든 듯이 말이다.

또 다른 집 쪽의 나무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래전에 죽은 영주가 한때 그 집을 사냥용 오두막으로 썼는데 절반쯤 무너진 채 버려졌던 것이었다.

그것은 호수를 사이에 두고 여인숙의 반대편, 호숫가에서 1킬로미터가량 떨어진 비탈길 안쪽에 있었다. 한때는 그 집 주변에도 풍성한 들판과 비옥한 과수원이 있었다.

그곳 숲은 들판과 오두막 쪽으로 진군해 있었다. 마치 주둔기지를 지키는 병사들처럼 소나무와 포플러 나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묘목들은 시들고 부러진 과일나무들 한가운데에 정찰대처럼 있었다.

하지만 숲은 진군할 길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초라한 그루터기들은 그 낡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이 나무들을 찍어 넘겨버린 흔적을 보여주었고, 검은 땅은 그들이 숲을 불태웠음을 보여주었다.

그곳은 전쟁터였다. 거기에서 숲의 푸른 무리는 전쟁을 벌이며 위협받았고, 또 위협했다. 그 오두막은 나무들에게 포위된 요새였고, 그 요새의 주둔군은 포위하고 있는 무리를 사살하기 위해 도끼와 횃불을 들고 돌격했던 것이다.

맥케이는 이 숲이 느리지만 엄연한 진군을 계속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적을 포위하기 위해 틈이 생긴 곳마다 병사를 보강하면서, 빈 자리에는 씨앗을 쏘아대면서, 수액을 공급하기 위해 뿌리를 뻗으면서, 그리고 항상 압도적인 인내로 무장한 채로. 맥케이에게 그들은 숲의 군대로 보였다.

그는 적군에게서 잠시라도 눈을 떼지 않기 위해 수많은 숲의 눈들이 그 오두막에 고정되어 있는 듯한, 물샐 틈 없는 주목과 감시의 눈길을 감지했다. 이런 느낌을 여인숙 주인과 그의 아내에게 말하자, 그들은 그를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폴루 영감님은 나무를 좋아하지 않죠. 전혀요.” 주인 남자가 말했다. “그래요, 그의 아들 둘도 마찬가지이죠. 그들은 나무를 사랑하지 않아요……. 그리고 분명히 나무들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죠.”

* * *

그 오두막과 호숫가 사이에는 유난히 아름다운 은빛 자작나무와 전나무들로 이루어진 작은 숲이 호수 언저리를 향해 진군하고 있었다. 길이는 400미터 정도였고, 폭은 40~50미터가 채 못 될 것이었다.

맥케이가 그 숲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나무들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모여 있는 모양새 또한 무척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숲의 양쪽 끝에는 바늘 모양의 잎을 가진 반짝이는 전나무들이 열두서너 그루씩, 떼지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진군 명령이라도 받은 듯 퍼져 있었다. 그러니까 서로 간격을 두고 일렬로 정렬해 있었다.

이 단단한 나무들이 호위하는 가운데에 가냘프고 호리호리한 자작나무들이 빽빽하지는 않게 모여서 자라고 있었다.

맥케이에게 은빛 자작나무들은 기사들의 정중한 보호를 받고 있는 쾌활한 한 무리의 사랑스러운 숙녀들처럼 여겨졌다.

그런 기묘한 느낌 속에서 자작나무들은 흥에 겨워 웃음을 터트리는 즐거운 처녀들로, 소나무들은 가시 달린 쇠미늘 갑옷을 입은 그들의 애인들이자 음유시인처럼 보았다.

그리고 바람에 자작나무 꼭대기가 쓸릴 때면, 마치 어여쁜 숙녀들이 나부끼는 잎사귀 치마를 치켜들고 잎사귀 모자를 기울이며 춤을 추는 듯했다.

한편 전나무 기사들은 처녀들을 둘러싸고 가까이 다가와, 바람의 우렁찬 피리 소리에 맞추어 그들과 팔을 붙들고 함께 춤을 추었다. 그럴 때면 자작나무들의 달콤한 웃음소리와 전나무들의 활기찬 외침이 귀에 들릴 것만 같았다.

주변의 숲 중에서도 맥케이는 이 작은 숲을 가장 사랑했다. 그는 숲을 거닐다가 그늘에서 쉬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꿈을 꾸었다. 그러면서 낙엽처럼 가볍게 춤추는 발소리와 신비로운 속삭임을 들었고, 그러면 그 작은 숲이 발산하는 축제의 분위기를 상상해 보곤 했다.

이틀 전 그는 폴루 씨와 그의 두 아들을 보았다. 맥케이는 그날 오후 내내 그 숲에서 꿈을 꾸며 누워 있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그는 마지못해 일어나서 여인숙을 향해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가 호숫가에서 몇 백 미터 정도 배를 저어 갔을 때 세 남자가 숲에서 나와 그를 바라보았다……. 세 명 모두 보통의 프랑스인보다 키가 큰, 험상궂고 강인해 보이는 농부들이었다.

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들은 응하지 않은 채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기만 했다. 그가 다시 힘껏 노를 젓자, 아들들 가운데 하나가 커다란 손도끼를 들어 올리더니 인정사정 없이 호리호리한 자작나무 둥치를 찍었다. 맥케이에게는 도끼질 당한 나무에게서 가늘게 울부짖는 비명이, 그 작은 숲 전체에서 한숨이 들리는 듯했다.

그 순간 그는 날카로운 도끼날이 자신의 살점에 박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멈춰요! 멈춰요, 이런 제길!”

그에 대한 대답으로 폴루 영감의 아들은 다시 나무를 내리쳤고, 나무를 내리치는 남자의 얼굴에는 난생처음 보는 뿌리 깊은 원한이 새겨져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한 분노로 욕설을 퍼부으며, 맥케이는 배를 돌려 황급히 저편 호숫가로 돌아갔다. 찍고 또 찍는 도끼 소리가 들려왔고, 그가 물가에 이르렀을 때 우지끈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가늘게, 그리고 더욱 고통스럽게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자작나무가 흔들거리더니 쓰러지고 있었다. 그 작은 나무는 마치 기절한 처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품으로 쓰러지듯, 그 곁에서 자라고 있던 전나무에게로 기울었다.

그리고 자작나무가 쓰러져 흔들거리는 동안, 전나무의 가지 하나가 뚝 잘리더니, 도끼를 쥐고 있던 남자의 머리를 박살이라도 낼 듯 매섭게 떨어졌다. 남자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나뭇가지의 일격은 단순한 우연이었을 것이다. 자작나무가 쓰러지면서 그 충격에 나뭇가지가 부러졌다가, 이후의 진동 때문에 결국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나뭇가지가 주춤거린 것은 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였고, 그 안에는 지독하게 모진 분노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의도적인 공격처럼 보였기 때문에, 맥케이는 머리털이 쭈뼛 서고 심장이 멎었다.

한동안 폴루 영감과 그 곁에 서 있던 나머지 아들 하나는 초록빛 가슴에 은빛 자작나무를 안고 서 있는 단단한 전나무를 응시했다. 다시 상처 입은 처녀가 기사 애인의 품에 쓰러져 있는 장면이 맥케이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버지와 아들은 아주 오랫동안 나무들을 응시했다. 그런 후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그러나 얼굴에 짙은 증오를 드리우면서, 그들은 쓰러진 사람의 양팔을 자신들의 목에 둘러 일으켰고 흐느적거리는 부상자를 끌고 사라졌다.

아침에 여인숙의 발코니에 앉아, 맥케이는 그 장면을 새기고 또 새겼다. 생각할수록 쓰러진 자작나무와 그를 껴안았던 전나무, 그리고 전나무가 날렸던 그 일격의 용의주도함에는 분명하게 인간적인 측면이 있는 듯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이틀이 흘러가면서, 그는 나무들의 불안이 계속 커지고 속삭이는 듯한 애원이 더욱 다급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도대체 그들은 그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가 무엇을 해주길 원하는 것일까?

당최 종잡을 수가 없었던 그는 호수 건너편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 건너편을 꿰뚫어 보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그 순간 숲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자석이 나침반 바늘을 잡아당기듯, 그들은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그의 관심을 자기들 쪽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듯했다.

그 숲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에게 오라고 명하고 있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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