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르트 이야기

  • 장르: 판타지 | 태그: #환상문학 #단편 #앤드류랭
  • 평점×20 | 분량: 45매
  • 소개: 가지각색으로 채색된 요정 그림 동화책 시리즈로 유명한 앤드류 랭의 작품 「지구르트 이야기」는 용을 무찌르는 영웅 지구르트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뵐숭가 사가에 등장하는 용에 관한 유... 더보기

지구르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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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킹 알프레드 시대에 영국인들과 전쟁을 벌이곤 했던 데인 족(덴마크에 터를 잡고 바이킹으로 활약하며 영국에 침입하여 영국 역사와 항해 기술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이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죠. 이야기의 장면들을 바위 위에 새겨놓기도 했으니,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아름답고 오래된 이야기인 만큼 여기에서 다시 해볼까 합니다. 하지만 결말은 무척 슬프답니다. 슬픈 데다가 ‘데인 족’이라고 하면 예상할 수 있듯 싸우고 죽이는 장면들로 가득하지요.

* * *

옛날 옛적 북쪽 지방에 과거엔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나 이제는 늙어버린 왕이 있었다. 그는 새 아내를 맞았는데,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했던 한 왕자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늙은 왕은 그에 맞서 용감히 싸웠지만, 결국 그의 검은 부러졌고 그는 큰 부상을 당했으며 부하들은 죄다 도망가버렸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던 밤, 그의 어린 아내는 병사들의 시체 사이를 헤매다가 마침내 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왕이 회복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왕은 안 되겠다고, 자신의 운이 다했고 검이 부러졌으니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은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며, 그 아이는 위대한 전사가 되어 그의 원수, 그러니까 이제 곧 왕이 될 왕자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니 검의 부러진 조각들을 잘 간수하고 있다가 아들에게 새 검을 만들어주고 그 검은 반드시 그람이라 칭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후 왕은 죽었다. 왕비는 시녀를 불러 말했다. “서로 옷을 바꿔 입자. 너는 내 이름을 쓰고 난 네 이름을 쓰자꾸나. 그래야 적들이 우리를 구분할 수 없을 테니.”

그들은 옷을 바꿔 입고 숲으로 가서 숨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배를 타고 덴마크로 실려 갔다. 그곳의 왕에게 끌려갔을 때, 왕은 시녀는 여왕처럼, 여왕은 시녀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왕이 좋은 옷을 입은 여자에게 물었다. “아직 어두울 때 아침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소?”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어렸을 때 전 그 시간에 일어나서 불을 지펴야만 했습니다. 그게 습관이 되어 아직도 그 시간에 일어나니, 언제 아침이 오는지를 압니다.”

“불을 지피는 왕비라니 이상하기도 하지.” 왕은 생각했다.

그런 다음 그는 시녀 차림을 하고 있는 왕비에게 물었다. “아직 깜깜할 때 새벽이 다가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아버지께선 제게 황금 반지를 하나 주셨습니다. 새벽이 다가올 무렵엔 손가락의 반지가 차가워졌습니다.”

왕이 말했다. “시녀가 금반지를 끼다니 참으로 부잣집이로군. 당신은 시녀가 아니라 왕의 딸이구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정중하게 대접했다. 시간이 흘러 왕비는 아들을 낳았다. 지구르트라는 이 아이는 아주 잘생기고 씩씩한 소년으로 자랐다. 소년에게는 늘 시중을 들어주는 하인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이 하인은 그에게 왕에게 가서 말을 한 필 청하라고 했다.

“네가 직접 골라라.” 왕이 말했다. 그래서 지구르트는 숲으로 갔고 거기에서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을 만났다.

“이리 오세요! 어떤 말을 선택해야 할지 도와주세요.”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말 떼를 전부 강으로 몰아가십시오. 그리고 강을 헤엄쳐 건너는 말을 택하십시오.”

지구르트가 말 떼를 강으로 몰자 단 한 마리만이 강을 헤엄쳐 건넜다. 지구르트는 그 말을 선택했다. 말의 이름은 그라니였다. 슬레이프니르의 피를 타고난 그라니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말이었다. 슬레이프니르는 북쪽 세계의 신 오딘이 아끼던 말로 바람만큼이나 날쌘 놈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자 하인은 지구르트에게 말했다.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황금으로 된 굉장한 보물이 있습니다. 그걸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구르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그 보물에 관한 소문을 들었어. 그리고 파프니르가 지키고 있다는 것도 알아. 그 용은 거대하고 교활해서 누구도 감히 가까이 갈 엄두를 못 낸다지.”

“다른 용과 비슷하지요. 그리고 왕자님이 아버님만큼 용맹스럽다면 용을 겁내진 않겠죠.”

“나는 겁쟁이가 아냐. 왜 내가 그 용과 싸워야 하는 거지?”

그러자 레긴이라는 이름의 하인은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한때 그 황금 보물은 레긴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버지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첫째는 용 파프니르, 둘째는 원할 때마다 수달의 모습으로 변신해 수달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오터, 그리고 막내가 뛰어난 대장장이로 검을 만들었던 레긴이었다.

그 당시 난쟁이 안드바리가 폭포 밑 웅덩이에 엄청난 금더미를 숨겨놓고 있었다. 어느 날 둘째 오터가 물고기 사냥을 나갔다가 연어를 한 마리 잡아먹고는 수달의 모습인 채로 바위 위에서 잠이 들었다. 우연히 지나가던 사람이 돌을 던져 수달을 죽인 후 가죽을 벗겨서 오터의 아버지에게 가져와 자랑했다.

그렇게 하여 오터의 아버지는 아들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들을 죽인 자를 벌하기 위해 오터의 가죽을 금으로 가득 채우고 덮을 만큼의 황금을 가져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러자 오터를 죽였던 사람은 폭포로 되돌아가서, 보물을 소유하고 있던 난쟁이를 붙잡아 금을 모두 빼앗았다.

남은 것이라곤 난쟁이가 끼고 있던 반지 하나뿐이었는데, 그는 그마저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불쌍한 난쟁이는 몹시 화가 나서, 자신의 금을 소유하는 사람에게는 평생 불행만이 닥칠 것이라고 저주했다.

오터의 가죽은 금으로 채워지고 덮였다. 털이 한 올 빠져나와 있었지만 불쌍한 난쟁이의 반지로 덮을 수 있었다.

과연 그것은 누구에게도 행운을 불러오지 않았다. 첫째인 용 파프니르는 제 아버지를 죽인 다음, 동생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고 황금 위에 앉아 아무도 범접하지 못하게 했다.

사연을 듣고 나자 지구르트가 말했다.

“레긴, 내게 그 용을 무찌를 만한 좋은 검 한 자루를 만들어줘.”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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