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번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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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길 끝에서, 성수는 마당 딸린 이층집 앞에 섰다.

문패에 임, 성, 수, 세 글자 박힌 걸 보면 길을 잘못 든 것 같지는 않은데. 성수는 바짝 긴장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지옥도, 사람을 갈아대는 맷돌도, 덜 녹은 머릿가죽이 둥둥 떠다니는 용암도 보이지 않았다. 단독주택이 듬성듬성 놓인 한가한 동네다.

“이름 석 자 확인하셨으면 집 열쇠 좀 받아 주시죠.”

풀색 작업복을 입은 관리인이 짜증을 냈다. 성수는 관리인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여기, 지옥 아닙니까?”

“지옥 아니고, 맞게 오셨습니다. 임성수 씨.”

“허, 형수님한테 밥이라도 사야 하나.”

“무슨 일 있으셨어요?”

“형수님이 나한테 그랬거든. 네가 죽어서 지옥행을 면했다면 자기 기도 덕분인 줄 알라고. 기도 약발이 좋긴 좋은가보네. 하긴 그러니까 그렇게 우르르 몰려가서들-”

“열쇠나 받으시죠.”

관리인이 성수의 손아귀에 열쇠를 쑤셔 넣었다. 딱딱하고 차갑고 따끔한 감각이 생생하다. 강아지 발바닥 모양 열쇠고리가 손등 밑에서 달랑거렸다.

“저 집 열쇠예요?”

“네. 가서 열어 보세요. 이제부터 임성수 씨 소유입니다. 열쇠 분실 시 재발급 가능하시고요. 전 매일 한 번씩 순찰 나오니까…….”

“내 집 맞다고?”

“아이고오- 내 참. 봐도 모르겠어요? 임성수 씨네 마지막 집 데이터 받아다가 만든 건데, 안 비슷해요?”

“월세였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거기서는 반 년도 못 채우고…… 뒈졌는데.”

관리인의 말마따나 저 정떨어지는 모양새는 성수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과 흡사했다. 성수는 집 열쇠를 무기처럼 쥐고,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마당을 가로질렀다.

대문을 통과해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뿌리가 붕 떠서 말라죽은 잔디가 밟힌다. 나뭇가지들은 하나같이 벌거벗어 뿌리처럼 보이는 검은 선은 하늘로 뻗는다. 고무 대야, 깨진 플라스틱 바구니가 마당을 굴러다닌다. 본채 뒤로는 뚜껑 열린 장독들이 먼지를 마시고 있다.

현관문으로 오르는 돌계단 두 번째 칸에서, 성수는 계단 모서리를 발로 쓰다듬었다. 그날 딱 여기다가 뒤통수를 박고 세상이 어두워졌다. 눈을 떠 보니 검은 도포자락을 따라 저승길을 걷는 중이었다. 저승 전입 수속이다 재판이다,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 여기까지 왔다. 성수는 자신의 뒤통수를 만졌다. 덜렁대는 뼈 구덩이 안쪽, 축축하고 말캉한 덩어리가 손 끝에 닿는다.

한참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등 뒤에서 관리인이 손뼉을 짝 쳤다.

“빨리 수령확인 해 주셔야 저도 다음 집 갑니다.”

“알았어요, 안다니까! 더럽게 급하네.”

성수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열쇠를 꽂아 넣었다. 하지만 넣은 이후부터는 손이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돌아가 달칵 소리를 이끌어낸다. 그새 몇 달은 살았다고 익숙한 감각에 피식 웃은 것도 잠시.

문틈으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마룻바닥을 긁는 마찰음, 거친 숨소리. 성수의 등골 틈으로 식은땀이 싸하게 맺혔다.

그럼 그렇지, 내가 천국에 올 리 있나. 이대로 도망치다가 또 두 번째 계단에 뒤통수를 박아 죽고 또 저승길을 흐르고 흘러 여기가 지옥인줄도 모르고 좋다고 열쇠를 받아 오른쪽으로 돌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을 때.

현관문이 열리고, 성수는 집 안에서 숨을 몰아쉬던 것과 눈을 마주쳤다.

“똘비. 똘비냐?”

“웍!”

다리 길쭉한 개가 어쩔 줄 몰라 네 발을 굴렀다. 성수도 어쩔 줄 몰라하다가 열쇠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두 팔을 벌렸다. 개는 바로 앞발을 주인 가슴팍에 디디는가 싶더니 주인의 코와 입을 핥기 시작했다.

“예, 웩, 하지, 푸풉, 말래도!”

핥는 소리, 낑낑대는 소리, 낮게 짖는 소리가 침과 함께 얼굴에 쏟아졌다. 성수의 크고 두꺼운 손이 개의 등과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자 개는 바닥에 드러누워 꼬리를 흔들었다.

“어이구, 그래. 똘비. 응. 어떻게 왔어, 응? 아저씨 따라왔어? 혹시 아저씨 죽고 어떤 개만도 못한 새끼가, 어, 물어뜯지는 않았고? 응? 잘 살았어? 잘. 잘 살았어? 어?”

혹시라도 밖에 나갔다가 차에 치였을까, 굶어 죽었을까, 개만도 못한 자식에게 걷어차인 건 아닐까. 온갖 걱정을 짊어진 채 성수는 개를 살폈다. 살집도 적당하고 상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