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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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노인의 자동차는 도로를 꿈결같이 질주해 나아간다.

 

속도를 올려 변속할 때 마다 기어봉의 무게감에 손이 뻐근해 온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아있는데도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어 간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도 없이 세일은 박 노인에게 들었던 주소를 수월히 찾아간다.

 

섬뜩한 통찰이 세일의 머리를 강타한다.

 

세일은 뻐근해 오는 눈가에 힘을 주고 이를 꽉 깨물었다.

 

머리에서부터 시작된 떨림은 곧 온몸으로 번져 나간다.

 

손과 발을 타고 올라오는 엔진과 도로의 진동이 세일의 공포와 맞물려 공진한다.

 

낡고 빛바랜 주공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세일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세일은 화면을 내려다보지도 않고 선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통화음만 길게 이어질 뿐 선영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더 자요..]

 

마지막으로 세일에게 속삭였던 선영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과천의 낮은 한산하고 을씨년스럽다.

 

오가는 인파 하나 없는 아파트 단지에서 세일은 이 노인의 아파트로 걸어갔다.

 

그리 높지 않은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기묘한 냄새가 풍겨온다.

 

어깨의 떨림은 점점 더 심해져 온다.

 

명치끝에서부터 토해 나오는 울음을 억제하기가 힘들다.

 

흐릿해진 눈을 비비며 세일은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냄새는 점점 더 강해져 온다.

 

이 노인의 집 현관은 활짝 열려있었다.

 

무방비하게 노출된 거실 안쪽 방에서 그 정체를 상상하기 싫은 소리가 들려온다.

 

세일은 입을 열어 이 노인의 이름을 불렀다고 생각했다.

 

“.. 우리 세일 군 왔는가.”

 

안방에서 초췌한 표정의 이 노인이 걸어 나온다.

 

이 노인의 옷과 손은 온통 피투성이다. 이 노인의 피는 아니다.

 

“어르.. 영감님.. 왜.. 저랑 또 다음 월급날 벤츠 사러..”

 

터져나오는 오열을 애써 억누르느라 말을 끝맺기가 힘들다.

 

“..미안해. 세일 군. 내 꿈속인데.. 미안해 정말.. 나는..”

 

이 노인의 목소리에는 이전의 다정하고 유쾌하던 말투의 그림자만이 남아있다.

 

“나는.. 못해.. 자네한테.. 정말 미안해..”

 

이 노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 내린다.

 

세일은 대꾸 없이 안방으로 한 걸음 더 내디딘다.

 

이 노인이 세일을 만류하며 고개를 내젓는다.

 

“세일군.. 내가 무얼 봤는지 아나? 무얼 들었는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한 거야 나는..”

 

한걸을 한걸음 안방으로 다가갈 때마다 피비린내와 동물의 내장 기름 냄새가 뒤섞인 역겨운 향이 강해진다.

 

“세상에 우리일 만큼.. 중한 게 없다고 말한 게 나였는데.. 그걸 자네한테 다 떠넘겨서..”

 

어린 아이의 미약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난 꿈꾸는 자가 깨어났을때.. 마주쳐야 할 걸 감당할 자신이 없어..하지만 박형과.. 맞서기도.. 박형이 나에게 시킬 일을 해낼 자신도 없어..”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세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화기를 꺼내 들어 단축다이얼을 누른다.

 

“말씀하십시오.”

 

긴장되고 기계음처럼 딱딱한 목소리가 세일의 말을 기다린다.

 

세일의 입이 열리고 주소를 말한다.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핏빛 노을에 물들어 있다.

 

세일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흐느끼고 있는 이 노인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사무실 다시 가야겠지.. 그다음엔 선영씨랑..’

 

다음이란 없다는걸 세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거실 창이 거칠게 떨린다. 멀리서 헬기들이 아파트로 날아오는 게 보인다.

 

곧 군인들이 들이 닥칠 것이다.

 

‘그리고 곧 다음 아파트로 가겠지.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라 생각하면서 꿈꾸는 자가 완전히 깨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마쳐야 한다고 말하겠지.’

 

세일은 휴대전화를 들고 다시 한번 선영에게 전화를 건다.

 

통화음도 없이 곧바로 선영의 목소리의 그림자가 세일의 귀에 진실을 속삭인다.

 

“그만 꿈에서 깰 시간이에요.”

 

의자에 너부러져 지치고 혼란스러운 채로 세일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더는 손목시계의 초침이 내는 우렁찬 맥동이 들려오지 않는다.

 

시간은 12시에 멈추어 있다.

 

‘얼마나 지난 거지? 설마 태엽 감는걸 깜박하고 하루가 지난 건가?’

 

시간 감각이 온통 뒤틀려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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