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꿈속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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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하지 못했던 사무실 풍경에 당혹감이 든다.

 

이 노인도 박 노인도 세일에게 이런 경우에 관해 이야기 해준 적은 없었다.

 

등 뒤에서 둔중하게 닫히는 철문의 소리에 흠칫 놀라며 세일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벽면의 시간은 여전히 9시다.

 

‘박 영감님한테 전화해야 하나? 그러려면 사무실 좀 비워놔야 하는데.. 그보다 언제부터 비워져 있었던 거지?’

 

어젯밤에 김 노인이 출근했음은 분명해 보였다. 만약 김 노인이 출근하지 않았더라면 박 노인이 사무실을 계속 지키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전화하려고 사무실 비우면 화내실 거다. 기다리면 박 영감님 오실 거야. 그때 이야기하자.’

 

김 노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지는 알 수는 없지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걸 참을 수가 없다.

 

‘아무리 사람이 무책임해도 그렇지..’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교차로를 건너간 거야.’

 

한편으로는 김 노인이 없을 때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알아 이미 한번 넘어갔을지..’

 

마음속 의심과는 달리 세일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잠깐 손목시계를 확인해 보니 이제 막 7시를 지나고 있었다.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김 노인에 대한 분노와 걱정과 호기심이 뒤섞여 좀처럼 벽면의 시계에 집중할 수가 없다.

 

“그에게도 대답을 속삭여 주었거든.”

 

‘박 영감님도 안 오시면 어떡하지?’

 

한번 뒤흔들려 버린 일상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비대해져 간다.

 

여태껏 당연하게 느껴졌던 모든 것이 다 빈약하기 짝이 없는 한 가닥 기대에만 의지해 매달려 있는 듯 여겨진다.

 

사무실 안의 열기는 기이할 정도로 뜨겁다.

 

어느새 몸에서 땀이 흘러내려 패딩 안이 축축해질 정도이다.

 

외투를 벗고 손목시계를 확인해 보니 이제 겨우 7시 30분이다.

 

벽면의 시간은 여전히 9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떨지 몰라도 박 영감님은 꼭 오실거다.. 이제 7시간 30분만 있으면..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 김 영감님 이야기도 꼭 할 거야. 그러고 나면 선영 씨 만나러 가는 거다.’

 

날뛰던 마음이 한결 안정된다.

 

기묘한 웃음소리가 지하실 문 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이제껏 사무실에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 세일을 사로잡는다.

 

[이세일씨.. 내가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혼자서 근무 설 때 말이야..]

 

수습기간의 마지막에 김 노인이 건네었던 말이 떠오른다.

 

‘3시가 넘어가면 손잡이를 당기면 되는 거야. 그것뿐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내 손으로 직접 하면 되는 거야.’

 

“내가 필요한 건 손잡이를 당겨야 할 때 머뭇거림 없이 당기는 손이요.”

 

언뜻 박 노인의 목소리를 들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계를 내려다보니 어느새 9시가 지나 있었다.

 

벽면의 시간은 여전히 9시다.

 

‘이제 6시간만 더 있으면 된다. 박 영감님은 늘 조금 일찍 오시니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다.’

 

“어떻게 확신하지? 찬탈자라 할지라도 사고는 당할 수 있는 거잖아? 언제까지 오지도 않을 사람을 영원히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잖아?”

 

교차로에 멈추어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박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막 파란불로 바뀌어 출발하는 박 노인의 자동차를 또 다른 자동차가 덮치는 모습이 떠오른다.

 

또 다른 자동차의 운전석에는 김씨가 앉아있다.

 

[우리의 주인이 더 이상 꿈을 꾸기가 싫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땀이 식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세일은 시계에 시선을 고정한 체로 난로 가로 걸어갔다.

 

난로 속 불기의 온기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저 난로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가스등은?]

 

‘박 영감님한테도 무슨 일이 생긴거야..’

 

근거 없는 의심은 곧 확신으로 굳어진다.

 

‘김 영감님은 사라졌고.. 박 영감님도 사고를 당하신거다.. 나는 여기서.. 혼자서 오지 않을 사람을 영원토록 기다리다가..’

 

버림받았다는 분노가 세일의 마음을 좀먹어 들어간다.

 

“버림받고 배신당한거야.”

 

‘..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영감님이 계시잖아. 이틀만 쉰다고 하셨으니 어떡하든 근무 복귀 하실 거야. 사실 박 영감님이 그렇게 간단하게 사고를 당할실 분도 아니고..’

 

점점 초췌해져 가던 이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다지 의지할만한 전망은 아닌 것만 같았다.

 

‘여태껏 계속 하던 일 똑같이 하는 거잖아. 김 영감님 일찍 사라졌다고 갑자기 왜 이렇게 이상한 망상만..’

 

“망상이 아닌 걸 알고 있잖아. 때가 온 거야.”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