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해석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이 노인이 박 노인을 처음 만났을 때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게 떠오른다.

 

‘얼굴이 거의 변한 게 없으신 것 같다 그랬었지..’

 

“나에게서 모든 걸 앗아간 찬탈자의 얼굴이야.”

 

더이상 근무 교대 시각이 다가오는 게 기다려 지지가 않는다.

 

억누르고 있었던 비현실적인 위화감들이 실체를 띄고 세일에게 질문을 던져댄다.

 

‘어쩌면 그냥 닮은 사람일 수도 있지..’

 

세일 자신도 믿지 않는 해석이다.

 

세일은 애써 힘주어 벽면의 시계에 시선을 고정한다.

 

‘박 영감님이 누구이건.. 얼마나 오래 살았건.. 내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나의 종복이 찬탈자의 개로 전락하는구나.”

 

‘난 누구의 종도 아니다…’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이 세일의 몸을 휘감는다.

 

움직이지 않는 시계의 바늘이 오히려 더 큰 위화감을 던져준다.

 

‘그러고 보니 김 영감님이 김 씨 사건 이야기 해줄때.. 그때 시계가 제대로 동작을 하지 않은 거였던 거잖아?’

 

시간은 여전히 9시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니 어느새 12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아까 분명히 8시 정도였는데..’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 어머니에게, 선영에게 전화를 걸고 둘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안심이 될 것 같다.

 

‘3시간만 있으면 교대 시간이니깐..’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겠어?”

 

탁자 위에 너부러진 무가지로 자꾸만 신경이 쏠린다.

 

세일은 무가지의 1면을 뜯어내 손으로 구겨 가방 속에 쑤셔 넣었다.

 

‘.. 오히려 1면만 뜯겨나간 거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실까?’

 

한참을 망설이다 이번에는 탁자 위에 남아있는 모든 무가지들을 가방 속에 밀어 넣었다.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니 인제야 2시다.

 

언제라도 철문이 열리고 박 노인이 불쑥 사무실로 들어올 것만 같다.

 

“그는 모든 걸 바라보고, 모든 걸 알고 있을 텐데?”

 

사방으로 흩어지는 의식을 그러모으며 벽면의 시계만을 바라본다.

 

시간은 여전히 9시다.

 

미세하게 시침이 흔들리는듯한 기분이 든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시침이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긴장감이 세일의 심장을 움켜쥔다.

 

“그가 뭐라고 했지? 손잡이는 언제 당겨야 한다고 했지?”

 

사무실의 철문이 기척도 없이 열린다.

 

차분하게 인사를 하며 박 노인의 들어서자 사무실 안의 온도가 기이할 정도로 높아지는 기분이 든다.

 

시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분명 나한테 말 거실 거야.. 차 이야기라든가..’

 

세일의 기대와는 달리 박 노인은 별다른 말 없이 짐을 풀고 세일의 옆자리에 앉았다.

 

“교대시간 이내 이만 가보도록 하게.”

 

기다리고있었다는 듯 세일은 박 노인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사무실 문을 나섰다.

 

두꺼운 철문이 등 뒤에서 닫히고 겨울 공기를 들이마시고 나서야 긴장이 풀린다.

 

세일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휴대폰을 켜 문자를 확인해 보았다.

 

선영이 보낸 안부 문자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이따 저녁에 식사할래요? 제가 모시러 가서 식사하고 병원까지 태워 드릴게요.]

 

좀처럼 답변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세일은 한숨을 내쉬고 차에 올라타 집으로 향했다.

 

신호에 걸려 정차 할 때 마다 선영의 이야기가 떠올라 섬뜩한 기분이 든다.

 

모든 교차로의 신호 하나하나가 예측할 수 없는 최후에 대한 선고처럼 느껴진다.

 

헤어지고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선영에 대해 그리움이 간절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해 보지만 여전히 선영으로부터의 답장은 없었다.

 

세일은 실망과 초조함과 분노와 걱정이 뒤섞인 감정에 사로잡혀 엘리베이터를 잡고 집으로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여전히 주무시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때맞춰 울리는 휴대폰의 문자 수신음에 마음이 들떠 오른다.

 

[이번엔 얼굴을 똑똑히 봤겠지? 반갑지 않았나?]

 

기대감에 한 것 부풀어 오른 마음이 사그라지고 분노가 세일을 휘감는다.

 

세일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문자를 보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듯 통화음은 길게 이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