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중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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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은 지점장이 내민 대출 서류의 금액란을 한참 바라보았다.

 

‘내가 학자금 대출 남은 게 아직 2700만 원 정도고.. 차는 중고로 한 1000만 원이면 사겠지? 거기에 보증금 2000만 원 정도면 꽤 괜찮은 월세도 구할 수 있잖아?”

 

지점장이 세일을 독려하듯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 정도 대출해도 괜찮으려나?’

 

떨리는 손으로 세일은 대출 서류 금액란에 6000만 원을 적었다.

 

그런 세일을 바라보며 지점장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세일이 퍽이나 한심해 보이는듯한 표정이다.

 

‘내가 너무 무리했나? 암만 그래도 신용 대출이고 한데..’

 

지점장이 세일의 손에서 대출 서류를 받아들더니 양복 재킷에서 만년필을 꺼내 든다.

 

“자! 세일씨 이렇게 하죠. 저희 은행 문은 세일 씨와 어르신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으니 대출이 추가로 필요하시면 언제든 또 찾아오시면 됩니다. 그런데 업무 특성상 시간 내시기가 쉽지 않잖아요? 기왕 어려운 발걸음 하셨는데 귀찮지 않은 금액 대출해 가시죠.”

 

만년필이 서류 위로 미끄러지며 세일이 적어낸 액수의 끝자리에 0을 하나 덧붙인다.

 

“이러면 되겠죠? 여기랑 여기 사인 하시고요. 금액은 월급통장으로 바로 들어갈 겁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우리 월급 통장 이자율 때문에 달에 몇만 원이라도 추가 수익이 발생하겠네요.”

 

지점장이 세일에게 다시 대출 서류를 내민다.

 

이제껏 머릿속으로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비현실적인 금액의 무게에 짓눌려 사인을 하는 손이 덜덜 떨려온다.

 

“다 되었네요. 나가시는 길에 아까 창구 직원이 월급통장 전달해 드릴 거고요. 다음에 또 저희 은행 오실일 있으면 일반 고객 창구로 가지 마시고 전화 한 통만 주시고 바로 제 사무실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지점장실을 나서는 세일에게 아까의 창구 직원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신입이라 업무 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요. 다음번에는 이런 불편 없도록 하겠습니다!”

 

세일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는 창구 직원의 손에서 통장을 받아들고 말없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은행 문을 나섰다.

 

눈앞의 버스 정류장에 있는 로또 판매점의 ‘1등 당첨점’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단돈 천 원도 아껴야 했던 세일은 이전까지 한 번도 로또를 구입해 본적이 없었다.

 

조금은 충동적으로 로또를 구입해 지갑에 넣은 후 다시 한번 월급 통장을 꺼내 통장에 찍힌 액수를 보고 또 보았다.

 

세일이 평생 일을 하며 모은다 한들 가져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 적이 없었던 자릿수의 금액이다.

 

[벤츠를 사라고!]

 

장난스러운 이 노인의 말이 떠올라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일단 대출상환부터 하고.. 중고차 매장이 어디 있더라..’

 

매달 세일을 지독히도 괴롭히던 대출금의 상황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게 이루어 졌다.

 

대출 은행과 간단한 통화를 하고 계좌 이체로 일시 상환을 하고 나니 허탈감이 밀려온다.

 

최소한 몇 년은 더 걸릴 거라 생각했던 일이었다.

 

왜인지 어렸을 때 부모님과 찾아갔던 음식점에서 줄을 서지 않고 먼저 입장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가지에서 광고를 보았던 중고차 매매 단지로 전철을 타고 가며 세일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그래. 세일아.”

“엄마. 나 학자금 대출 지금 다 갚았어요.”

“진짜? 아니 어떻게?”

“회사가.. 회사 분들이 좀 도와주셔서요. 저 그리고 출퇴근 때문에 차도 한 대 사려고요.”

“얘! 너무 잘됐다. 그런데 차까지는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니?”

“어.. 무리 한 건 아니에요. 엄마 나 바로 출근해야 해서 나중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그래. 지각한 건 아니지? 성실히 잘 다니고!”

“어 끊어요.”

 

전화를 끊고 나니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괜히 눈가가 시큰거린다.

 

‘빨리 사서 출근 해야겠다. 아무리 볼일 보고 출근하라 하셨지만, 너무 늦으면 곤란하잖아..’

 

시간은 벌써 10시가 지나있었다.

 

세일은 중고차 매매 단지 입구 근처에서 ‘신속 출고, 들어와서, 보시고, 타고 가세요’ 라고 쓰여 있는 매장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차 보시고 오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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