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로봇을 조심해

  • 장르: SF | 태그: #SF #로봇 #고양이 #공무원
  • 평점×19 | 분량: 84매
  • 소개: 인간형 로봇, 인간 여자, 고양이 로봇 (제목 변경: 삼각관계 -> 고양이 로봇을 조심해) 더보기

고양이 로봇을 조심해

미리보기

나는 구청에 소속된 인간형 로봇이었다. 내가 배치된 부서는 환경위생과였다. 공장에서 처음 생산되고 구청에 납품된 나는 환경위생과 사무실로 배송됐다.

나는 사무실에서 처음 눈을 떴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몸을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아직 몸체를 조립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머리만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내 눈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저희 사무실에 오신 걸 환영해요. 저는 유리라고 합니다. 환경위생과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에요. 제가 조립해드릴게요.”

내 몸체에 해당되는 부품들을 유리는 바닥에 늘어놓았다. 나는 책상 위에 머리만 놓여있는 상태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유리는 드라이버를 이용해서 몸통에 양팔, 양다리를 부착했다. 팔과 다리가 생긴 내 몸은 사무실 한가운데 우뚝 섰다. 유리는 마지막으로 내 머리를 몸통 위에 올려놓았다.

머리가 몸통과 연결된 나는 몸을 움직였다. 사무실 안을 이리저리 걸어보았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팔과 다리의 관절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사무실 안의 인간들은 모두 나를 쳐다봤다.

“어때요? 이상 없어요?”

유리가 내 옆에서 나란히 걸으면서 물었다.

“예, 괜찮네요. 아무 이상 없습니다. 하드웨어 이상 없습니다. 소프트웨어 이상 없습니다. 충전상태 양호합니다.”

“저 로봇 조립 처음 해보는데 이렇게 문제없이 작동해서 다행이에요. 저 잘했죠? 저한테 고마워하세요. 하하하.”

“네, 저를 조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그런데 말투는 로봇 같은데 목소리는 진짜 사람처럼 들리네요. 로봇 주임님이 생긴 거는 사람이 아니라 로봇처럼 보여요. 철제 뼈대랑 플라스틱 몸통만 보면 로봇인 걸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목소리는 진짜 인간 같아요. 말투가 너무 로봇 같은 건 좀 웃기네요.”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일하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목적은 인간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였다.

“저에게 일을 시켜주세요. 무거운 물건을 나르거나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제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 밖에 로봇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시켜주세요.”

유리는 활짝 웃었다.

“진짜 로봇 맞네요. 어떻게 사무실 오자마자 일하려고 해요? 열정이 넘치네요. 로봇 주임님, 지금은 일하지 않고 일단 사무실 분위기를 익히는 게 먼저예요. 제가 사무실 사람들을 소개해 줄게요.”

유리는 나를 환경위생과 직원들에게 소개했다. 환경위생과 직원들은 로봇인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들과 인사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업무든 맡겨만 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빨리 일하고 싶습니다. 제가 맡을 업무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열심히 일해서 인간들에게 봉사할 것입니다.”

내가 말할 때마다 인간들은 웃으면서 한 마디씩 던졌다.

“로봇이라서 그런지 일하고자 하는 열정이 아주 넘치네.”

“우리랑 잘 지내봐요. 앞으로 돌쇠라고 부를게요.”

“돌쇠는 내가 매뉴얼을 보니까 사람의 여러 감정을 어느 정도 골고루 갖고 있다고 그랬어. 우리랑 같이 잘 어울릴 거야. 돌쇠는 인간의 표정이나 몸짓을 분석해서 인간의 감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했어. 돌쇠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유리가 내게 말했다.

“다른 분들 하는 말씀 들었죠? 모두 돌쇠를 좋아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날부터 나는 구청의 환경위생과에서 일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청소, 무거운 물건 운반, 서류 전달, 민원인 응대였다. 환경위생과 직원들은 나에게 우호적이었다.

민원인들도 내게 호감을 보였다.

“로봇이 공무원들이랑 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거예요? 세상 좋아졌네.”

“로봇이 서류 작성하는 거를 친절하게 잘 알려주고 고맙네요.”

나는 열심히 일했다. 나는 인간들로부터 인정받고 관심을 끌게 행동하도록 설계됐다. 인간들이 좋아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게 내 업무였다. 내게 설치된 감정 분석 소프트웨어로 나는 인간들의 표정과 몸짓을 분석해 호감 신호를 포착했다. 내가 열심히 일하면 인간들은 호감 신호를 내게 발산했다. 나는 인간들의 더 큰 호감을 끌어내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일했다. 내가 열심히 일하면 사무실 인간들은 이런 식으로 말했다.

“돌쇠 진짜 열심히 일한다.”

“돌쇠야, 천천히 쉬면서 일해. 너무 무리하지 마.”

유리는 나를 잘 챙겨줬다. 내가 충전대 위에 서서 전력을 충전하고 있으면 유리가 내게 다가오고는 했다. 유리는 물티슈로 내 몸 곳곳을 닦아주었다.

“우리 돌쇠 몸에 먼지가 많이 묻었네. 내가 닦아줄게.”

“고맙습니다.”

유리가 내 몸을 닦아줄 때 나는 생각이 느려졌다. 동작도 약간 어색해졌다. 전혀 로봇답지 않았다. 수줍은 인간처럼 행동했다. 나는 인간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을 유리에게 느꼈다. 나를 설계했던 인간이 무슨 의도였는지 몰라도 나는 정말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무거운 물건을 혼자 운반할 때는 유리가 나에게 와서 물어보고는 했다.

“돌쇠야. 안 무거워? 같이 도와줄까?”

“안 무거워요. 저는 로봇이잖아요. 저 힘 세요.”

“내가 도와줄게.”

“진짜 괜찮아요.”

“왜 내 도움을 거부하는 거야? 같이 일하면 빨리 끝나.”

유리는 내 옆에서 내가 물건을 나르는 것을 도왔다. 유리가 나를 도와줄 때도 나는 사랑의 감정을 경험했다. 유리는 내게 애정어린 눈빛을 보냈다. 유리는 친근한 손짓으로 내 몸을 두드려주었다. 유리는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면 행복하게 웃고는 했다. 유리가 내게 호감 신호를 표현할 때마다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도 더욱 커졌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유리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 유리가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에 나는 감사했다. 나는 유리가 좋았다.

***

유리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고양이에 대해서 유리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나는 자주 들었다. 유리는 구청 근처에 나타나는 길고양이를 특히 귀여워했다. 어느 날 유리가 박 팀장과 의논했다.

“팀장님, 저희 이번에 홍보용 로봇 구입하잖아요. 민원인 왔을 때 음성으로 안내도 하고 홀로그램으로 공중에 홍보문구도 띄우는 로봇이요.”

“응, 그거 유리 주임이 진행하기로 했잖아.”

“네, 팀장님 그거 제가 생각해봤는데 고양이 로봇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어?”

“귀여운 고양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니까 홍보효과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고양이 로봇으로 어떻게 홍보를 한다는 거야?”

“고양이 눈에서 홍보문구를 홀로그램 형태로 발산할 거예요.”

“좋은 생각이네. 유리 주임이 고양이 로봇 구입 계획을 공문으로 작성해서 결재받아.”

“네, 팀장님. 이번에도 돌쇠 납품한 업체 통해서 진행할게요. 그 업체가 로봇을 저렴한 가격으로 잘 만들더라고요.”

“고양이 디자인은 어떻게 하려고?”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저희 구청 근처에 사는 길고양이랑 똑같이 로봇을 만들어달라고 하려고요. 그 길고양이가 진짜 귀엽게 생겼거든요. 제가 평소에 그 길고양이 사진이랑 영상들을 찍어놓은 게 많아요. 업체에 제가 사진이랑 영상 전달해서 똑같이 제작해달라고 할게요.”

“아 그 길고양이? 나도 본 적 있는데 진짜 귀여웠어. 그래 그 고양이 정도면 사람들이 다 귀여워하겠다.”

얼마 후 우리 사무실에 나비가 나타났다. 나비는 고양이 로봇이었다. 나비는 겉모습을 보면 실제 고양이와 똑같았다. 나는 종종 인터넷에 접속해서 인간들이 생산하는 정보를 접했기 때문에 고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었다. 나비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행동도 진짜 고양이 같았다. 나비가 꼬리를 세우고 걷는 모습은 살아있는 고양이와 차이가 없었다.

인간들이 나비를 봤을 때의 반응을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리를 포함한 모든 사무실의 인간들은 내가 측정가능한 최고 수준의 호감 신호를 나비를 향해 표현했다. 그들은 설레거나 웃는 표정을 지었다. 이완되고 개방적인 몸짓도 보였다. 틈만 나면 인간들은 나비를 둘러쌌다. 그들은 나비를 쓰다듬으면서 한 마디씩 던졌다. 나비를 향해 말하는 인간들의 목소리는 애정으로 가득했다.

“로봇이 아니라 진짜 고양이 같아.”

“살면서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는 처음 봤어. 아 맞다. 고양이가 아니고 로봇이지.”

“아, 어떡해. 너무 귀여워.”

“내가 집에 데리고 가서 키우고 싶다.”

“울음소리도 진짜 고양이 같아. 아 진짜 귀엽다.”

“이 고양이 로봇 보니까 구청 건물 주변에 나타나는 길고양이랑 진짜 똑같이 생겼다. 그 고양이도 이렇게 귀엽잖아. 진짜 업체에서 똑같이 만들어줬어.”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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