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아파트에 고립된 가구는 총 12가구였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고립을 택했다.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메마른 삶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고립을 택했다. 아파트 단지 정문에 노란색 철제 바리케이드가 들어섰다. 화단을 따라 날카로운 철조망을 둘러쳤다. 출입자와 차량은 신중하게 검문했다. 입주민들은 돌아가며 24시간 경비를 섰다. 차가운 콘크리트로 지은 아파트는 단단한 요새로 변했다. 결사항전. 말 그대로였다. 죽음을 각오한 전쟁이었다.

 

아파트 외벽에 붉은 글씨가 나붙었다.

 

‘할인분양 웬말이냐’

 

‘왕보건설 각성하라’

 

‘분양자와 합의없는 할인분양 결사반대’

 

현수막이 아파트 외벽과 정문 곳곳에 나붙었다. 신문에도 실렸다.

 

‘철조망까지 등장, 땡처리 아파트 갈등’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는 포털 사이트 대문을 두세 시간 장식했다. 그리고 잊혀졌다. 세상 사람들은 이들의 전쟁을 기억하기에 너무 바쁜 듯했다. 12가구의 외로운 투쟁은 한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할인분양 대책위원회 대표는 603호의 구봉식이었다. 입주를 마친 12가구를 포함해 아파트를 분양받은 가구는 총 32가구였다. 아직 입주 전인 20가구도 구봉식에게 할인분양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위임했다. 구봉식은 법무사라고 했다. 시행사와 협의해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없었다.

 

구봉식은 일주일 정도 여기저기 쫓아다니더니 다시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그 회의에서 결사항전 방침이 정해졌다. 아파트를 보러 오는 외부인을 막고, 할인분양을 받아도 이사 들어오지 못하게 정문과 아파트 경계를 모두 봉쇄하기로 했다.

 

“내가 법무사 생활만 20년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지. 법대로 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드러누워야 해. 대한민국에서는 배 째라고 드러누워야 해. 그래야 말을 듣지.”

 

머리가 반쯤 벗겨진 구봉식은 씩씩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얼굴에 결의가 아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구봉식의 말을 따랐다. 믿을만한 사람이 구봉식밖에 없었다. 그나마 법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다들 박수로 구봉식의 제안을 가결했다. 구봉식의 이마는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아파트를 봉쇄하고, 플래카드를 붙이고, 시위를 했다. 지역신문 기자의 카메라 플래시가 펑, 하고 터지자 사람들은 희망을 가졌다. 지역 뉴스에 구봉식의 인터뷰가 나왔을 때, 다들 텔레비전 앞에서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이토록 억울한 우리들을 세상이 저버릴 리 없다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그 후로 바뀐 건 없었다.

 

 

 

*

 

 

 

아파트 정문 옆 수위실은 반 평 남짓이었다. 안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은미는 수위실 책상에 수학 문제집을 펼쳐놓고 앉아 있었다. 시시한 문제였다. 매일 두 배로 늘어나는 연잎이 연못을 가득 채우는데 며칠이 걸릴까? 기하급수에 관한 이런 유형의 문제는 연잎으로도 토끼로도 세균으로도 만들 수 있었다. 거꾸로 하면 방사성 물질 반감기로도 비슷한 문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봤자 본질은 다 같았다. 이 문제집에 등장한 건 참신하게도 메뚜기였다. 이 정도 문제는 암산으로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은미는 차분히 연습장에 풀이과정을 적어 내려갔다. 풀이과정을 정확하게 남겨놓는 습관은 중요했다. 그래야 검산 과정에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계산 실수를 잡아낼 수 있었다.

 

8월 하순이었다. 불볕더위는 가셨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문을 열어둔 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선선했다. 두 시간만 버티면 저녁 여섯 시였고, 그러면 오빠와 교대였다. 외부인을 막기 위해 주민들 모두 돌아가며 경비를 서야 했다. 은미와 오빠는 부모님의 순번까지 맡아서 하는 중이었다. 부모님은 일을 하러 갔다.

 

여섯 시에 오빠가 나오면, 은미는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다. 오빠가 저녁을 해놓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다. 잘해봐야 라면 아니면 빵 쪼가리로 대충 때우고 나오겠지. 오빠는 고3이면서 공부도 안 하고, 달리 뭔가 하는 것도 없었다. 뭐라도 제대로 해보려는 낌새도 없었다. 은미는 달랐다. 앞으로 한 시간 안에 지금 풀고 있는 챕터의 연습문제를 모두 풀고, 그다음 한 시간 동안 영어 독해 공부를 해야 했다. 오빠와 교대하고 나면, 집으로 들어가 재빨리 저녁을 먹고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했다. 저녁은 콘플레이크로 대충 때울 생각이었다.

 

오늘도 부모님은 저녁 9시나 되어야 돌아올 게 틀림없었다. 도배일이라는 게 일거리가 일정하지가 않았다. 일이 있을 때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엄마와 아빠는 부부이자 동업자였다. 도배 기술자는 아빠였지만, 엄마도 못지않았다. 무엇보다 일감을 엄마가 따왔다.

 

문제풀이를 끝낸 은미는 손에서 샤프를 내려놓고, 잠시 눈꺼풀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계속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침침했다. 눈에 휴식을 줄 겸, 수위실에 난 작은 창 너머로 아파트 정문 바깥쪽을 내다보았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아파트 주변은 허허벌판이었다.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다고 땅을 평평하게 밀어놓긴 했지만, 2개 동만 짓고 공사가 멈췄다. 아파트 부지는 완만한 구릉지에 있었다. 큰길에서 아파트 정문으로 올라오는 좁은 도로 옆에 잡초가 무성했다. 주변에 인가도 없었다.

 

3년 안에 아파트 앞으로 왕복 8차선 도로가 난다는 말에 혹해 다들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은미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사이 군수가 바뀌었고, 도로 닦는 문제를 원점부터 재검토한다고 했다. 이 아파트가 금싸라기가 될 거라는 약속도 날아갔다. 그러다 건설사가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2개 동만 완공한 후 공사가 멈추었고, 건설사 측에서 한 채당 5천만 원을 할인해 미분양 물량을 일괄 정리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603호 법무사 아저씨 집에서 열린 대책회의에서 은미가 들은 이야기는 대충 그 정도였다.

 

엄마는 대책회의에 은미를 데리고 갔다. 겨우 고등학교 2학년이었지만, 엄마는 은미가 가야한다고 했다.

 

“너는 전교 1등이고 책도 많이 읽었으니까 따라와서 잠자코 한번 들어봐. 엄마가 듣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야. 그리고 구봉식인가 하는 그 양반, 법무사라더라. 들어두면 너도 배울 게 있을 거야.”

 

엄마와 아빠는 중졸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맞은 사기였다.

 

부모님이 처음 사기를 맞았을 때, 은미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 아빠는 며칠째 안방에서 술만 마셨고, 엄마는 쌀을 씻다가도 펑펑 울었다. 가족은 빌라에서 다시 셋방으로 이사했다. 부모님은 살아오면서 처음 가진 집을 은행에 빼앗겼고, 은미는 살아오면서 처음 가진 자기 방을 잃었다.

 

부모님은 독하게 일어섰다. 아빠와 엄마는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일을 다녔다. 3년 만에 다시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은미도 달라졌다. 시인을 꿈꾸는 마음 여린 열네 살 소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법조인을 꿈꾸는 전교 1등 공부벌레 윤은미가 있을 뿐.

 

은미는 아파트 정문 안쪽 앞마당에 사람 그림자가 비치는 걸 느꼈다. 고개를 돌려 열린 수위실 문을 통해 내다보니 103호 아저씨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103호는 은미네 집 바로 아랫집이었다.

 

103호 남자는 생김새로 봐서 누가 봐도 조폭이었는데, 혼자 사는 모양이었다. 무슨 사연으로 이 촌구석에 숨어 지내는지 모르지만, 은미는 내심 이 남자가 전과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혹은 전에 누군가를 죽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웃는 법이 없었다. 나이는 마흔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오른쪽 얼굴에 흉터가 있었다. 불에 그슬린 자국 비슷했는데, 오른쪽 팔에도 비슷한 흉터가 있었다. 103호 남자는 항상 조용했다. 워낙 말이 없으니 위층에서 쿵쿵거린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일도 없었다. 그건 좋았다.

 

은미네 윗집 303호는 비어있었다. 그래서 위에서 소음이 들려올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 아파트가 층간소음이 없는 아파트는 아닌 게 분명했다. 대책회의에 갔을 때, 603호 법무사 아저씨는 703호에서 너무 쿵쾅거린다고 주의를 주었다. 아파트는 전반적으로 부실시공이었다.

 

“선희 아버님, 가급적 집에서 뛰어다니지 말고 조심 좀 해달라는 거지, 우리끼리 싸우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다 건설사 때문이에요. 이놈의 왕보건설 새끼들은 아파트도 개떡같이 지어놨어요. 아무튼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까지 난다는 세상 아닙니까. 서로 조심해서 나쁠 것 없어요.”

 

구봉식 법무사는 703호 선희네 아빠에게 그렇게 말했다. 선희는 은미와 같은 반이었다. 하지만 전에 선희네 부모님을 본 적은 없었다. 대책회의 때 처음 보았다. 103호 남자를 본 것도 대책회의 때가 처음이었다.

 

천천히 걸어서 앞마당을 가로지르는 103호 남자를 은미는 곁눈질로 관찰했다. 남자는 양쪽 팔을 빙빙 돌리며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화단으로 가서 팔굽혀펴기를 열 번 했다. 자세는 훌륭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헬스 트레이너들이 강조하던 올곧은 자세였다. 나름 운동깨나 한 모양이었다.

 

팔굽혀펴기를 마친 남자는 숨이 차는지 양손을 옆구리에 대고 서서 잠시 심호흡했다. 그러다가 남자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미는 급히 얼굴을 책에 파묻었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뭐하니?”

 

수위실까지 걸어온 남자가 굵고 낮은 음성으로 물어왔다. 목소리는 자갈이 섞인 듯 거칠었다. 은미는 남자가 괜히 친한 척하는 게 어색했다. 첫 대책회의에서 은미는 남자와 사소한 언쟁을 했다. 은미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만, 한참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 대든 건 분명 버릇없는 짓이었다.

 

그날, 구봉식 법무사는 실력 행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유일한 반대자는 103호 남자였다.

 

“바리케이드 치고, 철조망 치고, 플래카드 붙이고, 아무튼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해요. 정 안 되면 우리 다 같이 정문 앞에 팔짱끼고 드러누워야 합니다. 이것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니까 이러는 거요.”

 

구봉식은 그렇게 열변을 토했다. 훌렁 벗겨진 정수리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다들 “옳소, 옳소.”를 외치는 가운데, 103호 남자 혼자 토를 달았다.

 

“그래도 법치국가에서 법대로 해야지, 맘대로 사람들 출입을 막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요.”

 

툭 던지듯 나온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구봉식은 발끈했다.

 

“법치국가가 뭡니까? 우리 같은 억울한 사람들을 법이 보호해 주는 것이 법치국가 아니오?”

 

사람들이 “맞아, 맞아.”하고 수군거렸다. 구봉식은 더 흥분했다.

 

“내가 법무사요. 법을 몰라서 이럽니까? 기존 분양자들이 아직 입주도 다 안 했는데, 5천만 원이나 할인해서 분양하면, 우리는 뭐가 됩니까? 이거는 완전 사기분양이야, 사기분양. 그런데 책임지는 놈은 하나도 없어. 지금 가만히 앉아서 5천만 원 날리게 된 거 아닙니까? 우리 지금 다 같은 처지잖아요. 안 그래요?”

 

사람들은 다시 “맞아, 맞아.”라고 말했다. 103호 남자는 구봉식의 말을 듣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뭐, 사기 당한 건 맞는 것 같아요. 병신 같이 내가 사기 당했지. 그래도 할인분양 받은 사람들이 이사 못 들어오게 막는 건 법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싶습니다. 잘은 몰라도 통행방해, 뭐 그런 거에 걸릴 거예요. 막말로 아파트에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때 은미를 욱하게 만든 말은 “병신 같이”라는 말이었다. 은미 부모님에게 하는 욕처럼 들렸다. “병신 같이 사기나 당하고…” 첫 번째 사기를 당한 후, 아빠가 안방에서 내내 술을 퍼마시며 혼자 중얼거린 말이었다.

 

“아저씨,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병신이라 사기당한 거예요? 건설사에서 100% 분양 되었다고 하고, 곧 도로도 난다고 하고, 그렇게 거짓말하니까 속아서 분양받은 거지. 우리가 병신이라 이렇게 된 거예요?”

 

교복 입은 여자아이의 당돌한 말에 둘러앉은 주민들 모두 은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남자와 은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603호 안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남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은미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무튼 난 빠질 테니, 알아서들 하세요.”</spa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