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찾기

  • 장르: 호러 | 태그: #미씽아카이브 #분노조절
  • 분량: 82매
  • 소개: 최근 출판된 미씽 아카이브 모음집 [야간 자유 괴담]에 수록된 단편입니다. 판매 중인 작품이라 부득이하게 유료로 공개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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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 의식은 다른 세상에 있는 영혼과 대화를 하기 위한 실제 과정으로써 의식을 치르기 전 전문가와 상담을 마친 후 정확한 순서와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절차 및 순서가 어긋났을 경우 바로 의식을 중단하고 다시는 의식을 시도하면 안 된다.#

#1. 의식은 반드시 새벽 1시 30분에 시작할 것#

자습실의 온풍기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이 책상과 벽을 스치며 스스슥 하는 소리를 냈다. 조심성 없는 누군가의 옷소매에 달린 단추가 책상에 끌리는 소리가 연주의 귀를 사정없이 긁었다.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도 아까운 고2의 겨울을 맞은 서연주에겐 공기의 진동조차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침묵의 공간이 필요했다. 사립 S고등학교는 올해 초부터 학생들의 독서실 이용을 금지하는 대신 교내 자습실의 숫자를 대폭 늘렸다. 최근 들어 신경이 더욱 예민해진 연주는 스터디 카페보다 시설이 열악한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자습실 곳곳을 건드리고 다니는 바람 소리에 일부러 힘을 줘서 볼펜을 책상 바닥에 긁는 소리까지 섞여서 연주의 말라비틀어진 머릿속을 고무공처럼 튀어 다녔다.

그녀는 언젠가 학원 열람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볼펜으로 목덜미를 내리치는 대신 가방에서 무선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종소리가 수십 마리의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연주의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켜 주었다.

서른 개 정도의 책상이 놓인 자습실은 이제 열 개 정도만 사용할 수 있고 그나마 이용하는 학생은 서너 명뿐이었는데, 연주에겐 그 사람들이 마치 자신의 공부를 방해하기 위해 지옥에서 불려 나온 악마들 같았다. 왠지 냄새를 풍길 것 같은 남학생의 면도 안 한 턱도 싫었고 5분에 한 번은 연주를 흘깃거리는 1학년 여자애도 꼴 보기 싫었다. 가장 짜증 나는 건 대각선으로 세 칸 정도 떨어진 자리에 앉은 아이였다. 슬쩍 보이는 교복 재킷을 보면 연주와 같은 학년 같은데, 연주가 독서실에 들어왔던 7시부터 10시까지 화장실에 가지 않는 건 물론 다리 한 번 떨지 않았다.

‘존나 독한 년이네. 저런 정신력이면 집에서 하지 학교는 왜 와서 신경을 긁고 지랄이야?’

책상 위에는 연주가 오늘 답을 내야만 하는 글자와 숫자들이 날벌레처럼 맴돌고 있었다. 그러나 연주에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았다.

아주 가끔 그럴 때가 있는데,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 들면서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종로 일타 강사라는 사람이 추천해 준 범종 소리 연속 재생의 효과도 잠시뿐, 지금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자리에 더 앉아 있으면 움직이는 지뢰처럼 누군가를 붙잡고 함께 터져 버릴 것만 같아서 연주는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주가 앉았던 의자가 바닥에 끌리면서 부욱 하고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싸가지가 없어 보이는 1학년 여자애와 지저분한 얼굴의 남학생이 연주에게 짜증과 질책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대각선의 여학생은 그 와중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연주는 그녀의 정수리에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었지만, 문은 반대편에 있었다. 연주는 자신이 범접하기 힘든 정신력의 소유자에게 마지막까지 저주의 말을 남기며 문을 열었다.

‘잘났다 이년아, 혼자 서울대 가라.’

호기롭게 뛰쳐나오긴 했는데 막상 갈 곳이 없었다. 편의점엔 이상한 얼굴의 사람들이 먼저 자리를 잡은 채 죽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술 취한 아저씨들이 보내는 끈적한 눈빛도 무서웠다.

자습실 앞 복도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연주는 핸드폰의 남은 배터리를 확인한 뒤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두 시간 정도만 여기서 개기다 들어가면 엄마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도 내일은 토요일이었다.

연주는 집 밖에서 화장실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학교 자습실의 화장실은 예외였다. 밝고 깨끗하고 조용하며 무엇보다 사람이 없었다.

세면대의 거울에 비친 화장실 벽의 하얀 타일이 오늘따라 더욱 선명한 빛을 뿜어내는 것이 마치 수술실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아무 칸에나 들어간 연주는 인터넷에 떠도는 웃긴 이야기와 좋아하는 가수의 새로운 가십 기사를 읽고, 반 친구들의 단톡방에도 들어가 보았다. 올빼미 같은 친구들이 오늘따라 모두 일찍 잠들었는지 10시 이후엔 새 글이 없었다. 지루함을 못 참고 하품을 하던 연주는 갑자기 요란하게 벨이 울려서 핸드폰을 화장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화면을 보니 학원에서 알게 된 권준영이라는 남자애였다. 내성적이고 재미는 없지만 보는 맛은 있는 잘생긴 녀석이었다.

“이 시간에 잠이나 잘 것이지 웬 전화질이야? 놀라서 화장실 바닥에 폰 떨어뜨렸잖아.”

「미안, 놀랐어? 자려고 하는데 그냥 네 생각이 나서.」

이거 전형적인 고백 멘트 아니야? 연주는 갑자기 빨라진 심장 박동 때문에 숨이 찰 지경이었다. 시작부터 강한 멘트를 날린 사람답지 않게 준영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연주야, 예전에 민지인가 하는 애가 알려 준 거 있잖아. 너 해 봤어?」

“그게 뭐였지? 요즘 시험 공부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기억이 안 나네.”

「걔가 그랬잖아. ‘저세상에 있는 사람하고 얘기하는 방법’이라고…….」

그런 일이 있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딱히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얘기였다. 그래도 준영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서 머리를 쥐어짜 보니 언젠가 학원에서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 같았다.

그 애가 민지였나? 연주는 주변인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었다. 연주의 엄마는 자신에게 도움이 될 사람을 찾으려면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걸 항상 강조했다. 유명 외고에 떨어지고 아빠의 지인 소개로 겨우 들어간 사립고나 지금 다니는 학원에는 연주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연주에게 TV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고 인스타 팔로워가 100만 명이나 되는 유명 대학의 교육학 교수인 엄마의 말은 절대적 진리였다.

엄마의 말처럼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부모와 학교생활에 대한 불만과 짜증만 가득해서 자신의 입시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단 한 명 예외가 있다면 바로 권준영이었다. 말수는 적지만 잘 웃고 연주의 끝없는 불평도 아무 말 없이 들어 주는 차분한 아이였는데, 오늘 그의 목소리에는 차분함을 넘어선 건조함이 느껴졌다. 그답지 않은 태도에 불안해진 연주는 준영이 말한 그것을 기억해 보려고 애를 썼다.

“잠깐만, 나도 기억날 것 같애. 민지가 아니라 지민이 아니었나? 작년에 나 과탐 쪽지 시험 망치고 펑펑 운 날 했던 얘기 맞지?”

「기억하는구나. 그때 걔가 그랬어. 죽은 사람을 여기로 불러오는 의식이 있다고.」

“그랬지. 그런데…….”

그걸 얘기했던 애는 민지가 아니라 지민이고 그 ‘의식’도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과 메신저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둘 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점에서는 별 다를 게 없지만.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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