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을 이야기

  • 장르: 판타지, SF | 태그: #코로나 #판타지 #평행우주 #차원의중첩 #차원이동 #아포칼립스 #위드코로나 #구원 #타임루프 #초능력
  • 평점×10 | 분량: 129매
  • 소개: <코로나 시대의 낙석동> 마지막화 [두 마을 이야기]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우리의 낙석동 그리고 팬데믹으로 아포칼립스를 맞은, 또 하나의 낙석동. 오늘 두 개의 ... 더보기

두 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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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치캔 두 개와 귀리쌀 반 봉지, 벌레가 끓기 시작한 메밀전분 한 봉지가 전부였다. 물을 잔뜩 붓고 죽을 끓인다 해도 일주일을 버티기 힘든 양이었다. 찬우는 마룻바닥에 잠들어 있는 찬규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지하 벙커의 매트리스에 재웠는데 새벽에 마루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형이 자기만 두고 떠나 버릴까 봐 녀석은 늘 겁을 내었다.

찬규는 아빠와 엄마가 차례로 자기를 두고 떠났다고 믿고 있었다. 사냥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않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에 녀석은 너무 어렸다. 그저 미운 일곱 살이었고, 지난주에 찬우 손으로 흔들리는 앞니를 뽑아준 터였다.

엄마 아빠는 왜 우릴 버렸느냐고 엄마도 밉고 아빠도 밉다고 녀석이 심통을 부릴 때면 찬우도 곧이곧대로 말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열두 살 찬우는 미움과 원망이 생을 지탱하게 만드는 연료라는 걸 알고 있었다. 슬픔과 절망은 사람을 절뚝이게 만들지만 거기에 미움이 더해지면 다시 장단지에 힘이 차올랐다. 미워하다 보면 미워서라도 살아지게 돼 있었다. 열한 살 겨울에는 찬우도 그랬으니까.

열두 살이 되고부터는 미움마저 사라져버렸다. 무엇을 얼마만큼 확보해야 며칠을 버틸 수 있는지, 추측과 셈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참치를 넣은 메밀죽을 끓여놓고 찬우는 동생을 깨웠다.
“이봐, 멋쟁이, 일어나. 밥 먹어야지.”
식탁에는 죽그릇이 하나밖에 없었고, 그걸 눈치 못 챌 찬규가 아니었다.
“형은 왜 안 먹어? 어디 가려고?”
“사냥을 좀 다녀와야겠어. 곧 겨울이잖아. 먹을 거랑 연료를 비축해 놔야지. 겨울에는 사냥을 나갈 수 없다는 거 너도 알지?”
“당연히 알지. 눈밭에 발자국이 남으면 안 되잖아.”
“맞아. 그러니까 눈이 오기 전에 부지런히 사냥을 해야 돼.”

“나도 따라가면 안 돼?”
“안 돼. 열한 살 되면 그때 데리고 다닐게. 형도 열 살부터 사냥을 나갔잖아.”
열한 살 겨울에 엄마가 사라졌고, 그때부터 찬우가 사냥을 도맡아 온 터였다.
“그럼 사냥은 안 하고 조용히 따라만 다닐게.”
“바보야. 바깥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코로나 바이러스라도 감염되면 그땐 어쩌려고? 형은 몸집이 커서 괜찮지만 너 같은 꼬마들은 거의 다 죽어. 특히 앞니가 뿡뿡 빠져버린 꼬마들한테는 바이러스가 더 치명적이래.”
마지막 말은 농이란 걸 알면서도 찬규는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그래도 더는 떼를 쓰지 않고 메밀죽을 떠먹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철없이 덤빌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몇 해 전에 갑자기 세상을 덮친 팬데믹으로 사람들 셋 중 둘이 죽어나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인류의 3분의 2를 몰살시킨 팬데믹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었다. 생존자들 가운데 부유층은 안전지대로 대피하였고 도시는 감염자들과 함께 버려졌다. 거리는 시체로 뒤덮였고 남은 사람들은 도시의 남은 물자를 차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사람들은 생존경쟁이란 말 대신 사냥이라는 은어를 썼는데 찬우는 도시의 거리가 무시무시한 약탈과 학살의 공간으로 바뀌어 버린 것도 그 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사냥은…… 힘센 짐승이 약한 짐승을 먹이로 잡는다는 뜻이니까.

“형아, 사냥하다가 누가 덤비면 그냥 죽여 버려!”
운동화 끈을 조이는 형에게 찬규가 일렀다. 찬우는 동생을 잠시 보다가 다시 끈을 묶었다. 누가 덤비면 죽이라는 말은 엄마가 아빠한테 하던 말이었다. 아빠가 사라지고 엄마가 사냥을 나갈 땐 찬우가 그리 당부했었고, 이젠 그 말을 일곱 살짜리가 물려받은 것이었다.
앞니가 빠진 어린애가 입에 담기에는 거친 말이라는 걸 알지만 찬우는 동생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고, 언젠가는 찬규도 스스로 사냥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못 돌아오면 말이야.

“형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음식은 조금씩 나눠서 먹고, 잠은 꼭 벙커에 내려가서 자고, 누가 문 두드려도 절대 열어주지 않기. 혹시 누가 문을 부수고 들어오면 벙커 비밀 문으로 나가서 뒷산 굴에 숨어 있기.”
“맞아. 역시 멋쟁이야, 넌!”
찬우는 주먹으로 동생의 작은 주먹을 콩 때려주고는 집을 나섰다.

2
어디에 음식과 연료가 많이 있는지는 찬우도 알고 있었다. 옛날 낙석슈퍼와 편의점이 있는 상가골목. 문제는 그 일대에 마테체를 든 사냥꾼들이 깔려 있다는 점이었다. 찬우의 무기는 부엌칼에 작대기를 덧대어 청테이프로 둘둘 감은 창이었다. 칼날을 늘 갈아놓긴 하지만 마테체를 상대하기에는 약했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낙석고등학교 앞쪽의 빌라촌을 뒤지는 수밖에 없었다. 거긴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에 어린애를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 주로 살았던 곳이라 잘 뒤지면 분유 같은 걸 찾을 수가 있었다. 유통기한이야 지났겠지만 어차피 끓여먹을 거니까 상관없었다.
찬우는 창을 꽉 틀어쥐고서 몸을 숙인 채 샛강 쪽으로 이동했다. 이따금 차 소리가 나면 길가 풀밭에 엎드려서 차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차가 지나갔다고 성급하게 몸을 일으켰다간 사냥꾼들이 되돌아올지도 몰랐다. 친구 윤빈이의 죽음으로 배운 교훈이었다.

차를 서너 대 피하느라 평소보다 속도가 느렸다. 찬우는 조바심이 났지만 속도를 내겠다고 몸을 곧게 세우는 짓은 하지 않았다. 낙석동은 원래 고층건물이 많은 동네여서 찻길과 인도를 감시하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들 중에는 쇠구슬 총을 가진 놈들도 있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서윤이 누나도 쇠구슬 총에 맞아 죽었다.
길을 뒤덮었던 넝쿨 식물들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인도 쪽의 엄폐물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이대로라면 다음 주쯤엔 사냥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칡과 박주가리가 어지럽게 얽힌 데를 지날 때였다.
어디선가 짭조름하면서도 구수한 냄새가 날아왔다. 찬우도 아는 향이었다. 참기름과 진간장을 넣은 간장비빔밥 냄새였다. 간장비빔밥은 찬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였다.
뒷길 주변의 어딘가에 아침 겸 점심 메뉴로 간장비빔밥을 고른 생존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찬우는 창의 자루를 꽉 틀어쥐었다. 한 번도 생존자에게서 뭔가를 빼앗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찬우는 열두 살이었고, 일곱 살짜리 동생을 키우는 형이었고, 이번 가을과 겨울이 지나면 열세 살이었다. 이제 찬우도 사냥 방식을 바꿀 때가 된 것이다.

찬우는 샛강 쪽으로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뒷길의 다세대촌을 수색하기로 했다. 냄새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찬우는 참기름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때의 바람을 기억해냈다. 서쪽 샛골목을 훑고 온 바람이었다.
샛길로 접어든 찬우는 다세대 건물의 출입구를 살폈다. 널빤지나 쇠창살로 대문과 담이 꽉 막혀 있는 집일수록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침입 경로를 모조리 폐쇄해놓고 본인들은 그때그때 옥상에서 골목으로 줄사다리를 내려 이동하는 것이었다.

안쪽으로 갈수록 골목은 좁아졌고, 가끔씩 막다른 곳이 나와서 찬우를 놀라게 했다. 이 시국에 절대 발을 디디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면 바로 외길이었다. 외길은 본래 큰 짐승이 작은 짐승을 몰아넣는 함정이니까. 바람에 희석되어 차차 희미해지던 참기름 냄새가 철제 대문이 안쪽으로 약간 열려 있는 집 앞에서 다시 짙어졌다.

찬우는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숲속에 과자로 오두막을 지어놓고 아이들을 꾀는 게 누구였는지 그 안으로 발을 디딘 헨젤과 그레텔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잘 아는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냥의 시대였다. 이 세상에 훔치지 못할 것이나 빼앗지 못할 것이란 없었다. 찬우는 침을 눌러 삼킨 뒤 대문 안으로 발을 디뎠다.

현관문 손잡이를 쥐려는데 건물 안쪽 어디선가 왁자한 인기척이 들렸다. 걸걸하게 웃어젖히는 성인남자들 목소리였다. 찬우는 입을 틀어막았다. 하나쯤이면 창으로 어떻게 해 보겠지만 아저씨들 여럿을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그제야 찬우는 대문이 열려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저들은 오늘 이곳을 점령하고 전리품으로 배를 채우는 중이었다. 문을 잠그지 않은 것은 저들이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었다. 머릿수가 많거나 쇠구슬 총을 가지고 있다거나…….

찬우는 발소리를 죽여 가며 그 집을 도로 빠져나왔다. 실수로 뭐를 건드린다거나 비명을 내지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조심성이 많은 사냥꾼도 운이 나쁘면 일이 틀어지는 법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옥상에 올라가서 오줌을 갈기던 사냥꾼 하나가 막 골목을 빠져나가는 찬우를 발견한 것이었다.
“야, 야, 야! 저기 애다, 잡아!”
남자가 소리치자 집 안에서 다른 놈들이 튀어나왔다.
다시 인도 쪽으로 빠져나온 찬우는 샛강을 등지고 달렸다. 샛강으로 가는 길에는 시든 넝쿨식물 말고는 몸을 숨길 데가 없었던 것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냥꾼들은 피할 수 있었으나 찬우를 목격해버린 놈들 앞에선 넝쿨식물도 엄폐물 구실을 하지 못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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