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환영

  • 장르: 호러, 일반
  • 분량: 59매
  • 소개: 영매 서점 4편입니다. 엑소시즘 오브 권슬. 더보기

변신,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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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는 횡설수설하면서 작년 말부터 올해 초부터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딱 용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 시기가 맞물렸다.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술을 마시던 때와도 같았다. 그때는 자기가 딱 죽을 거 같아서 가족들도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대외적으로는 교통사고로 알려졌던 정현이가 실은 학교폭력 때문에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 전에도 정현이는 부모님이 이혼하고 재혼하는 과정에서 점점 엇나갔는데, 무서운 말이나 욕을 해서 다른 아이들을 겁주고 도망치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도망가면 나뭇가지나 자 같은 걸 가지고 다니면서 찌르고 때렸다. 결국 초등학교 때 학폭까지 열리고 징계도 먹었는데, 그 뒤로도 그런 성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오자 판도가 바뀌었다. 거슬린다는 이유로 같은 반 남자아이 둘이 정현이에게 자신들의 숙제를 시키고 게임 캐릭터를 키우게 했다. 정현이는 결국 매일 잠도 잘 못자고 걔네들의 숙제를 하고 게임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집 비밀번호까지 알아내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집 안의 음식을 다 먹고,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았다. 맞벌이인 부모님에게 이르는 순간에 단톡방에 공개할 거라면서 알몸 사진이나 개 목줄을 하고 개처럼 기어 다니는 등의 굴욕 사진도 여러 장 찍혔다고 했다.

 

정현이는 결국 15층인 자신의 집에서 뛰어내렸다. 끔찍한 이야기였지만 용현은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슬이랑 무슨 상관인 거야?”

 

윤이는 숨을 들이마시더니 말했다.

 

“걔네 둘이랑 정현이랑 처음 알게 된 게 코노였대. 학기 초반이라 서로 다 잘 모르는 사이라 걔들이 그냥 같은 반이니까 정현이랑 슬이보고 가자고 했대. 근데 슬이는 그때 서점 구경 간다고 안 갔고.”

 

슬이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등 환타지 소설 마니아였고, 뭐 재미난 신간이 있나 틈만 나면 서점을 기웃거렸다. 음치인 녀석에게는 코인노래방보다 분명 매력적인 오락거리였을 터였다. 그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용현이 말했다.

 

“그래서?”

 

“그때 걔네들이 정현이한테 욕 몇 마디 듣고 그 뒤로 괴롭히게 됐대. 그러니까 정현이는 슬이만 보면 다 네 탓이라고 그랬고. 슬이는 뭔 소리냐, 아니라고 하다가 점점 그 말에 발목 잡혀서는 정현이가 결국 그렇게 되니까 자기 굴속으로 들어가 버린 거고.”

 

그렇게 된 건가. 용현은 언뜻 납득하기가 힘들었다. 학폭 이야기가 나와서 가슴이 철렁 했지만 슬이가 가해자도 아니고 피해자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방관자 정도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방관했다는 이유로 심한 우울증이 올 정도로 아들이 그렇게 투명한 양심을 가진 아이였던가. 아무리 정현이가 볼 때마다 네 탓이라고 했다고 해도? 용현은 왠지 슬이가 잘못 걸렸다거나 운이 없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서 윤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동생이 저 정도로 반응하는 게 이해가 되냐?”

 

윤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실은 나도 이해가 잘 안 돼. 저건 반응이 아니라, 뭔가 당한 거야. 그냥 슬이는 운이 없었을 뿐이야.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고, 그런 일이 일어날 줄도 몰랐고, 그 일을 한 것도 아니잖아. 근데 왜 정현이가 저렇게 죽어서도 들러붙어 있나 이해가 안 돼. 그냥 아무나 원망할 사람이 필요한 거 아닐까?”

 

용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두 가지 이유로 철렁했다. 한 가지는 당연히 슬이에게 정현이의 귀신이 들러붙어 있다는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그걸 윤이가 어떻게 알고 있냐는 것이었다. 저번에도 가장 먼저 꼬맹이 귀신을 본 것도 윤이였지. 뭔가 촉이 그쪽으로 발달한 건가. 여자들은 감이 좋다고 하니까. 자기 아이지만 커갈수록 점점 자신이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용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너, 혹시… 뭔가 남다른 걸 보는 거니?”

 

윤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요즘 그냥 슬이 보면 애 주변이 왜 이렇게 어두워 보이나 했는데, 아까 폴라로이드 사진 보니까 확실히 알겠더라. 뒤에 뭐 이렇게 시꺼먼 게 붙어있나 첨엔 기겁했는데 자세히 보니 정현이던데. 자, 봐봐.”

 

윤이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폴라로이드 사진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까는 그저 까만 타르 덩어리처럼 보였던 것이 조금 더 형체를 갖춘 것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하얀 눈과 입처럼 생긴 것이 보였다. 이게, 정현이? 유치원 때 이후로는 본 적이 없어 알아볼 수가 없었다.

 

용현은 하, 하고 파마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슬이 우울증인 줄 알고 정신과 갔었어. 의사는 검사하고 약물치료 하자고 하고. 근데 그럼 이건 의학적인 문제가 아닌 거지? 지금 귀신이 들러붙어 있다는 거잖아? 그것도 딱 보기에도 상태 안 좋은.”

 

윤이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용현이 말했다.

 

“이제 어쩌지?”

 

그때 윤이가 용현에게 하얀 종이를 내밀었다. A6사이즈의 종이에는 까만 보석 상자 속에서 하얀 유령이 나오는 그림과 함께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내 마음 속의 보석 상자’

 

– 국내 최초 육체적 영매 서점!

 

– 변신, 환영, 오토매틱 라이팅, 채널링, 엑토플라즘 가능.

 

– 지박령(地縛靈) 인도 가능.

 

– 1:1 리딩 가능.

 

– 교령회(交靈會) 가능.

 

– 반려 귀신도 추천해드립니다^^

 

 

 

윤이가 네 번째 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현이 말이야, 이거 아닐까?”

 

용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뭐부터 말해야 할까 고민했다. 일단 이걸 어디서 얻었는지는 대충 감이 왔다. 보나마나 <두근두근 그와 나의 신점(神占)> 어딘가에 꽂혀 있었겠지. 책자 안에 홍보물을 넣는 건 출판사에서도 자주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 내용은? 지박령은 또 뭔가? 용현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 윤이가 말했다.

 

“내가 찾아봤는데, 지박령이란 건 원한이나 미련이 남아있어서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이라는데. 정현이가 딱 그거 아닐까? 근데 왜 자기 괴롭힌 애들한테 안 가고 슬이한테 붙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용현은 흐음, 하면서 팔짱을 꼈다. 또 거기다. 영매 책방. 홍보 책자의 변신 항목을 보니 여자로 변한 사진은 이해가 갔지만 지난번의 아야나미 레이는 아직도 소화 불가였다. 덕후 영매도 있다니 금시초문이었다. 이번에 가면 또 어쩌고 있으려나. 용현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벌써 또 갈 생각을 하고 있어. 그곳과의 인연은 악연인 건가, 뭔가. 용현은 초조하게 다리를 달달 떨었다. 윤이가 빨간 안경 너머 아빠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가 말했다.

 

“같이 가도 돼?”

 

“어? 어딜?”

 

“여기. 내 마음의 보석 상자.”

 

용현은 헛기침을 했다. 용현은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말했다.

 

“잠깐, 윤아. 우리 정리 좀 해 보자. 네 이야기는 잘 들었어. 귀신이 보인다는 것도 알겠고. 근데 우리 좀 더 과학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닐까? 지금 21세기에 여기 이곳에서 지박령이니 영매니, 그런 것보다는 정신과에 가서 우울증 약을 먹는 게 더 합리적인 거 아닐까?”

 

용현도 우울증이 쉽게 낫는 병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용현이 말했다.

 

“바로 효과는 안 나겠지만 차근차근 치료하다 보면 나을 거야.”

 

윤이는 가만히 사진을 보다가 말했다.

 

“아빠, 나 이때까지 아무한테도 말 안했는데 나는 남들하고 좀 다른 게 보여.”

 

용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영매 서점에 다녀온 이후로 윤이의 남다른 점을 몇 가지 깨닫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용현이 말했다.

 

“어떤?”

 

윤이가 말했다.

 

“나한테는 그 사람의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그 사람의 색깔 그런 게 보여. 색깔은 다양해. 거의 무지개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드물게 흰 색이랑 검은 색도 보여. 아무튼 그 색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거의 알아. 근데 말야, 내가 본 검은색 기운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 못 가서 거의 다….”

 

윤이는 안경 속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말했다.

 

“죽더라. 그것도 곧.”

 

아들이 죽는다. 그건 용현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지금 윤이의 말을 검증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나. 일단 정신과에 가보는 시도는 했으니, 두 번째 시도를 해 볼까. 용현은 영매 서점 홍보지 마지막 줄에 적힌 휴대폰 번호를 보았다. 용현이 말했다.

 

“알았어.”

 

그는 휴대폰으로 영매 서점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두 번 가고,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네, 내 마음의 보석상자입니다.”

 

들을 때마다 살짝 오그라드는 이름이었지만 지금 자신은 더 이상한 걸 물어봐야 했다. 용현이 말했다.

 

“아, 저 실례합니다. 며칠 전에 책 사간 사람인데요, 안에 홍보물을 봤어요. 혹시… 지박령 인도가 가능하신가 해서요.”

 

말했다. 일단 말했다. 용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렸다. 영매 서점 주인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고 대답했다.

 

“언제 서점으로 오실 수 있으신가요?”

 

하아, 이번에도 가야 하는 구나. 이 서점과의 인연은 대체 언제까지. 아니다. 아들의 일이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다. 용현이 말했다.

 

“지금, 아니 10분 뒤에요.”

 

차를 몰고 가면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었다. 서점 주인이 말했다.

 

“30분 뒤에 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용현은 윤이를 보았다. 용현이 말했다.

 

“서점으로 오래. 넌 잠깐 집에 혼자 있어.”

 

“나도 갈래.”

 

“엉?”

 

윤이가 말했다.

 

“슬이 일이잖아. 나도 갈래. 게다가 좀 궁금하기도 하고.”

 

“뭐가?”

 

윤이가 빙긋 웃었다.

 

“영매라니, 신기해서.”

 

아, 뭐 그럴 수도 있었다. 자신은 신기하기보다는 무섭고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지만. 하지만 곧바로 아야나미 레이가 떠오르며 기분이 나빠졌다. 그런 자를 믿을 수가 있을까. 그렇지만 윤이의 말은 그냥 흘려 넘길 수 없었고, 사정을 잘 아는 딸을 데려가는 게 어쩌면 도움이 될 지도 몰랐다. 용현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윤이에게 말했다.

 

“그래. 가자.”

 

“정말? 신난다!”

 

“어이, 지금 놀러가는 거 아니거든요?”

 

윤이는 혀를 살짝 내밀었다. 용현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용현의 흰색 지프 차 뒷좌석에 아직도 잠든 슬이를 싣고 영매 서점으로 갔다. 주변이 황량해서 그냥 가게 앞에 대도 될 것 같았다. 주차를 하고 슬이를 부축해서 내리자 윤이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참, 근데 엄마한테는 안 알려도 되나?”

 

맞다. 일이 묘하게 빨리 돌아가는 바람에 아내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용현은 아직도 이 상황을 크게 진지하게 여기고 있지 않았다. 모두 윤이의 말만 믿고 왔기 때문이었다. 슬이가 겪은 일도, 슬이 뒤에 붙었다는 정현이도. 아. 단, 사진만은 그도 그냥 넘길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 걸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는데, 도대체 설명이 불가능하기 찝찝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와봤다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아내에게 한다면 아내도 동의해줄까? 요즘 아내는 너무 바빠 대화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럴 땐 자식을 이용하는 게 최선이었다. 용현이 말했다.

 

“네가 전화 좀 해라.”

 

“알았어.”

 

셋이 안으로 들어서자, 서점 주인이 카운터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맞았다. 용현이 처음 본 날처럼 모노톤의 옷을 입은 20대 중반의 남성처럼 보였다. 용현은 내심 안도했다. 윤이는 주인을 보더니 말했다.

 

“안녕하세요.”

 

주인도 살짝 목례를 하더니 말했다.

 

“지박령이 따라다니는 분이 이 분인가요?”

 

용현이 부축하고 있는 슬이를 가리키며 주인이 말했다.

 

역시 영매는 영매인가. 용현이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은 위쪽으로 향하는 계단을 가리키더니 말했다.

 

“그럼 이쪽으로.”

 

주인이 앞서고 그들 셋은 그를 따라 갔다. 뒤따르며 윤이가 슬이를 함께 부축하면서 용현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이 주인이야? 이름이 뭐야?”

 

“몰라.”

 

아직 이름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서점에 세 번이나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

 

 

 

다 올라가자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통유리가 있고 아래처럼 하얗게 칠해진,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아, 구석에 접이식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있기는 했다. 그것들 역시 희어서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뭐하는 공간이지? 용현이 말했다.

 

“저어, 여기서 지박령을 인도하는 건가요?”

 

주인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일단 그 분은 지금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로 잠식당한 거 같으니, 바닥에 눕혀놓으세요.”

 

잠식당했다고? 용현은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대꾸했다.

 

“아, 네.”

 

“두 분은 저기 의자에 가셔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