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벌 받는다

천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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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IT PANG] 카테고리 > 결혼/시댁/친정

제목: 제가 도리를 모르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곳 분들이 조언 잘해주신다고 들어서 써봅니다. 휴대폰으로 쓰는 거라 맞춤법 틀리거나 오타가 좀 있어도 양해해주세요.

 

저는 일곱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는 고등학교 때 사고로 돌아가셔서 동생이랑 둘이 살았어요. 중학교 때까지 아빠가 중국에서 사업을 하셔서 중국어를 할 수 있어요. 덕분에 언어 특기로 대학도 가고 전공 살려서 대기업까지는 아니지만 탄탄한 중견기업에서 일했습니다.

 

과거형인 이유는 제가 스트레스로 피부가 완전히 망가져서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이에요. 사람 상대하고 대화하는 게 일인데 얼굴이 심하게 울긋불긋하니 자신감도 없고 일도 버벅대게 되더라고요. 저도 제 얼굴이 너무 끔찍한데 보는 사람들마다 선의든 아니든 지적을 하고 한마디씩 얹으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결정적으로 팀장이 ‘육아휴직 내려고 버티는 거냐’고 물어서 홧김에 나와버렸어요. 어리석었죠. 나이 들어서 다시 취업하기 얼마나 힘든 줄 모르고.

 

저는 올해 서른여섯이에요. 5년 전에 결혼했고 아직 아이는 없어요. 가난한 집 남자여서 직장 생활하며 번 돈을 다 집 생활비로 써버렸더라고요. 그래도 사람은 착하고 제가 모은 게 많아서 괜찮았어요. 저 진짜 한 푼도 안 쓰고 국내 여행조차 안가고 변변한 옷이나 가방 하나 없이 버는 대로 모았거든요. 조금 과감하게 떼서 주식에도 넣었는데 이게 꽤 괜찮았어요. 덕분에 결혼 준비도 빚 없이 제가 다 했고, 얼마 전에 운 좋게 변두리에 집 사서 대출 갚는 중이에요.

 

배경 이야기가 왜 이렇게 길었냐 하면요, 결혼 전에는 ‘고아라도 괜찮다’ ‘애가 야무지고 좋다’ ‘형님이라고 하지 말고 언니라고 불러라. 우리 그렇게 꽉 막힌 사람들 아니다’라고 하던 시모와 시누이가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에요. 아, 시아버지도 계셨는데 그때는 아무 존재감이 없으셨어요.

 

결혼한 해에 바로 추석이 있었는데, 저는 제 나름대로 열심히 일도 도와드리고 시누이 남편(아주버님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아요)이 밥 먹고 안방 들어가서 자는 동안 먹은 거 치우고 그랬거든요. 고까운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저는 십 대 때부터 여자들이 그런 낡은 제도에 매여서 노예처럼 순종하며 사는 데 강한 반감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내가 나눠서 하면 시어머니가 고생 덜하고 좋지, 하고 좋게 생각했어요. 시누이요? 밥 먹기 전까지도 시가에 있다가 밥 먹고 나서도 다시 시가로 갔어요. 아이들에게 ‘이것도 다 교육이야’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서요. 무엇이 교육일까요? 자기 어머니는 손에 물 마를 일 없이 애들 봐주고 명절 음식까지 거둬 먹이는데 친딸은 시가에서 효부 소리 듣는 거요? 시누이 부부가 아들밖에 없는 건 차라리 다행일까요?

 

추석 다음은 설이 오죠. 사달이 난 건, 다음 해 구정이었어요. 저희 집은 아빠가 종교도 없었고 제사 같은 것도 다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셨기 때문에 매해 명절에는 엄마 사진 펴놓고 셋이서 평소처럼 밥 해 먹고 보드게임하고 그렇게 지냈어요. 첫 추석에도 시가에 당일에 갔었기 때문에 설에도 당일에 가려고 남편이랑 얘기를 했어요. 남편은 순해요. 제가 하자는 대로 하고 명절에 먹지도 않을 음식 잔뜩 하다가 병나는 여자들 이야기를 안타까워해요. 저는 그래서 이렇게 해도 괜찮을 줄 알았어요.

 

음력 설 바로 전날 밤에 시누이한테서 제 폰으로 전화가 왔어요. 어디냐고 묻기에 집이라고 했어요. 제 동생 불러다 저녁 같이 먹고 남편이랑 둘이 쉬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다짜고짜 야 이 썅년아! 하고 소리치는 거예요. 저는 진짜로 태어나서 그런 욕 처음 듣거든요. 사람들하고 큰 소리 내면서 싸워본 적도 없는데 가만히 있다가 욕먹으니까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미리미리 가서 음식하고 하룻밤 자는 예절 같은 거는 배운 게 없어? 너 우리 엄마가 너네 먹이려고 혼자 전 부치고 있는 거 진짜 몰라서 그래? 아는데도 모른 척 주둥이 다물고 있는 거야?”

 

바보 같았어요. 받아칠 말이 없는 게 아니었는데 도저히 떨려서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소리는 안 냈지만 제가 우니까 남편이 무슨 일이냐며 대신 받았는데 전화기 너머로 쩌렁쩌렁하게 소리가 울렸어요.

 

“며느리 도리를 모르는 년한테는 내가 교육을 시켜야지!”

 

남편은 착하다고 했잖아요. 누나 그러지 마, 말 왜 그렇게 해, 진정해, 좋게 달래기만 하는데 잔뜩 골이 난 상대가 굽힐 리 있나요. 저는 남편이 전화기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갈 때 얼른 따라 나갔어요. 대꾸는 못 해도 무슨 말 하는지는 똑똑하게 들어두고 싶었어요. 화가 나서 목소리가 큰 덕에 선명하게 다 들리더라고요. 남편도 놀라서 소리를 낮출 생각을 못 했던 것 같아요.

 

“신혼여행 선물도 싸구려 들고 와서 내밀 때 내가 알아봤어.”

 

“매형은 왜? 야! 남자랑은 다르지! 남자는 그래도 돼, 원래!”

 

“너희는 대체 아는 게 뭐니? 진짜 뭘 모른다, 둘 다.”

 

“본 데 없고 배운 데 없어서 그래?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전통이라는 게 있잖아? 너도 나이가 있는데 아직도 몰라 그걸?”

 

“근본 없는 인간 못 쓴다는 주변 말 틀린 거 진짜 없다. 나는 정말 좋게좋게 생각하려고 했거든? 근데 진짜 아닌 것 같다. 빨리 썅년 바꿔 봐!”

 

“왜 자꾸 편 들어? 너 혹시 걔한테 가스라이팅 당하니?”

 

이상하죠. 그때 일이 지금 일처럼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요. 남편도 결국 화를 냈고 둘이 싸우기 시작할 때 저는 집으로 들어왔어요. 더 들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 이미 들은 이야기도 너무 생생하게 한 자 한 자 박혀서 아직도 흐려지지가 않아요.

 

그래도 명절이니 시가에 가긴 해야 하잖아요. 그날 밤에 남편 손 잡고 많이 울고 다음 날에 시가에 찾아갔어요. 시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어요. 아직 시누이는 오지 않았는데, 자꾸만 시누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며 다 같이 사이 좋게 놀 계획만 세우시길래 제가 따로 방에 가서 말씀드렸어요. 어머니, 형님이 화가 많이 났던데요.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놀라면서 다 자기 사는 방식이 있는데 신경 쓰지 마라. 그런데 내 딸이 시댁에 그렇게 잘하긴 잘한다. 걔는 그렇게 살기로 한 거니까 너는 너대로 살면 된다. 괜찮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때는 그 말이 위로가 되었는데 지금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저는 눈치가 없는 편인 것 같아요.

 

어머니 말 듣고 저는 그냥 하던 대로 계속했어요. 명절 당일에 가서 음식 차리는 것을 돕고, 치우는 것을 돕고, 시누이의 남편이 시아버지와 소파에서 TV를 보며 ‘아버님 이따위 저질 채널 보지 마시라’라며 훈계하거나 피곤하다며 드러누워 자는 것을 보며 말이죠.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남편이 중간에서 고통받는 게 더 괴로워서 그냥 하루만 버티자, 일 년에 명절 몇 번 있지도 않은데, 하면서 참았어요.

 

다시 떠올리려니 너무 아파서 힘이 드네요. 오늘 다 쓰고 가려고 했는데 여기까지만 써도 기력이 다 떨어졌어요. 직장 그만두고, 시아버지 간병하면서 생긴 일들은 다음에 이어서 쓸게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쓴 부분은 제가 ‘진짜 도리를 모르는 썅년인가’하는 생각으로 의견을 듣고 싶어요. 물론 저는 그런 말 들은 정도로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같이 욕해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어서 쓴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여러분께 진짜 묻고 싶은 건 아직 쓰지 못했어요. 밥 먹고, 잠도 좀 자고 에너지 충전해서 올게요.

 

베플 ㅁㅁ

시댁도 아니고 시가, 시모, 시누이, 하는 게 댁도 썩 좋은 성격은 아닌가보네여ㅋ 그런 소리 듣는 거 이해됨ㅋ 자기 잘못 없다고 결론 다 정해놓고 조언 듣는 척ㅋㅋㅋㅋ 자의식 오진다

 

 

베플ㅁㅁ

님 말대로 명절이 일 년 내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거 한두 번 가서 음식 좀 하는 게 그렇게 고까워요? 그 정도도 할 생각 없으면 결혼을 왜 했어요? 아… 님 혹시 페미?

 

베플ㅁㅁ

본 데 없어서 배운 게 없다는 말 다 동의가 가는데요. 그 정도는 안 배워도 아는 기본 중 기본이지만. 시어머니께서 마음이 좋으시네요. 남편분 착하다는데 그냥 그동안 많이 참아주신 것 같고요. 연애 때도 그랬을 듯ㅋㅋㅋ 이런 피해 의식 가진 사람들 생각 빤함. 애 생기기 전에 그냥 헤어져 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예비베플 ㅁㅁ

학교든 회사든 항상 이런 사람들 있어요. 따박따박 자기 혼자 정의 구현한다고 난리 치고 따져서 분란 일으키는 사람. 남편 불쌍하네요. 사람 하나 잘못 들여서 집안 분위기 다 망했네.

 

예비베플ㅁㅁ

동생 이야기는 왜 하나도 없음? 지만 시집가서 잘 살면 다임? 그리고 남자 가난하다고만 쓰고 결혼할 때 뭐 받았는지는 왜 안 씀? 자기도 뭐 낭낭하게 받았으니까 벌써 집 샀지 혼자 힘든 척 ㅋㅋㅋ 이거 분명 빛삭한다 원본지킴이 출동ㄱㄱㄱㄱ

 

예비베플ㅁㅁ

그 시절에 중국 사업? 짱깨 OUT!!!

 

찬반대결ㅁㅁ

결혼 이십 년 차 아주미입니다. 쓰니 말도 틀린 건 없는데 좀 더 양보하면서 맞추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결혼이란 게 그런 거거든요. 서로 숙일 건 숙이고 맞출 건 맞추면서 살아야지 결혼 전처럼 내 주장만 한다고 현명한 게 아니에요. 쓰니도 이혼 안 하고 잘 살고 싶으니까 이런 글 쓴 거 아니에요? 애 하나 낳으면 금방 또 분위기 달라집니다. 지금 시누이가 조금 밉게 굴어도 조카는 이뻐할 거예요. 빨리 아가 낳아서 쓰니도 시댁에서 이쁨받으며 행복하게 지내세요. 고아라서 외로웠을 텐데 양친 다 계신 시댁을 만났으니 그것도 복이에요. 내 부모님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양보하세요. 엄마 없이 자랐다니 제가 다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아빠가 아무리 잘해줘도 딸한테는 또 그게 아니거든요. 딸은 엄마가 있어야 배우는 그런 것도 있거든. 내가 엄마 된 마음으로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니까 새겨듣고 지금이라도 형님한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해요. 먼저 손 내미는 게 이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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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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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난 번에 글 올리고 한참 들어와 보지 못했어요. 쓰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무슨 댓글이 달려있을지 몰라 무서웠거든요. 큰맘 먹고 보니 진짜 세네요. 시누이는 최약체였어요. 하하하….

 

오늘 할 이야기만으로도 많이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해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서 물어보신 것들 몇 개만 답해볼게요.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여러분께 잘 보여서 뭐 하겠어요. 상황 모면하려고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는 소리예요.

 

결혼할 때 받은 거라면, 반지 받기는 했어요. 몇 부인지 모르지만 일단 다이아 반지 하나 있긴 해요. 그거 사면서 사은품으로 진주 귀걸이 세트를 같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에게는 없어요. 결혼반지도 시누이가 ‘예물은 우리 엄마한테 맡겨놓으라’라며 안 주려고 했는데 제가 결혼식 날 처음 껴보고 갖고 싶어서 그냥 안 돌려드렸어요. 그래서 케이스도 보증서도 없이 반지만 하나 달랑 갖고 있어요.

 

결혼할 때 남편에게 현금으로 천만 원 주셨다고 해요. 그거 그대로 시부모님 예복 맞춰서 저는 한 장도 본 적이 없어요. 제 돈으로 전셋집 구했고 결혼식은 이것저것 다 빼고 제일 싸게 했어요. 돈이 딱 떨어져서 신혼여행은 안 가려고 했는데 친구들이 십시일반 모아줘서 다녀왔어요. 지금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평생 갚을 거예요.

 

그리고 동생은 저랑 연년생인데 혼자 아주 씩씩하게 잘 삽니다. 매일 만나고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제가 외곽에 집을 사면서 멀어져서 예전처럼 자주 보지는 못해요. 동생이 저에게 섭섭한 부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혼자 내버려 두고 저만 잘 지내는 건 결코 아닌 것 같아요. 동생 이야기를 거의 쓰지 않은 것은 이건 저의 사연이고, 본의 아니게 관련 없는 동생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역시 여기까지만 말하고 더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작년 말부터 시아버지가 편찮으셨어요. 대장암이었는데, 초기라서 예후가 좋을 것이라고 해서 수술했는데 그대로 일어나지 못하고 계시다가 올해 여름에 돌아가셨어요. 공교롭게도 제가 일을 그만둔 시기와 딱 맞아서, 시어머니와 번갈아 간병을 했어요.

 

앞글에서 말한 피부가 망가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거예요. 일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야근이 잦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것 역시 공교롭게도, 시누이에게서 ‘썅년’ 소리를 듣고 난 이후 시작되었어요. 십 대 때도 뾰루지 없는 피부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몽땅 빈 곳 없이 뒤집어지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금방 가라앉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병원을 늦게 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결론적으로 지금도 회복되지 않은 제 얼굴은 계속해서 보기 싫은 염증을 달고 있어요. 피부과 치료도 항생제 아니면 듣지 않아요.

 

회사를 그만둘 때는 모아둔 돈도 있고 퇴직금도 있으니 이걸 쓰면서 제가 뭐라도 얼굴을 대하지 않는 일을 찾으면 재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병원을 오가면서 시간을 써버리니 그런 여유가 전혀 안 나더라고요. 몸도 건강하지 못한 편이어서 더욱 지쳐 집 살림도 거의 돌보지 못했어요. 장거리 오가면서 밥을 사 먹고 병원에서 필요한 용품들 이것저것 사니 모아둔 돈도 금방 다 떨어졌어요. 님편도 벌기는 했지만 저보다는 연봉이 낮았고 그마저도 떼서 시가에  매달 보내고 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병 간호는 너무 힘들고 하고 싶지 않았어요. 간병인 쓰자고 여러 번 말씀드렸어요. 제가 돈 드리겠다고 했는데 어머니 한 마디에 그만 지고 말았어요.

 

“놀고먹으면서 뭐 하려고 그러니?”

 

시아버지는 과묵해서 결혼 전에도 후에도 완성된 문장으로 대화를 한 마디 이상 이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젊었을 때 사업을 크게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죄다 망한 후로 의기소침해지신 것 같아요. 암 수술 이후로 폐 건강도 나빠져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계신 경우가 많아 더욱 말이 없어지셨지요.

 

일 중독으로 살다가 종일 병자 냄새 가득한 병원에서 반년 가까이 지내니 우울해지더라고요. 시누이도 종종 들여다봤지만 ‘승진을 앞두고 일이 너무 바쁘다’라며 10분도 앉아 있지 않았어요. 그나마 시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셔서 다행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시누이의 남편이 시누이와 함께 찾아왔어요. 그 사람은 장인이 입원 수속할 때도, 수술할 때도 오지 않았어요. 수술 날 시누이와 함께 온 아이들에게 별생각 없이 ‘아빠는?’하고 물었더니 둘 중 더 어린 쪽이 그만 실수를 했어요.

 

“아빠 새벽에 골프 갔다가 지금 자요.”

 

시누이가 몹시 당황하는 눈치여서 저는 못 들은 척했어요. 남편도 들었지만 역시 싸우고 싶지 않으니 그냥 넘어가더라고요. 이후로 병원도 한 번을 안 오다가(제가 없을 때 왔다고는 하는데, 글쎄요) 그날 처음 다 같이 모인 거예요.

 

“진짜… 우리 회사에서 처남처럼 굴면 진작 빠따 맞고 울면서 나갔어.”

 

그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저도 남편도 따라 웃을 수 없었어요. 시누이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는 농담이라는 듯 맞아, 맞아, 맞장구를 쳤어요. 시아버지는 얕게 주무시고 계셨고 시어머니는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자주 들여다봐야지. 어머님께만 맡겨두고 그러면 어떡해. 안부 전화도 좀 자주 하고.”

 

그 사람이 돌아가고 시어머니가 남편을 구석으로 불러 말씀하셨어요. 어제 매형 생일인 거 몰랐니? 왜 연락 안 했어? 저는 그것도 그냥 못 들은 셈 쳤어요. 이제는 남편이 불쌍하지도 않았어요.

 

그날 밤은 제가 당번을 서는 날이었어요. 어머니는 집에서 저녁을 먹겠다며 일찍 가셨고 저는 입맛이 없어서 그냥 보호자 침대에 누웠어요. 폰으로 퍼즐 게임을 조금 하다가 자꾸만 시누이와 그 남편이 떠올라 괴로워 닫아버렸어요. 잠이라도 들면 금방 잊히겠지, 4인실이라 불을 켜둔 채 억지로 눈을 감는데 목소리가 들렸어요.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병원 가라.”

 

“네?”

 

저는 벌떡 일어나 앉았어요. 아버님이 누운 채 눈만 돌려 저를 보고 있었어요. 입을 달싹이시기에 빨대를 꽂은 물통을 건네드렸더니 한 번 드시고는 다시 입을 다무셨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목소리는 계속 들렸어요.

 

“속에만 담아두니까 넘쳐서 얼굴로 티를 내지.”

 

시아버지는 눈만 저에게 향하고 있을 뿐, 조금도 입을 벌리지 않았어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아서 그들에게도 들리는지는 알 수 없었어요. 시아버지가 계속 말씀하셨어요.

 

“친구한테도 동생한테도 말 못 하겠으면 돈 주고서라도 다 말해.”

 

“정신과 진료받아보라는 말씀이세요?”

 

여전히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저는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해 보호자 침대에 걸터앉았어요. 시아버지는 제가 앉는 것을 보고 눈을 돌려 천장을 봤어요.

 

“돈 아까워서라도 말하겠지. 의사 찾아가.”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이야기지만 저는 그 말씀을 따라 정신과 진료를 받았어요. 사실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괴로운데 내과에서도, 이비인후과에서도 원인을 못 찾아서 마지막으로 간 게 정신과였어요. 아직 제 이야기는 거의 못 하고 있어요. 의사 선생님이 ‘말로 못 하겠으면 모르는 사람에게 글이라도 써 봐라’고 하셔서 이렇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