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Ep. 9 사팔뜨기 택시기사

  • 장르: 호러
  • 분량: 43매
  • 소개: <옴니버스 장편, 고속도로 순서> 1. 고속버스 2. 투명한 고름병 3. 구멍 4. 아파트 5. 불행을 부르는 광대 6. 죽음에 대하여 7. 인체의 신비 8. 인체 모형... 더보기

고속도로 Ep. 9 사팔뜨기 택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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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봐요. 택시기사는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민정은 뒷좌석에 밑으로 떨어지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도착했나요? 창밖엔 흔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택시는 몇 개의 차를 추월해 지났다. 고속도로 타서 그런지 아가씨도 고속으로 잠들어 버리는구먼. 기사는 뒤를 돌아본 채 말했다. 앞을 보세요. 왜? 내가 아가씨 말 들어야 하나? 택시는 슬쩍 라인을 벗어나더니 중앙 분리대를 긁었다. 기사는 욕을 뱉으며 핸들을 돌렸다. 아가씨 때문에 박았잖아. 기분 잡쳤네. 이게 다 얼마야. 콜택시 비용에 수리비 이십만 원 추가야. 왜요? 제가 내야 되요? 말대꾸는 잘하는 구만. 하여튼 좀 예쁘장한 아가씨들은 한결같지. 활짝 핀 꽃이 꽃가루도 많이 날리는 법이니까. 아마 똥파리도 많이 꼬일 거야. 그렇지? 민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부정안 하는구먼. 뻔 하지 뭐. 스토커나 뭐, 그런 건가? 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 아까 방송국 앞에서 태울 때 감이 확 오더라고. 뭐가 끼여 있는 관상이야. 생긴 걸로 봐서는 거기 연예인 정도 되겠군. 라디오 진행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목소리 듣고 그럴 거라 생각했어. 이런 시골에서 인기 좋겠군. 기사는 다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벌어진 눈이 민정을 찾아 움직였다. 앞에 보세요! 차선을 변경하던 차가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사는 겨우 핸들을 돌려 충돌을 피했다. 제대로 박을 뻔했구만. 다 아가씨 때문이지. 이름이 뭐야? 민정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뱉었다. 손은 천장에 붙은 손잡이를 꽉 잡은 채였다. 이름이 뭐냐고 묻잖아. 김민정이에요. 흔한 이름이구먼. 부모님이 애한테 별로 애정이 없었나봐. 무슨 소리에요? 그럼 아니란 말인가? 이름에 특별한 의미를 담았나? 뭐, 어차피 뒤지면 다 끝인데. 그래서, 엄마는 어디가 아프데? 민정은 입을 다물었다. 어떤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기사는 다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앞을 보라고요! 기사의 발에 힘이 들어가고, 택시는 시위하듯 고함을 질렀다. 알았어요, 말할 테니까, 앞 좀 봐요. 기사는 피식 웃더니 자세를 고쳐 잡았다. 말해봐, 엄마 어디가 아프데? 위암 말기에요. 위독하시던 얘기 듣고, 방송 끝나자마자 나오는 길이에요. 민정이가 가면, 낫는 건가? 네? 자네가 가면 엄마가 낫는 거냐고? 그런 질문이 어디 있어요?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그냥 엄마가 아프다니까 가는 거예요, 낫고 말고가 아니라. 그렇게 대충 사니까, 세상이 이 모양인 거야. 세상 이 모양으로 만든 비용 십 만원 더 계산해. 네? 수리비 이십 만원에 세상을 망친 비용 십만 원까지 추가, 총 삼십 만원. 무슨 계산이 그래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오호, 웃으며 기사는 룸미러를 조정해 민정의 얼굴을 보았다. 빨리 신고해. 재밌겠네. 신고 안하면 죽어. 민정은 핸드폰을 들어 올렸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신고할 수 있는 곳에 다 해봐. 어차피 이곳은 내 꿈속일 뿐이니까. 무슨 소리에요? 기사는 어깨동무 하듯 조수석 의자 머리를 팔로 감쌌다. 룸미러 속에 눈동자가 방향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사실, 내가 저기 밑에, 은혜의 집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단 말이야. 후덥지근한 날이어도 예배당은 시원하니, 잠이 솔솔 쏟아지지. 그래서 교주님 몰래 살짝 누워서 잠을 청했단 말이야. 그런데, 깨보니 택시를 운전하고 있더라고. 그리고 라디오 방송국 앞에서 민정이를 태운거야. 신기하지? 꿈속에 손님 많아도 상관없지. 경찰도 부르고 소방관도 부르고, 아는 친구들도 다 불러. 민정은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이건 꿈이 아니에요. 진짜 신고할 거예요. 하라니까. 누가 말렸나? 우선 귀중한 꿈 얘기 들었으니까 십 만원 추가. 민정은 안 되겠다 싶어 번호를 눌렀다. 바로 경찰 교환원이 받았다. 제가 불편한 일을 겪어서요. 택시를 타고 있는데요. 네, 고속도로 위에서요. 폭언을 하시고 과다한 비용 청구를 하고 위협을 하세요. 위치 추적으로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전화를 끊은 다음에도 룸미러 속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신기하지? 남의 꿈에 들어온 거. 저는, 기사님 꿈에 들어온 사람이 아니에요. 기사는 크락션을 두 번 누르더니 유쾌한 듯 웃었다. 그럼, 민정이. 지금 이곳에 있는 게 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나? 나는 이게 꿈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데 말이야. 민정은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남은 손으로 팔받침을 꽉 잡았다. 차는 폭주하고 있었다. 천천히 달리면 안돼요? 어차피 꿈속인데 달려도 되지 않을까? 안 그래? 꿈이 아니라니까요! 이제 곧 경찰 올 거예요. 기사님은 큰일났어요. 경찰 오면 내가 큰일 난 건가? 그렇게 경찰 잘 부르는데, 스토커라는 친구는 어째 해결이 안 되는 건가. 내가 하나 보여주지. 그 친구 번호 알지? 불러봐. 왜요? 뭐하시게요? 기사는 또다시 고개를 돌리려 했다. 앞에 보세요, 알려 드릴게요! 진짜 사악한 아저씨네. 민정은 큭큭 웃는 기사에게 번호를 불러줬다. 기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돌렸다. 요 번호, 추적해서 그 놈 묻어버려. 이십분 안에 가능하지? 그러더니 전화를 끊었다. 민정은 겁에 질려 조수석 어깨를 잡아 몸을 당겼다. 왜요? 죽이려고요? 조금 기다려봐. 민정이가 오랫동안 힘들었던 것들이 내 꿈에선 얼마나 쉽게 끝나는지. 사팔뜨기 눈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웃었다. 기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민정이 방송국에 일을 잡은 첫 해부터 스토커에게 시달렸다. 그 남자는 삶의 목적이 민정의 정보를 캐는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밤마다 전화를 걸었고, 시청자 게시판에 민정의 사생활을 갈겨 놓았다. 속옷 브랜드 얘기가 나왔을 때, 방송국 사람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것도 신통치 않았다. 한번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남자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마치 남편인 것처럼. 민정은 살려달라고 울부짖었고 이웃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제야 남자는 자리를 떴다. 내가 스토커 해결해주면 얼마 줄 거야? 얼마라니요? 원래 이런 거 해결해주고 돈 받는 게 당연한 거지. 좀 큰 건이니까, 백만 원에 해줄게. 와, 싸다, 싸! 기사님, 저는 부탁한 적 없어요. 무슨 소리야? 내 꿈에 들어온 거 자체가 의지가 있는 거지. 꿈 아니라니까요. 저 내려주세요. 다른 차타고 갈 거예요.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내려달라고? 꿈이라고 아주 대범한 아가씨가 되어 버렸구만. 요번에 고속버스 하나가 도로 밖으로 튀어 나간 적이 있는데 거기쯤 내려줄까? 그것 좋겠네. 아주 좋아. 기사는 눈이 감길 정도로 웃었다. 그 밑에 강도 흐르고 있는데, 그곳으로 떨어지면 아주 시워하고 좋겠네. 민정이, 나랑 같이 가자고. 혼자 가면 섭섭하지. 제발 멈춰줘요, 돈은 다 드릴게요. 기사는 순간 정색을 했다. 나를 거지로 아는가? 감히 내 꿈에서 나를 거지 취급하다니, 간도 부었구만. 민정이가 손님이라 해도, 내 택시를 탄 이상, 주도권은 나한테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그건 무슨 소리에요? 생각해봐. 돈을 내고 영화관을 가잖아. 그럼 관객이 주인인가, 영화가 주인인가. 돈 냈으니까 관객이 주인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영화 화면을 강제로 사람들의 안구에 때려 박는 거지. 무엇이 들어올 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소설도 마찬가지야.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놓은 사람이 주인일 것 같지? 거기 꽂혀 있는 책이 독자의 정신을 지배하고, 인생을 휘두르는 게 사실이야. 택시도 민정이가 호출하고 돈을 낸다고 주인인가? 타는 순간부터 내리는 순간까지, 내가 주인이라고, 이 멍청아. 게다가 이건 내 꿈속이잖아. 민정이는 증명도 못하는 말로 억지 부리지만, 나는 증명할 수 있어. 현실은 재미가 없거든. 지금은 엄청 재밌잖아. 그래 보이지? 꿈이니까 이런 짓도 할 수 있지. 기사는 핸들을 꺾었다. 옆에 달려오던 트럭이 놀라 차선을 바꿨다. 트럭은 크락션으로 으르렁 댔다. 기사는 조수석 창문을 열고 욕을 집어 던졌다. 강한 바람은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창을 닫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자 트럭은 뒤로 밀리다 사라졌다. 봤지? 룸미러의 눈동자는 동조를 원했다. 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꿈이니까 가능하단 말이야. 떨지 말고 즐겨. 저, 내리고 싶어요, 애원하는 투로 말했다. 나도 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콩알만큼은 있는데 말이야. 꿈속이라 멈출 수가 없단 말이지. 살려주세요. 살려달라고? 이제 자신이 어떤 운명에 처한 건지 알게 된 건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주지. 교회에 노망난 할머니가 오기 시작했단 말이야. 남편 죽은 후로 두통이 멈추지 않아서 이곳저곳 찾아다니다가, 텅 빈 아파트에 굴러다니는 벽돌을 주워와 이마에 올렸는데, 글쎄 두통이 괜찮아 진거야. 그 날 이후로 벽돌을 이마에 놓고 잠을 자게 되었어. 시간 지나니까 이마가 벽돌 모양으로 파였지. 뼈까지 변한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