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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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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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희의 목소리가 재희를 어둠 속에서 건져 올렸다. 이제 깨어날 시간이라고, 누나,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준희는 속삭였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누가 강제로 내리누르는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웠다. 뜨거운 햇살이 축축한 피부에 내리쬐었다. 바닷가를 때리는 파도소리와 갈매기가 울부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귓전에 맴돌았다. 그래, 이제 일어나야해, 하고 뇌가 신호를 보내다가도, 자꾸 정신은 일렁이는 잠의 밑바닥으로 미끄러졌다. 마치 누군가 발목을 붙잡고 아래로 끌어당기듯이.

 

모래사장을 걷는 발소리가 사방을 에워싸더니, 이윽고 사람의 그림자가 기절한 재희의 몸 위로 드리웠다. 낮고 거칠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가 오갔다. 억센 손이 재희의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다리에 힘을 주려했지만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재희는 양 어깨를 붙잡혀 어디론가 이끌려갔다. 파충류의 울음소리처럼 꾸르륵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파악해야 했다. 정강이가 모래바닥에 질질 쓸렸다. 누군가 재희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재희는 온힘을 다해 눈을 떴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해안가였다. 파란하늘 아래 펼쳐진 해변으로 파도가 휩쓸려왔다. 모래밭은 시선이 닿는 끝에서 반달 형태로 휘어지며, 높이 솟은 절벽에 삼켜졌다. 재희는 간신히 옆을 돌아봤다.

 

재희의 양어깨를 붙잡은 손들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팔 하나는 털 대신 촉수 같은 넝쿨들이 잔뜩 붙어 엉켰다. 다른 어깨를 두른 팔에는 좁쌀만한 눈동자처럼 생긴 종기들이 빼곡히 돋았다. 재희의 머릿속으로 기억의 파편이 틈입했다. 원주민들. 우성의 말에 따르면 외부와 전혀 접촉하지 않은 채 사는 원주민들이 이 제도 곳곳에 있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일까? 하지만 그렇게 보더라도 너무 끔찍한 신체였다….

 

금방이라도 팔을 뿌리치며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토사물이 올라와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이내 재희는 구토를 쏟았다. 욕설 같은 외침과 함께 손바닥이 날아들었다. 턱이 돌아가는 얼얼한 충격이 왼뺨을 가격했다. 재희의 의식은 금세 어둠속으로 떨어졌다.

 

그들이 재희를 데려간 곳은 절벽 위의 동굴이었다.

 

재희가 정신 차렸을 때, 동굴 한편에는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뼈 무덤이 쌓여 있었다.

 

 

2.

재희는 이 여행이 나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끔찍하진 않을 거라고.

 

섬에 도착하는 과정에서부터 글러먹은 여행이었다. 한국과 멀리 떨어진 낯선 타국 땅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건 처음이었다. 공항에서부터 기다려주기로 했던 우성은 급히 집에 정비해야할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수도관이 터졌다나 뭐라나. 재희는 시차에 적응할만한 시간도 갖지 못한 채, 겨우 기차에 올라 눈을 붙이며 뿌라뚜 항구로 향해야 했다. 푹푹 찌는 더위로 가득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포르투마 섬으로 한참 들어갔다. 배가 에메랄드 빛 바다를 가르는 동안,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간헐적으로 빗방울을 뿌렸다. 갑자기 거칠어진 파도에 재희는 속이 미식거렸다.  목걸이에 달린 부적을 무의식적으로 꽉 쥐었다. 준희가 선물해준 물건이었다.

 

포르투마 해변에서 재희는 우성이 알려준 ‘운반자’를 찾아 헤맸다. 그 운반자란 외판이 칠이 벗겨져 다 녹슬어가는 낚싯배의 주인이었다. 우성의 말에 따르면 “생필품을 전달해주는 유일한 거래인”이라서 그렇다고. 손바닥으로 차양을 만들어 빗물이 눈에 들어가지 않게 보호하던 재희는, 영어를 더듬거리며 낯선 어부들을 수소문한 끝에야 그와 만날 수 있었다.

 

재희는 뭔가 실망스러웠다. 내가 상상하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남반구의 뜨거운 태양과 초록빛 무성한 야자수 아래 쉼터가 마련된 휴양지. 그야말로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녹아, 불안한 기운을 죄다 날려버릴 수 있는 환경을 원했다. 포르투마에서 보이는 거라곤 울퉁불퉁한 돌로 가득한 못생긴 자갈 해변과 누더기를 걸친 시골사람들뿐이었다. 안내 팸플릿이나 외국 사이트에서 찾아봤던 사진들은 한껏 미화된 느낌이었다. 물론 관광보다는 휴식기를 갖는 게 목적이었지만….

 

우성이 거주하고 있다는 이름 모를 섬에 도달할 때까지도 날씨는 여전히 우중충했다. 빗물은 분무기처럼 간헐적으로 전신에 분사됐다. 얼른 땀과 빗물을 씻어내고 싶었다. 파도에 따라 흔들리는 보트에 앉아 가까워지는 섬을 바라봤다. 멀리서 후줄근한 후드 차림새로 맞이하러 나온 우성이 보였다. 마르고 긴 팔다리, 큰 키에 비해 너무 좁은 어깨, 5년 전 그대로였다.

 

반가운 마음이 요동쳤다. 그래, 이보다 더한 고생길은 대학생 때 우성과 같이 훨씬 많이 겪었었지. 친구들과 미쳤다고 새벽에 차를 운전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 아침 해를 봤던 일, 선배들 따라 농활을 갔다가 논에서 거머리에 물렸던 일, 기차여행을 하다 가위바위보 진 사람더러 다음 기차를 따로 타고 오라 했던 일, 버스를 잘못 내리는 바람에 산중을 한참 걷다 겨우 트럭을 얻어 탔던 일….

 

마지막 여행지에서는 동생 준희도 함께였다.

 

보트가 부두에 선착했다. 재희는 비틀비틀 무릎을 일으켰다. 준희를 생각하자 현기증이 일었다. 눈앞이 노래졌다. 빗물이 고인 바닥에 신발 밑창이 미끄러지려 했다. 다급히 난간으로 손을 뻗었다.

 

우성이 어느새 팔을 붙들고 있었다.

 

“조심성 없는 건 여전하네.”

 

우성이 웃음기가 벤 목소리로 말했다. 우성의 손바닥으로 따뜻한 기운이 전해졌다. 덕분에 재희는 정신이 들었다. 우성은 캐리어를 건네받더니 나무로 지어진 선착장 위로 이끌었다. 그는 긴 시간동안 고생했다고, 곧 쉴 수 있다는 당부와 함께 언덕 위를 가리켰다. 어느새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정돈된 길을 따라 나란히 수놓아진 나무들 너머에 저택이 나타났다. 저택 창가로 노란 불빛이 들어와 있었다. 그 커다란 저택이 머리를 기울여 재희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했다.

 

 

 

재희는 복층의 아늑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어디서 이런 집을 봤더라? 재희의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건 ‘고급 별장’이라는 단어였다. 그만큼 근사한 저택이었다. 빈틈없이 도포된 갈색 지붕이며 목재로 가지런히 지어진 벽하며. 날이 화창하기만 했다면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 멋진 모습일 듯했다. 재희는 우성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어느 이야기부터 꺼낼지 몰랐다. 우성은 거듭 공항에 데리러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사과가 계속되자 재희는 옛기억을 잠깐 떠올렸다. 원래 이렇게 배려심 많은 성격이었던가. 대학 때 우성은 웃기지만 싸가지 없기로 유명했었다.

 

방은 침대와 벽장, 서랍이 나란히 창가를 바라보는 형태였다. 재희는 창밖으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먹구름이 깔린 수평선을 응시했다. 우성은 방문을 살며시 닫았다.

 

“그럼 좀 쉬다… 저녁 먹으러 와.”

 

재희는 짐을 풀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기로 결심한 건 불과 2주전이었다. 수 년 간 문제없이 다녀온 회사를 때려치우고, 친구들과도 점차 연을 끊어가던 중이었다. 하긴, 너희는 내 사정을 절대 모를 거라고 주절대며, 우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놓인 사람의 심정을 아냐고 윽박지르기만 하는데 몇이나 연을 유지할까. 그렇다고 입을 함부로 놀려대는 놈을 곁에 둘 순 없었다. 주어진 시련을 딛고 일어서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진부한 조언을 반복하던 친구도 있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어떻게 딛고 일어설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우성에게 메일이 도착했다.

 

굵직한 글씨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말투의 제목이었다. ‘칠칠아 잘 지내니?’ 쓸데없는 광고성 메일 사이에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매사에 칠칠맞지 못하다는 것과 7월자 생일이라는 뜻이 합쳐진 그 촌스런 별명으로 재희를 부르는 건 단 한 사람이었다. 재희는 왠지 두근대는 마음으로 메일을 클릭했다. 근사한 저택 사진과 함께, 나는 남반구의 나마란타 제도에 위치한 섬에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왠지 네가 생각났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언젠가 찾아오면 좋겠다는 말로 메일은 끝맺었다.

 

그래, 이 섬이야. 이곳에서 어쩌면… 시련을 딛고 일어설지도 모르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친구와 함께 말이지. 다만 두 가지가 걸렸다. 나마란타 제도에 대해 평생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재희는 우성의 애인에게 큰 일이 닥쳤을 때도 제대로 위로를 못 전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 서로 너무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평소 집에서 정리정돈도 안한 채 책을 읽거나 게임만 하길 좋아하는 우성과는 달리, 애인은 스포츠에 관심이 많고 인테리어를 매번 바꾼다는 등 둘이서 상극이라는 말만 건너건너 들었었다…. 우성의 집안은 원체 잘 살기로 유명했기에—아버지가 창원 쪽에서 건물을 몇 채를 갖고 있다나—어떻게든 극복하고 잘 살 거라고 지레 짐작하기도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방이 어둑했다. 잠깐 침대에서 졸았던 모양이다. 저택을 둘러싼 냉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방은 적막했다. 파란색 향초 하나가 서랍장 위에 밝혀져 있었다. 우성이 왔다갔나? 챙겨주는 건 좋았지만, 자는 사이에 몰래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 좋았다. 재희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통신이 잘 잡히지 않았다. 와이파이가 작동할리 만무했다.

 

쿵, 하는 묵직한 소리가 벽을 때렸다.

 

재희는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소리가 들려온 벽을 쳐다봤다. 촛불에서 퍼진 불빛이 희미하게 벽을 비췄다. 흐릿한 눈으로 벽을 계속 쳐다봤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바람 소리인가? 재희는 한숨을 쉬며 허리 숙였다. 핸드폰을 주우려 했다.

 

다시 무언가 벽을 때리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재희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욕을 중얼거리면서 바닥을 더듬었다. 핸드폰이 침대 아래로 들어갔는지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지금이 몇 시였더라? 핸드폰을 켰을 때 바로 기억했어야 했는데! 자신의 건망증을 저주하며 재희는 불 밝혀진 향초를 집어 들었다. 어쩌면 우성이 보수작업이라도 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저녁을 들러 오라고 했던 우성의 말이 떠올랐다.

 

방문을 열자 발코니 형태의 복도가 나타났다. 맞은편에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입구가 어둠에 감싸여 있었다. 재희는 향초를 들고 입구로 다가갔다. 소리는 분명 이쪽에서 들려왔다. 시커먼 목구멍 같이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어둠이 자리했다. 향초를 가까이 입구에 대 보았다. 하지만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어둠은 그대로였다. 이게 뭐지? 검은 커튼이라도 내려와 있는 걸까?

 

손을 뻗어 어둠을 만져보려 하는데… 쿵, 하는 울림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재희는 주저앉았다. 향초가 바닥에 떨어지며 촛불이 꺼졌다. 촛농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다행히 재희의 살갗에 튀지는 않았다. 손님으로 오자마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혹시 우성은 저 방 건너편에 있을까? 저 어둠에 손을 대기가 꺼림칙했다.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집 안의 공기는 너무 차가웠다. 뭐가 됐든 우성을 찾아 물어보고 싶었다.

 

벽을 짚어 발코니 아래에 뻗은 계단으로 내려갔다. 목걸이를 쥐었다. 불안할 때마다 나오는 습관이었다. 층계참에 발이 닿았을 때였을까. 정체불명의 소리가 다시 저 어둠에 감싸인 방에서 울렸다. 재희는 이제 그 소리를 무시하려 했다. 얼른 우성을 찾고자 하는 마음만 굴뚝같았다…. 이번에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마치 누가 일부러 바닥을 내리치는  것처럼 쿵, 쿵, 쿵. 하고.

 

그리고 그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재희는 뒤를 돌아 계단 위편을 쳐다보았다. 발코니 위에 푸른색의, 자락이 긴 옷을 입은 여자가 있었다. 긴 머리를 늘어트려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여자는 계단을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재희는 얼어붙었다. 도망가고 싶었으나 차마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여자는 가까워졌다. 마치 재희를 덥치듯 손을 뻗고 뛰어왔다.

 

재희는 벽에 밀어붙여졌다. 여자와 재희는 불과 몇 센티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썩은 내가 올라왔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창백한 피부가 보였다. 재희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여자의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여자의 얼굴은…우성이었다.

 

우성이 입을 벌리며, 쇳소리를 울렸다.

 

“돌아가.”

 

그리고 재희는 눈을 떴다.

 

정체불명의 새가 겨우 토해내는 듯한 목소리로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창가에서 햇빛이 쏟아졌다. 재희는 황급히 이불을 걷었다. 꿈? 서랍장 위 향초는 그대로였다. 보라색 향초. 잠깐, 향초 색이 바뀐 거 같기도 한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침이라도 들라고 우성이 다정한 목소리로 알렸다. 친구의 달라진 부드러운 태도가 느끼하다는 기분도 들었다. 재희는 대충 대답한 뒤 바닥과 침대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침대 아래에서 방전된 채였다.

 

문을 열어 복도 맞은편을 확인했다. 그곳에 방 따위는 없었다. 흰색 벽으로 가로막혀 있을 뿐이었다. 그래, 꿈. 꿈이었나 보다.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꾸었던 꿈. 재희는 벽 가까이로 다가갔다. 판자로 된 흰 벽을 어루만졌다.

 

벽 한가운데에 작은 무늬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마치 새를 스케치해놓은 형상의 그림이었다. 아니, 날개와 부리가 달린 인간에 가까워보였다. 그림의 형태는 마치 일종의 표식 같았다.

 

“거기서 뭐해?”

 

우성의 목소리였다. 재희는 고개를 돌렸다. 우성은 계단에 발을 걸친 채, 접시가 든 쟁반을 들고 있었다. 접시에 빵과 과일이 담겨 있었다.

 

“아니… 그냥.” 재희는 살짝 웃으며 쟁반을 받아들었다. “매일 이렇게 먹는 거야?”

 

 

 

우성은 쉴 틈이 없어보였다. 저택 근처에 심어진 수목과 개인 정원을 손질하고, 밭갈이까지 하는 게 일과였다. 밭에서 캐낸 채소와 ‘운반자’ 아저씨에게 수금을 주고 전달받은 식료품으로 연명한다고 했다. 저택 청소나 보수 유지 공사 또한 개인이 도맡았다.

 

재희는 처마의 그늘 아래 앉아 내리쬐는 햇빛을 피했다. 정원용 가위로 수목을 손질하는 우성이 보였다. 기숙사에서 퍼질러 자느라 강의에 늦거나, 피시방에서 친구들에게 게임 좀 잘하라고 고함치던 철부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여행을 갔을 때에도 손재주 없다고 타박받기나 했던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걸 혼자 하고 있었다. 5년은 긴 시간인가 보았다. 아무 고민 없이 서로 게임 얘기나 나누던 시절이 그리웠다. 하지만 우성이 지금처럼 건강해 보이는 것은, 과거의 많은 것과 단절하고 이곳에서 성실히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이곳에 온 이유 중 하나가 과거를 잊기 위함이니까. 그래, 핸드폰을 서둘러 고칠 필요는 없다. 심지어 핸드폰 앨범에는 준희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우성은 재희를 해변으로 데려갔다. 우성은 한참을 말없이 걷다 파도치는 해안 멀리를 가리켰다. 바위섬 하나가 수평선 자락에 툭 튀어나와 있었다. “발 헛디뎌서 바다에 빠지더라도 절대 저쪽으론 가지마.” 우성이 미소를 지었다. “야만인들이 널 구워삶을 수도 있거든!” 여행을 결심하기 전, 재희는 나마란타 제도의 원주민 보호구역에 관해 살펴보긴 했다. 외부와 접촉하지 않은 원주민들이 사는 섬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근데 이렇게 가까이 있다고? 농담하지 말라며 우성의 어깨를 때렸다. 우성은 아픈 척 어깨를 부여잡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둘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재희는 1층 식탁에서 <통제자들>이라는, 표지가 다 바랜 소설을 읽고 있었다. 우성의 서가에서 고른 책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우성은 바깥으로 나오라고 했다. ‘옛날 분위기 한 번 내보자’는 것이었다. 밤이 내린 모래사장에 땔감이 불꽃을 피워 올렸다. 우성은 피크닉용 의자에 걸터앉아 맥주 캔을 건넸다.

 

“네가 운전할 줄 알아서 대학생 때 많이 싸돌아 다녔잖아.”

 

한참 근황에 관한 얘기―대부분 취업을 어떻게 했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를 나눴을 즈음이었을까. 우성이 갑작스레 옛 이야기를 꺼냈다.

 

“남해로 가는 국도에서 추돌사고 날뻔 했던 거 기억나? 그때 너 아녔음 그 아저씨들한테 호구 잡힐 뻔 했지. 남자애들도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기억났다. 분명 그 인간들이 새치기하는 바람에 큰 일 날뻔 했던 건데. 절대 물러나지 않고 하나하나 반박하고 나중에 가선 엿 먹으라며 가운데 손가락까지 먹여줬다. 우성은 대학시절 이야기를 주절거렸다. 심심하면 너한테 부탁해서 수업 째고 드라이브 나가고는 했는데…. 재희는 슬쩍 웃으며 이제 그만해달라고 하려 했다.

 

“야, 일본 갔을 때에도 운전 잘했지. 거기는 완전 운전석이랑 도로 사정도 다른데.”

 

재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성과 일본에 갔던 기억은 없는데? 아니, 일본땅을 밟아 본적조차 없었다. 해외에 오는 건 여기가 처음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던 것 같은데.

 

“아아! 맞아. 이 기억은… 아니야.”

 

우성은 말을 얼버무리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요즘도 드라이브 자주 해?”

 

목울대를 얻어맞은 것처럼, 재희는 말문이 턱 막혔다.

일어나, 누나. 일어나.

준희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아니, 안 해.”

“왜?”

“트럭이 눈앞에서 내 차를 박살낸 뒤로는 하고 싶지 않아. 거기에… 준희도 타 있었거든.”

 

재희는 불씨가 허공에서 흩어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가 더 빨리 운전대만 돌렸어도, 준희는 멀쩡했겠지.”

 

동생에 대해 말을 하면 사람들은 금세 침묵했다. 그리고 뻔한 말을 하거나, 대화주제를 옮겼다. 재희는 사고 이야기를 꺼낸 게 조금 후회되었다. 목걸이를 들여다봤다. 준희가 이걸 건네줬을 때가 벌써 십 년이나 지났다. 어디 여행을 다녀오면서 얻어온 거라던데. 모닥불 빛을 반사하는 투명한 플라스틱 안에 작은 부적종이가 있었다.

 

우성은 바다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모닥불이 인근 해안가를 간신히 비췄다. 불빛이 사라지는 경계 너머로는 어둠만이 자리했다. 이 친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나 보구나. 재희는 짐작했다.

 

“많은 게 내 탓으로 느껴지던 시절이 있어.”

우성이 입을 열었다.

“여자친구가 병실에 누워 있는 것만 봐도 잘못한 것만 같았어.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말은 안했지만 나를 질책하는 눈빛으로 바라봤거든. 자주 외국에서 거주하시던 분인데 본인이 없는 동안 딸이 그렇게 됐다고…. 내가 사람을 잘 돌보지 못해서 그렇게 된 거 같았지. 근데, 그런 죄를 덜어낼 수 있단 걸 여기 와서 깨달았거든.” 우성은 모닥불에 땔감을 던져 넣었다. “이곳의 경험은 아주 새로웠어….” 갑자기 격양된 말투였다. 우성은 의자에서 일어나 연극적으로 손짓을 하면서 무언가를 설명하려 했다.

 

“마치 몸 안에 두사람이… ” 우성은  멈칫했다. “미안. 괜한 소리 한 거 같네.”

 

재희는 의자에 파묻히듯 기대었던 상체를 일으켰다. 뭔가 중요한 말이 남았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성을 극복하게 해준 그 경험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모래사장을 밟는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재희는 우성의 어깨 너머를 살폈다. 밤의 어둠 속에서 사람의 형체가 아른거렸다.

 

“우성 씨.” 목이 많이 쉰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손님이 계실지는 몰랐습니다.”

 

 

 

새로 나타난 사람은 안경을 낀 장년 남성이었다. 흰 곱슬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왔고, 이마가 처마처럼 튀어나왔다. 남자는 여름이라는 계절과는 맞지 않게 긴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옆구리에 정체불명의 스티로폼 상자를 낀 채였다. 재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재희와 시선을 마주했다. 재희는 어쩐지 남자가 계속 허공만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눈빛을 가늠할 수 없었다.

 

“재희야. 여기는 어, 김준연 교수님이라고 해. 유일한 이웃이지.”

 

“아, 이분이, 그…?”

 

“네네, 곧 놀러 올 것 같다는 친구요.” 우성이 급히 교수의 말을 가로막았다. “교수님은 이쪽 섬에는 왜 오셨어요?”

 

김 교수는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 보았다. 하긴, 섬을 통째로 우성이네 집안이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했으니. 김 교수는 스티로폼 상자를 모닥불 앞에 내려놓았다. 비린내가 사방으로 번졌다. 재희는 한국의 해산물 식당 앞에서 맡던 비린내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익숙한 냄새였다. 입술이 터지거나 손가락이 베어 핏방울을 삼켰을 때의 짭조름함 같은… 방부제를 쓰지 않는 오래된 내장탕집에서 맡은 돼지피 냄새 같은.

 

김 교수가 상자를 개봉하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재희는 상자 안에 못 볼 게 들어있을 것만 같았다.

 

뚜껑이 열렸다. 얼음팩과 냉동된 생선들이 가득했다. 재희는 안도했다. 김 교수는 일주일 간 낚시해온 걸 주고자 들렀다고 했다. “한국 사람이 먹기는 냄새가 좀 고약하긴 해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요.” 우성은 이렇게 항상 나누려고 하시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그나저나 젊은 아가씨께 이곳의 주의사항은 전했나?”

 

재희는 우성에게 의문의 시선을 던졌다. 머릿속으로 전날밤 꾸었던 악몽의 이미지가 지나갔다. 그 시체처럼 핏기가 없던, 우성의 얼굴을 한 여자가.

 

“그럼요.”

 

우성이 대답했다.

 

“야만인. 진즉에 사라졌어야 할 야만인들이 도처에 숨어 있어요.” 교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원주민을 보호한다는 이상한 명목으로 문명의 전파를 허락하지 않고 있지. 재희 씨. 혹시 말라이카 섬의 마히누시 부족에 관해 아십니까?”

 

재희는 눈빛으로 우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성은 두 팔을 들어 자기도 잘 모르겠단 몸짓을 했다.

 

“잘못된 믿음의 전형적인 문화적 고착화가 이루어진 부족이지. 그들은 아직도 인간이 하늘을 날 수 없다고 믿고 있죠. 하늘에 비행기가 보여도, 그게 인간의 것이 아니라 신의 소행이라고 단정 짓거든요. 신의 자손들만이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김 교수는 땔감 주변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모래 바닥에 무언가를 그렸다. 두 날개를 쭉 뻗은 인간이 선을 따라 나타났다. 재희는 비슷한 그림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았다. 교수의 장광설은 이어졌다.

 

“그들이 믿는 반인반신, ‘누시’를 뜻하는 그림이지. 누시의 권능 중 하나가 뭔지 압니까?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겁니다. 수평선 너머에 죽은 자들의 세계가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시가 날아서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혼을 되찾아올 수 있다고요.” 교수가 안경을 콧잔등 위로 치켜 올렸다. “그런데, 그 권능을 발휘하려면 죽은 자의 영혼이 기거할 다른 육체가 필요하답니다…. 그래서 종종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지기도 하지. 소중한 사람을 되살리겠다고 말이야. 이런 멍청하고 야만적인 문화를 그대로 놔두는 게 죄악 아닌가? 아니, 그건 문화라고도 하기 부끄러운 것이라네.”

 

혼자 열변을 토하던 교수는 나뭇가지를 불 속으로 던져버렸다.

 

“에이, 보호구역은 수십 킬로나 나가야 겨우 찾아볼까 말까인데요.”

 

우성이 대답했다. 교수는 우성을 흘깃 보더니 실례가 많았다는 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성과 악수를 나누며 생선을 잘 보관하라고 했다. 그리고 재희 쪽으로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하고 싶은 말은 이거요. 이 위험한 곳에선 저 친구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고.” 재희는 손을 맞잡았다. 교수의 손바닥에 땀이 잔뜩 베어 나와 축축했다. 재희가 손을 틀어쥔 악력이 아프다고 느낄 즈음, 교수는 손을 바로 놓았다.

 

교수는 해안선을 따라 밤의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가 떠나간 쪽을 바라보던 우성이 속삭였다. “좀 맛이 간 사람이야.” 우성은 관자놀이 쪽에 검지를 대고 빙빙 돌렸다.

 

잠시 후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비는 밤새 내렸다. 천둥소리가 가끔씩 재희 고막을 때리며 잠을 깨웠다. 정오가 되어서야 볕이 들기 시작했다. 우성은 아침부터 지하실을 한참 왔다 갔다 했다. 전압실과 상하수도 장치가 죄다 지하에 설비되었다고 했다. 컴퓨터가 설치된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 워낙 통신 시설이 형편없어서 인터넷을 한 번 돌리는데 수백 년을 기다려야 한다지만.

 

창문으로 비스듬히 내려오는 햇빛을 받던 우성이 재희에게 짤랑이는 철제 고리를 던졌다. “보트 열쇠야.” 우성의 보트는 선착장에 메여 있었다. 개인 보트는 2층 구조로, ‘운반자’가 태워준 낡은 상선과는 달리 깔끔한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재희는 보트에 타서 저택을 올려다봤다. 복층을 눈대중했다. 재희가 지금 묵는 방만 있다고 하기에는 양옆으로 훨씬 넓어보였다.  의문이 솟아오르려는 순간, 우성이 보트를 출발시켰다.

 

섬이 엄지손가락처럼 작아질 때까지 바다로 나아갔다. 날은 선선했고 수면에는 일렁이는 파장이 간혹 흰 거품을 흩트렸다. 보트를 운전하는 법은 언제 배운 걸까? 대학시절 우성은 어떤 스포츠든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말 예전 모습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어쩌면 서로가 공유하는 기억말고는 아무 것도.

 

재희는 소름이 돋았다. 전날 읽던 책을 가져왔지만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성이 세상 누구보다 어색하게 느껴졌다. 말없이 갈매기가 보트에 안착하거나 날아다니며 끼룩대는 소리를 들었다. 오 분쯤 흘렀을까. 갈매기들은 동시에 날아올랐다.

 

재희는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운전대에 몸을 기댄 우성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예전엔 정말 무식하게 키만 큰 웃긴 놈이었는데. 재희는 멱살을 잡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제 네가 하려 했던 이야기가 뭐냐고. 한국을 뒤로 하고 온 이곳에서 무엇을 겪었느냐고. 네 안에 예전의 우성이 남아 있기는 한거냐고.

 

재희는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우성의 머리 뒤, 또 다른 풍경이 재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먹구름이 수평선으로부터 다가오는 중이었다. 우성은 재빨리 시동을 걸었다. 엔진이 털털거리다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재희는 걱정스런 눈치로 하늘을 쳐다봤다. 먹구름은 빠르게 하늘을 뒤덮었다. 바다는 탁한 옥색으로 물들어간 지 오래였다. “기상청이 멍청한 건 모든 나라나 마찬가지인가 보지?” 재희는 괜히 농담을 던졌다. “진짜 기상특보 따위가 없었어.” 우성은 굳은 표정으로 운전대를 고쳐 잡았다.

 

이윽고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번개가 일렁이는 바다에 눈부신 빛을 흩뿌렸다. 재희는 운전대 옆에서 어떻게든 지지대를 붙들고 미끄러지지 않으려 했다. 파도가 보트를 양옆에서 거세게 밀어댔다. 보트 위로 침범해온 바닷물이 슬리퍼를 휩쓸어 갔다. 재희는 어느 정도 섬에 가까워졌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흔들리는 보트는 놀이기구마냥 사람의 혼을 빼놓고 있었다. 이와중에도 우성은 일어선 채 운전대에 딱 붙어 있었다.

 

마침내 재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빗줄기 사이로 커다란 파도가 몰려오고 있었다. 마치 섬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주먹을 내리쳐 생긴 물의 장막 같았다. 보트는 솟아오른 옥색 파도에 휘말렸다.

 

그리고 보트가 뒤집혔다.

 

 

 

3.

재희는 숨을 거칠게 토해내며 눈을 떴다.

 

검정색 바위로 된 울퉁불퉁한 천장이 가장 먼저 보였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가슴팍을 더듬었다. 목걸이는 그대로였다. 재희는 우선 안심했다. 동생이 유일하게 남긴 물건 중 하나였다. 재희는 여기가 어딘지 파악하고자 했다. 바로 전 기억을 더듬었다. 괴이한 존재들이 자신을 끌개마냥 잡아당기던 장면이 떠올랐다. 벌레의 알처럼 동그란 무언가 수없이 솟아난 피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언어와 파충류의 울음소리… 그 괴물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걸까?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김준연 교수는 나마란타 제도가 문명이 전혀 닿지 않는 위험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존재들일까? 유튜브 미스터리 채널로 숱하게 접한 영상들이 떠올랐다. 인간의 눈을 피해 땅굴에서 살아가는 이계의 존재들이라던지…. 온갖 망상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재희는 비틀거리면서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했다. 암벽을 꽉 잡고 몸을 바로 세웠다. 흙주머니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오른발목이 심하게 접질렸는지 통증이 파고들었다. 재희는 비명을 간신히 참아내며 발목을 부여잡았다. 찡그린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길게 이어진 터널 끝에서 빛이 새어들었다. 재희는 오른 벽면을 보았다.

 

암벽에 뼈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괴물들이 수많은 살점을 죄다 발라놓고 뼈만 남겨놓고 간 것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