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시스트

  • 장르: SF | 태그: #신체강탈자 #맑시즘
  • 평점×19 | 분량: 109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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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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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유 회원님의 몸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보관료가 발생하고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3월까지의 누적 보관료 : 200,000원
(주)콤프라꾸에르뽀

메시지를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어. 내 몸을 보관하고 있다고? 게다가 돈을 내라? 전화를 걸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고.

“안녕하세요. 콤프라꾸에르뽀입니다.”
“그쪽에서 보낸 메시지를 받았는데요. 제 몸을 보관하고 있다는 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입니다. 회원님의 몸을 저희가 보관하고 있다는 안내입니다.”

헛웃음이 나왔어. 하, 요것들 봐라. 차라리 돈을 보내지 않으면 납치한 딸의 장기를 팔아 치우겠다고 해라. 철 지난 납치극 피싱도 아니고, 신종 피싱도 정도껏이지. 이 무슨 근본도 씨알머리도 없는 개수작이란 말인가.

“아니 이봐요. 지금 제 몸은 여기서 이렇게 전화를 걸고 있잖습니까.”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가 회원님 전화 맞으시지요?”
“허 참. 네, 맞죠, 당연히.”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곧이어 비발디의 <화성의 영감>을 배경으로 명랑한 목소리의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어.

지금 회원님의 대여 이력을 조회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저희 콤프라꾸에르뽀는 회원님의 활기찬 삶을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 회원님의 대여 이력을···

와, 요즘 피싱 참 디테일하네. 소재도 참신하고 스토리도 짜임새 있어. 이걸 또 난 이렇게 기다리고 있잖아. 참 열심히들 산다. 내가 요즘 돈 좀 벌었다고 안이하게 살았나 봐. 반성 해야겠어. 아주 본받을 만해.

뚜.

벨소리와 함께 상담원의 목소리가 들렸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니 유소유 회원님께서는 이전의 몸을 맡기시고 다른 몸을 대여 중이십니다. 그런데 반납 기간이 지나셨네요.”

잉, 이건 또 뭔 스토리?

“아마 기억이 안 나실 거예요. 기록을 보니, 회원님께서 몸을 대여하실 때 기억 분리 옵션을 선택하셨거든요. 그런 분들은 이전 몸의 기억이 안 나실 수 있으십니다.”

상담원은 담담하고 친절하게, 차근차근 정성껏 안내를 이어갔어. 좀 황당무개한 얘기임에도 실로 진지한 태도였지.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어.

“에··· 그러니까 제가 몸을 빌린 기억이 없는 건, 제가 지금 이 몸을 빌릴 때 이전 몸의 기억을 심지 않기로 했다는?”
“네, 그렇습니다. 회원님.”

그렇네, 내가 기억을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하겠네. 묘하게 수긍이 가는 걸.

“어··· 그런데 제가 그런 옵션을 선택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죠?”
“그래서 저희가 이렇게 메시지로 알려드리는 거고요. 저희 센터로 방문하시면 이전 기억을 직접 확인하실 수 있답니다.”

아, 그렇지, 직접 확인하면 되겠네.

“한마디로 지금 제 몸은 빌린 거고, 원래 제 몸은 그쪽에서 보관 중이라는 거네요.”
“네, 맞습니다, 회원님.”

결국 지금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라는 얘긴데.

“어··· 그런데, 제가 그··· 원래의 몸을 꼭 찾아야 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대여 기간이 지나셨거든요.”
“어··· 그래도 제가 안 찾으면요?”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으신가요, 회원님?”
“사정이라기보다는··· 그게 좀 귀찮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미반납 몸에 대한 연체료와 보관하신 몸에 대한 보관료가 계속 불어납니다, 회원님.”

아, 연체료와 보관료. 모든 상황을 이해했음에도 어안이 벙벙했어. 그런데, 어떻게 반납하라는 거지? 어디 도서반납함 같은데 들어가는 건가? 나는 무어라 할 말을 잃고 얕은 탄식만 반복했어.

“어··· 그러면··· 에···”

상담원은 조금 낮은 톤으로 싸늘하게 말했어.

“그럼에도 계속 반납을 미루신다면, 어쩔 수 없이 저희쪽에서 수거를 합니다, 회원님.”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