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 인생의 절반을 손해봤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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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님이 없다.

 

 

이렇게 축 처지는 문장으로 시작하게 되서 미안하다. 이름으로 여는 자기소개보다는 언제나 이렇게 소개하는 편이 빨랐다. 이제는 익숙하다. 내 나이 스물넷. 아직도 무전직. 남들 일곱 살 때부터 하는 게 1차 전직이었으니, 망캐도 이런 망캐가 없다.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다. 나라고 동정표 받는 게 익숙한 건 아니니까. 캐릭터 생성부터 패배하고 시작하는 이야기따위 아무도 플레이하고 싶지 않을 걸 안다.

 

 

패드립이라고 하더라.

 

 

요즘 뭐 하나 제대로 못 하면 뭐 없는 자식, 어디 고아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툭 하면 어머니 아버지를 찾고. 골드를 벌기 위해서는 퀘스트가 필수다. 근처 시장에서도 퀘스트 형식으로 교환이 이루어지곤 한다. 그러다 한 번씩 요구 수량보다 적게 가져가는 실수를 할 때도 그런 소리를 듣곤 한다. 애미, 애비. 그럴 때면, 정말 내가 부모가 없어서 이렇게 모자른 건지. 부모 없는 애들은 모두 모자르니까 저런 욕이 만들어진 건지. 그냥 남들이 하는 위로처럼 그런 말을 뱉은 저 사람이 나쁠 뿐,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 건지. 글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누구나 캐리할 수 있단다.”

 

 

내가 살던 고아원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인식이 있을 때부터 곁에 부모님이 계신 적 없었다. 그러니 내겐 이 분이 부고, 모였다. 매일 입고 다니는 초보자용 초록색 로브도 직접 원단까지 구해 재봉해주셨다. 찻잎과 차향의 연관성을 알려주시곤 했다. 찻잎이 이런 모양이면, 이런 향이 난단다. 원장님, 그렇다면 제게선 무슨 향이 나나요. 맞아요, 저 같은 고아요. 악에 악을 질렀다.

 

 

“호한테서는, 글쎄. 오늘도 머리를 감지 않았구나.”

 

 

주름진 손이 목 뒤 여린 살을 쓰다듬었다. 그 감촉은 목 뒤에 사는 영혼에 도장을 찍었나보다. 요즘도 가끔 그 온기가 느껴진다. 막 또 쓰다듬고 가신 것처럼. 그 손길이 마지막이어서 더 오래 남은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쉽게 죽는다. 찻잔 위로 푹 하고 떨어진 원장님의 고개는 다시는 미소를 머금고 올라오지 않았다. 심근경색. 무슨무슨 한자를 쓴다던데,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정확히 어떤 병인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건, 어느 날 심장이 멈추셨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셨다는 것. 열여섯 살 때였다.

 

 

그래, 인간은 쉽게 죽는다. 내가 인간 언저리라도 맞다면 쉽게 죽기를 바랐다.

 

 

“끅, 끄윽.”

 

 

경매에 붙혀져 아무도 없는 밤 고아원, 닿지도 않는 샹들리에에 한참 동안이나 밧줄을 걸었다. 죽는 데에도 키높이가 필요하다니. 간신히 목을 매자마자 숨은 졸리는데, 매듭은 중학생 손으로 맨 것이라 단단하질 못했다. 가볍게 마루바닥에 떨어져 꺽꺽대며 목을 감싸쥐었다. 칼도 써봤다. 손목을 그은 다음 물에 담그면 농도차이 때문에 피가 쫙 빠져 죽는다고 했다. 죽는 데에도 과학 지식이 필요하다니. 아무리 살을 파도, 커터칼로는 큰 혈관을 찾을 수 없었다. 너무 아파서 그만뒀다. 손목을 감싸쥐고 엉엉 목놓아 울었다. 아무나 죽는 게 아니었다.

 

 

쉬운 일이 없다. 내가 바라서 태어난 거 아니다. 낳아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내던져졌다. 죽는 것 정도는 쉽게 해주면 안 되나. 나도 엄마 달라고, 아빠 달라고 하는 거 아니잖아. 시작은 내 마음대로 한 거 아니었어도, 끝 정도는 낼 수 있게 해달라고. 듣는 사람도 없는 텅 빈 고아원, 불 꺼진 침묵을 향해서 악을 질렀다. 원장님이 다가오셔서 대답이라도 해주셨으면 했다. 매번 하시던 말씀 중에 하나.

 

 

“서렌은 없단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그 인자한 미소가 어찌나 비웃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렇게 혼자가 된 나는, 24년째 무전직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힘든 잉여인간이다.

 

 

 

 

 

 

 

언제 망하냐 그때 올란다

 

버그X망겜

 

1부 1장.

 

인생의 절반을 손해봤어

 

 

 

 

 

 

 

 

초보자용 로브를 뒤집어 썼다.

 

 

시선은 화강암을 도보처럼 배열해 놓은 길바닥 위에 고정한다. 이렇게 걸으면 주변 사람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거 같아 편하다. 실제로는 내가 보지 않을 뿐이지만. 가끔 보면 나는 타조에 가깝다. 고개만 땅에 파묻으면 아무도 자기를 보지 못할 거라 믿는 짐승. 이런 보행법의 단점은 앞을 잘 보지 못해 꼭 마주오는 사람과 부딪힌다는 거다. 얼른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허리를 수그리면 대다수는 모른 척 넘어가주지만, 가끔씩 그러기 힘든 경우도 있다.

 

 

“죄송하다는 말이, 죄를 지어서 송구스럽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사과했으니 얼른 꺼져달라는 말인가요?”

 

“죄송합니다······.”

 

“자꾸 어디를 가시려는 거에요? 얼른 도망가버리면 그만인가요?”

 

 

잘못 걸렸다. 조목조목 따지는 말마다 맞는 말인 이 붉은 머리 여자는 쓸데없이 목청이 좋았다. 게시판 근처 광장 한가운데에서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주변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봐버리고 만다고. 대인관계 경험이 전무한 나같은 히키코모리 아싸에게는 너무 커다란 자극.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걸 알 리가 없는 여자는 손으로 자꾸 툭툭 치며 더욱 목청을 돋웠다. 고개를 들 수가 없으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녀의 손등. 손등의 반장갑에서부터 손가락과 팔로 이어지는 문신은, 간이 마법진이었다. 마법사다. 대체로 성격이 좋지 않은 집단. 수많은 과제와 쪽지시험에 치여서인 것 같다.

 

 

“가뜩이나 이번 패치에서도 암살자들 너프 안 당해서 열받아 죽겠는데.”

 

 

다행히도 옆에 있던 친구가 말리고 나서줬다.

 

 

“야야, 그만해. 죄송하다시잖아.”

 

“딱 봐도 암살자잖아. 음침하게 생겨가지고.”

 

“나도 암살잔데,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이 법징징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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