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당 밑에서 일한다.
이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 신기 있었어?’라고 놀란 듯이 말하거나, ‘어쩌다 그런 쪽으로 가게 된 거야?’라며 동정섞인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틀렸다. 나는 무당 밑에 ‘디자이너’로 취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기가 막힌 사연이 있지만 생략하자. 그보다는 나의 고용인, 18만 유튜버(그새 5만이 늘었더라) ‘무당언니’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근 한 달 간 관찰한 내용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1. 사기꾼?
고용인에게 이런 불순한 마음을 품고 싶지는 않지만, ‘이 사람 사기꾼 아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생각을 심어주었던 첫 경험은, 이곳에 들어온지 며칠도 되지 않은 점심시간에 일어났다.
무당언니와 나는 단 둘이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어색한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 무엇이라도 대화할 거리가 없나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그러자 어제 상담할 때, 무당언니가 장군신을 모시고 있다는 말을 주워들은 것이 기억났다.
“그, 장군신 모시시는 거 맞죠?”
“응, 맞지.”
“혹시 어떤 장군이세요? 이름이라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한때 오컬트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았기에, 무당은 각자의 신을 모신다는 사실 쯤은 알고 있었다. 그 신은 운명처럼 찾아온다는 것과, 무당의 몸에 빙의해 점괘를 내려준다는 것도. 또한 신마다 나름의 급이 있다는 것까지.
그래서 무당언니가 모시는 신은 어떤 장군일까 기대하던 내가 들은 답은,
“잔다르크 장군.”
이었다.
“예?”
“잔다르크라고.”
옛 시대에 한반도 전장을 누볐을 친숙한 이름을 기대하고 있던 내 머릿 속에 혼돈이 가득 찼다. 잔다르크? 내가 알고 있는 잔다르크가 맞나?
“진짜 그 잔다르크예요? 중세 시대에?”
“어.”
그렇구나, 잔다르크…….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저 멀리 타국에서 돌아가신 장군님도 충분히 한국의 어느 무속인의 몸에 들어올 수 있지.
열심히 이해해보려는 나에게, 누를 수 없는 호기심이 피어났다. 그럼 신과 소통할 때는 무슨 언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잔다르크는 프랑스 출신이니까 불어인가? 사실 무당언니는 불어에도 능통한 엘리트였던 것인가? 그런데 잔다르크와 대화하려면 중세 프랑스어를 써야 할텐데?
하지만 나는 입사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신입 직원일 뿐. 최대한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어조를 제거한 채 맞장구 용 질문을 던졌다.
“아하, 그럼 잔다르크 장군님이 사장님 몸에 내려오신 거죠?”
“아니, 그냥 멋있어서 갖다 쓴 거야.”
그러고는 밥을 다 먹었으면 나가자며 계산을 하러 갈 뿐이었다. 나는 헛생각을 하다 식은 국을 허망하게 바라본 채, ‘그럼 잔다르크는?’ 하고 곱씹을 뿐이었다.
2. 장사꾼?
내가 무당언니를 처음 알았던 것은 유튜브를 통해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당언니의 행동범위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몇 년 째 이어온 네이버 블로그부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마트스토어, 중고마켓 등 무수한 플랫폼에 발을 뻗친 소득 파이프라인의 귀재였던 것이다.
나는 회사 생활을 5년 넘게 하면서도 부업 하나 시작해볼 생각은 못했는데, 무당언니와 자신을 비교하니 자괴감이 생길 정도였다.
어쨌든 무당언니가 얼마나 많은 창구로 소통을 잘 하든간에, 유일한 직원이 된 지금은 모두 내가 관리해야 할 업무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업무인가? 이 부분이 바로 내가 무당언니가 극심한 장사꾼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 이유이다.
당신은 아는가? 요즘은 인스타그램에서도, 수공예품 판매 플랫폼에서도, 심지어는 중고거래 어플리케이션에서도 부적을 주문제작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당언니는 그 중에서도 꽤 인기있는 판매자였다.
하지만 당신이 이것은 모르리라 확신한다. 그 부적은, 내가 쓴다. 신기라고는 내일 먹을 점심조차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없으며, 신을 모신 적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교회에서 케이크를 얻어먹기 위해 믿는 척 했던 잠깐 뿐이며, 귀신을 본 적이라고는 영화 속에서밖에 없고 그마저도 눈을 반쯤 감고 보는 내가. 이런 내가 출근 첫날부터 부적 쓰기 연습을 해서, 지금은 판매용까지 제작한다.
겨우 나 따위가 만든 부적을 사람들에게 팔아도 되는지 믿을 수 없어 무당언니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이게 정말 효과가 있느냐고. 그러자 무당언니는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담아 작성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나의 의심스러운 눈빛이 떠나질 않자 ‘이건 일종의 테라피다’, ‘사람들은 효과를 바라고 사는 게 아니다’라며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네가 디자이너니까 부적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해라’라고 덧붙이더니, ‘역시 디자이너라 부적도 예쁘게 잘 뽑지 않느냐’라며 칭찬을 섞어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하필 백수시절에 주민센터 문화회관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운 적이 있어, 내 부적은 누가 봐도 그럴싸해 무당언니의 말이 얼핏 납득되려 했다. 하지만 ‘부적 디자인’이라니. 고등학교 때 미술학원에서 입시를 다닐 때도, 대학교 때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을 때도, 현업 UX/UI 디자이너로 일하면서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분야의 디자인이다.
부적 디자인 같은 것을 하다 보면 앞으로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 걸까? 토속신앙 및 종교계 디자인이라는 틈새시장으로 진출하게 되는 걸까? 너무 조그마한 틈새에 끼어 죽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어쩔 도리 없이, 인기 있다는 건강 부적과 재산 부적을 끊임없이 찍어내고 있다. 장사꾼이라 생각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 장사꾼의 일개 직원에 불과할 뿐이었으니까.
3. 부자?
최근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다. 위에서 서술한 장사활동이 사실은 무당언니에게, 그저 취미에 불과하다는 것. 무당언니는 각종 잡스러운 벌이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자금이 여유로웠다. 본업인 무당 일이 야말로 그에게 엄청난 벌이를 가져다주는, 진정한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무당언니의 고객층은 결혼운을 점치는 연인이나 자식의 시험합격을 기원하는 중년같이 소소한 범위가 아니었다. ‘큰손’이었다. 이를 테면 다음 총선을 기대하는 국회의원이나 해외로의 사업 확장을 기원하는 CEO 같은 사람들 말이다.
무당언니는 이들을 위해 몇날 며칠에 걸쳐 성대한 굿을 하거나 아주 세밀한 신점을 봐주었다. 나는 아직 이런 상황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최근 구설수에 휘말린 정치인 한 명이 무당언니를 찾아와 상담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엿들은 바에 의하면 하루만 굿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비용이었다.
이런 큰 건의 일이 간헐적으로 들어와 무당언니의 지갑을 채우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어떻게 될까? 정답은, 스포츠카가 된다. 나도 무당에게 스포츠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타보기 전까지는.
오늘은 내가 근무를 시작한 이후로 첫 외근이 있는 날이었다. 그덕에 무당언니의 차를 얻어타게 되어, 처음으로 새빨간 스포츠카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와, 이거 뚜껑도 열려요?”
“응. 한번 열어줄까?”
“아뇨, 오늘 미세먼지 매우나쁨이라….”
이런 값비싼 차를 타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자꾸만 차 내부 이리저리에 시선이 갔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면서도 ‘나는 이런 차 언제 운전해보나’, ‘이 차 한 대가 내 연봉보다 비싸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운전할 수 있댔나?”
“저요? 엄마 차로 가끔 하기는 하는데 잘 하지는 않고, 그렇네요.”
“그래도 할 수는 있네.”
“운전은 왜요?”
“혹시 모르잖아. 내가 운전하기 힘든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우와, 그럼 제가 이 차 운전해도 돼요?”
“……지금 보러 가는 사람이 스포츠 의류 브랜드 Y의 대표라는 거 알고 있지?”
무당언니는 대답을 회피하더니 일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럼 그렇지, 나였어도 초보자한테 스포츠카를 운전하게 해주진 않을 것 같았다.
“네, 꽤 유명한 브랜드잖아요. 저도 거기 트레이닝복 하나 있는데.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일까요?”
나도 자연스럽게 변경된 화제에 맞추어 대답했다. 그렇다. 오늘은 큰손을, 그것도 그분의 집까지 친히 뵈러가는 길이었다.
“글쎄, 자세히는 가봐야 알겠지.”
“역시 돈이 많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나봐요.”
“그렇지. 다들 절실하니까 나같은 사람을 부르는 거고.”
무당언니는 그렇게 말하더니 매끄럽게 핸들을 돌렸다. 멀리 큰손이 거주한다는 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