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눈때기: 뭐가 보입네까?

남쪽눈때기: 뭐가 보입네까?

— 본 작품은 무료이지만, 로그인해야 읽을 수 있습니다. —
미리보기

<첫 번째 인터뷰>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여기까지 또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말씀드렸듯이 오후에 상담이 잡혀 있는데 그분이 워낙에 간곡한 터라 조정할 수가 없었어요. 아이고, 이런. 일단 앉으시겠어요? 저번에 왜 그 커피 있잖아요. 베로나 원두로 내린 거 말이에요. 그거 엄청 맛있다고 하셨던 게 기억나서 준비해 놨답니다. 이번엔 아이스예요!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으니까요.

 

아, 민석이요? 미술 학원 갔어요. 자기는 굳이 있을 필요가 없을 거 같다면서 나갔어요. 편하게 얘기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걘 평소에도 시간 날 때마다 학원에 가요. 사람들한테 더 잘 그려주고 싶대요.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해하는데 지금 실력으로 들이미는 건 죄짓는 거나 마찬가지라면서.

 

후⋯⋯. 근데 또 여쭤보는 거지만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제 이야기가 특이하긴 하겠지만 뭐랄까, 상품성이랄까 그런 게 있을지⋯⋯. 진짜 영화 보러 아무도 안 오는 건 아니겠죠? 네? 하하. 하긴 그렇네요. 맞습니다. 감독님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저는 그냥 걱정이 돼서⋯⋯. 어쨌든 다른 오해는 마세요. 아셨죠? 음, 두 분 커피 더 드릴까요?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알겠습니다. 편하게, 편하게.

 

막상 시작하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네, 그럴게요. 친구랑 수다 떨듯이.

 

아! 어쨌든 이 얘기는 ‘실화’라고는 안 밝히는 거 맞죠? ‘비밀 유지’ 아시죠?

 

 

 

겨울, 그러니까 지난 십이월 초쯤이었어요. 대학 졸업반이었던 전 그해 하반기 공채에서 모조리 떨어지고 다음 해 상반기 공채를 준비하고 있었죠. 그날이 목요일인가? 아무튼 그랬는데 신촌에 영어 학원 갔다가 스터디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어요.

 

안 그래도 팀원 중에 짜증 나는 애가 있어서 아니,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는 녀언, 자애가⋯⋯. 여,자,애가 있었는데. 아니에요. 욕한 거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아무튼 도대체 왜 토익 스피킹 학원에 다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걔 때문에 자신감만 떨어져서 기분을 망친 상태로, 거기다가 비행기보다 배차 간격이 넓다는 그놈의 경의중앙선이 또 연착까지 해서 짜증이 엄청 난 상태로 문산역에 내려서 집으로 가고 있었거든요.

 

근데 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난 직후부터 바람이 막 불더니 꽃향기가 엄청 나는 거예요. 그죠? 이상하죠? 겨울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기분이 잠시 나아졌는데 딱 거기까지였어요.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따갑고 뻑뻑하고 진짜 괴롭더라고요. 토익 스피킹을 따로 배워야 하는 그 미국 유학파 째려보느라 인공 눈물도 다 쓴 상태였기 때문에 완전 죽을 맛이었어요.

 

그래도 눈을 한참 동안 감고 있으면서 억지로 하품까지 몇 번 하니까 눈물이 조금 났고 효과가 있었는지 견딜 만하더라고요. 원래는 근처 약국에 들렀다가 마을버스 타려고 했는데 마침 또 버스가 오는 게 아니겠어요? 기다리기도 싫고 집에 가면 인공 눈물이야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탔죠.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는 세수를 수십 번도 넘게 하고 눈물도 왕창 넣었어요. 괜찮더라고요. 다음 날 일어나기 전까지는요.

 

다음 날 일어나 보니까 세상에⋯⋯. 두 눈 다 너무 아프고 눈곱도 엄청 많고 결정적으로 온 방이 뿌옇게 보이는 거예요. 놀라서 엄마랑 일단 가까운 안과로 갔죠. 백내장 증상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급속도로 여러 합병증 증상들까지 동반하는 건 처음 본다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어요. 저는 겁이 나서 눈물이 벌컥 쏟아지고 엄마는 괜히 의사 선생님께 애가 나이가 몇인데 벌써 백내장이냐고 따지고 선생님은 백내장은 수술하면 문제없고 다만 급성에 합병증 증상이 있으니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까지 받으시라고 말씀드리는 거라고 당황하면서도 저흴 달래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래서 곧바로 일산에 동국대 병원으로 갔어요. 제가 응급실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내내 옆자리에 없었어요. 불안하게 말이에요. 나중에 어디 갔었느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빨리 안 해주는 거 같아서 진상 좀 부렸으니 거기까지만 알고 있으라고 하더라고요. 원래 퇴원하는 날 엄마랑 응급실 간호사 언니들한테 사과하러 가기로 했었는데 그날 아침까지도 무슨 검사를 몇 개를 하는지, 퇴원 수속까지 하니까 지쳐서 바로 집으로 갔지 뭐예요. 그 뒤에 시간 내서 찾아가려니 아팠던 기억이 떠올라서 못 가겠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아무렇지 않게 다녀올 수 있을 거 같아요.

 

아! 우리 아빠. 아빠는 그날 일찍 퇴근해서 제 짐 가득 챙겨서 저녁 시간 전에 병실로 뛰어왔어요. 평소엔 센 척하더니 그렇게 놀란 표정한 건 제 기억엔 거의 처음이었어요.

 

어쨌든 입원해서 검사 받고 수술도 잘 받긴 했는데 대신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정확히는, 눈 한 쪽씩 하니까 총 네 번이죠. 그리고 입원도 삼 주 정도나 했어요. 요새 백내장 수술은 한 시간도 채 안 걸리고 아, 진짜 특별한 경우 아니면 눈당 한 번만 하고요. 입원도 따로 안 하거든요. 하루하루 지날수록 저는 많이 나아진다고 느꼈는데 의사 선생님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시더라고요. 정말 흔치 않은 경우라면서. 네? 지금은 멀쩡해요. 아시겠지만, 너무 잘 보여서 탈이죠.

 

음, 음. 웬일이야. 말이 술술 나오네요! 저 물 좀 가져올게요. 물 드시겠어요? 커피?

 

 

 

저, 근데 치료 받은 얘기가 너무 복잡하지 않았나요? 아. 그럼 다행이네요. 어쨌든⋯⋯. 십이월 말에 퇴원해서 새해로 넘어갈 때까지 집에서 또 쉬었어요. 의사 선생님이 조금만 더 참아서 확실하게 마무리하자고 말씀하셨거든요.

 

신정 다음 날, 지나치게 쌩쌩한 두 눈으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어요. 이상이 전혀 없다는 확인 도장까지 받으니까 미친 듯이 개운하더라고요. 그런데 곧장 짜증이 났지 뭐예요. 강의 환불 받으러 신촌 영어 학원까지 직접 가야 했거든요. 병원에서 또 돈 들여서, 각종 서류까지 떼서, 학원에 보내서, 환불 승인은 받았는데 직접 와야만 카드 취소를 해 준다는 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린지. 난 온라인으로 신청했는데?

 

아무튼 학원 볼 일까지 다 끝내고 밀크티 한 잔 마시면서 진정을 좀 했죠. 서울까지 나왔으니 친구도 만나고 집에 갈까 했는데 무리하지 않으려고 그냥 전철 타러 갔어요.

 

일산 지나고 운정 지나서 월롱역을 막 떠난 참이었는데⋯⋯. 그때, 보이기 시작했어요.

 

맞은편 남자분과 눈이 마주쳤을 때, 그분을 중심으로 어떤 다른 화면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어요. 증강 현실 화면처럼 말이에요. 아시죠? AR? 사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순간에는 AR이고 뭐고 생각도 안 났었죠. 나중에나 알았죠.

 

어쨌든 저는 너무 놀라서 미친 듯이 눈을 깜빡거렸어요. 겁이 나서 아무 소리도 못 냈죠. 그러다가 다시 눈이 마주쳤어요. 헛것이 아닌 게 분명하더라고요. 전 허겁지겁 가방을 뒤져 안약을 모조리 꺼낸 뒤에 통째로 들이붓다시피 했어요. 네, 맞아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땐 제가 흥분한 저를 말릴 수가 없었어요.

 

맞은편 그분은 표정을 있는 대로 일그러트리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출입문이 닫히기 전에 뛰어나가 버렸어요. 다음 역인 파주역은 자기가 내릴 곳이 아니었던 거죠. 제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고요. 완전 이해해요. 뭔가 싶었겠죠. 엮이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상담에 식사까지 대접하고 싶어서요. 얼마나 불쾌했겠어요?

 

아, 네. 그게 어떤 화면이었냐면요. 제가, 이렇게 돌아서 말씀드리면 이해하기 더 편하시겠죠?

 

그 남자분이 전철 의자에 앉아 있는데 의자 위로 나무색 평상이 겹쳐졌어요. 그러니까 마치 그분이 평상에 앉아 있는 듯했죠. 평상 오른쪽엔 한 아주머니가 나타났는데 쪼그려 앉은 채로 큰 바구니 속에서 뭘 꺼내고 있었어요. 옥수수였나? 아무튼 엄청 굵었어요. 그다음 평상 왼쪽엔 조금 떨어져서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아저씨가 있었어요. 아주머니보다 훨씬 흰머리가 많으셨어요. 세 사람 뒤로는 아담한 기와집이 보였고요. 그러니까, 화면 배경을 채운 셈이죠.

 

저는 문산역에 내려서 개찰구로 나가기 전에 플랫폼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있었답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수술이 잘못됐나? 부작용인가? 아닌데, 아침에 병원 갔다 왔는데, 아무 이상 없다고 했단 말이야. 근데 도대체 이게 뭐냔 말이야. 엄마 아빠한텐 뭐라고 해야 하지. 내 말을 믿어줄까? 인제 어쩌지? 중얼거리기까지 하면서요.

 

그치만 혼자 이런저런 생각한다고 답이 뚝딱 나올 리 없었죠. 대신 어느 순간 저는 맞은 편 남자분의 눈을 통해 보았던 장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중간에 젊은 남자와 오른쪽과 왼쪽에 나이 드신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들은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제가 느끼기에 그들 사이에서 어색함이나 위화감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어요. 그냥 한 공간에 있어도 편안한 듯한 모습. 저는 아마도 세 식구인 가족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나무색인지 진짜 나문지 아무튼 마당에 놓인 평상에, 옥수수에, 기와집은 종합해 보면 시골 마을 주택 같았고요. 다만 특이한 건요. 하하, 물론 이 자체가 특이하긴 하지만⋯⋯. 아무리 시골이라 해도 그 평상에 아들 빼고 부모님 머리나 옷 스타일이 약간 칠팔십 년대 느낌? 또 생김새는 아주 미묘하게 낯설었는데 중국인 같기도 했고요. 아니, 제 말은 스타일 말고 생김새를 말하는 건데 어쨌든 그럼 결론은 중국 시골집의 과거 모습인가? 내가 수술 부작용으로 중국의 과거를 보는 건가? 제가 문산역에서 미쳐가고 있더라고요.

 

그러고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하면서 말이에요.

 

어찌 됐든 안정을 취하려면 집으로 빨리 가야 했으니까, 게다가 사실 점심때가 지나서 배도 엄청 고팠거든요. 문산역을 나서는데 사람들하고 눈 마주칠까 봐 무서워서 피해 다니려는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사람이 엄청 많은 거예요. 평일인데. 아예 안 마주칠 수는 없겠더라고요. 근데, 아무 일 없었어요. 마을버스 타고 동네까지 그리고 집까지 가는 동안 AR 화면 따위는 눈에 띄지도 않았거든요. 그다음엔 밥 먹고 저녁까지 푹 쉬었어요. 상반기 공채 계획 세우면서요.

 

적당히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엄마랑 아빠가 집에 오니까 대번에 그 가족이 생각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저는 점심을 늦게 먹어서 저녁은 생각이 없다고 하고 방에서 혼자 끙끙 앓았죠. 말할까 말까 하고. 그땐 왜 그렇게까지 고민했는지 진짜 잘 모르겠어요. 부모님은 나중에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지지해 줬을 텐데. 그때 바로 털어놨더라면 어색하게 숨기는 일은 안 해도 됐을 텐데 말이에요. 음, 어쩌면 지겨운 병원에 또 가기 싫은 철없는 마음이 제 어딘가에 숨어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다음 날, 아빠에 이어 엄마까지 출근을 하자마자 저는 씻지도 않고 옷을 갈아입었죠. 홈플러스에 가려고요. 거기에 가서 테스트해 볼 참이었거든요. 맞다. 그 전에, 당연하게도 엄마 아빠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죠. 아무튼 마트 개점 시간에 들어가서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 눈을 쳐다봤어요. 시비가 안 붙은 게 천만다행이었죠. 대신 점심시간이 지날 때쯤 되니까 보안 직원이 왠지 저한테 다가오는 느낌이 들어서 얼른 도망쳤어요.

 

테스트 결과요? 그 당시로선 완벽한 성공이었죠. 이상한 화면 따위는 아예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 아무 이상이 없다고 결론 내리고 곧바로 전날 만나려고 했던 친구한테 연락했어요. 커피 한잔하자고요. 친구랑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떨면서 깔끔히 잊어버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네? 아, 화장실이요? 이쪽으로 가셔서 끝에서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있어요. 하하, 제가 너무 쉴 새 없이 떠들었죠. 원래 이렇게까진 말이 많지 않았는데 상담하면서 얘기를 계속하다 보니까 수다쟁이가 돼 버렸지 뭐예요.

 

아. 네, 네. 맞아요. 이제 두 번째 일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어요. 진짜 시간이 애매하네요. 그래도 제가 잘은 모르지만 투자자 미팅에 늦으면 안 되잖아요! 아이고, 천만에요. 얘기 잘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참, 민석이 오면 소개해드리려고 했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리네요?

 

모레 오후요? 음, 마침 상담이 없네요! 좋아요. 근데 이번엔 제가 서울로 갈 거예요. 매번 여기까지 오시라고 할 순 없거든요. 괜찮으시죠? 어휴, 아니에요. 여기에만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요. 네, 그럼 조심히 가시고 모레 뵐게요!

 

 

 

<두 번째 인터뷰>

 

 

 

저, 안녕하세요! 근데 언제 오셨어요? 저는 저쪽 구석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는데. 네, 서로 못 봤나 봐요. 잠깐만요. 짐 좀 챙겨 올게요. 아니에요, 저만 움직이면 되는데요 뭘. 잠시만요.

 

네? 맞아요. 이거 아메리카노예요. 아⋯⋯. 그게 여기 시그니처 메뉴구나. 이름도 맘에 드네요! ‘홍대라떼’라니. 오, 정말요? 감사합니다! 사양 따윈 하지 않을게요.

 

와, 진짜 맛있네요!

 

 

 

제가 어디까지 말씀드렸어요? 아. 그래서 아무튼 친구랑 약속을 잡자마자 그대로 마을버스 타고 전철 타고 공덕역으로 향했어요. 서울 나가는 옷차림 치고는 영 추레했지만 전 자신 있게 두리번거렸죠. 왜냐면 눈엔 아무 이상이 없었으니까요!

 

홈플러스와 마찬가지로 진짜로 그랬어요. 특히 그 화려한 배차 간격을 자랑하는 경의중앙선 열차에 꽉 들어찬 사람들하고 꽤 많이 눈이 마주쳤는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또, 또 나타난 거예요! 그때 당시 감정으로 빌어먹을 환영이요.

 

공덕역 근처에 옛날 주택을 개조한 이쁜 카페가 하나 있거든요. 추레고 뭐고 저는 친구랑 거기서 보기로 했었어요. 제가 갑자기 연락한 탓에 친구는 좀 늦는다고 하더라고요. 먼저 도착한 저는 카페 외부 사진을 한 장 찍고 대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유명한 곳이라서 그런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줄 선 채로 기다리고 있었어요.

 

맨 뒤에 섰죠. 어휴, 줄이 안 줄어서 엄청 지루하더라고요. 빨리 커피 한잔 마시고 다 씻어 내 버릴 참인데. 친구도 늦고 말이죠. 그래서 빵 메뉴랑 굿즈 검색도 하고 줄 안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면서 안쪽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그러고 있었죠. 거긴 말씀드렸듯이 옛날 집을 개조한 곳인데 외형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본채 앞에 마당도 있고⋯⋯. 아무튼 마당 쪽을 둘러보는데 누가 자꾸 눈에 띄는 거예요. 마당에도 테이블이랑 의자가 있거든요. 어쨌든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계속 그쪽으로 눈이 돌아가더라고요. 그러다가 줄이 조금 줄고 또 조금 줄자 그 사람하고 거리가 더 가까워졌고⋯⋯. 눈이 마주쳤고, 환영이 나타났죠.

 

그 두 눈을 통해 본 모습은 이런 것이었어요. 언니, 나중에 알았죠. 저보다 두 살 언니더라고요, 암튼 언니 뒤로 노란 갈대밭이 펼쳐졌어요. 그보다 더 뒤엔 조그맣게 보이는 나지막한 산봉우리가 세 개쯤 솟아 있었고요. 위로는 구름 가득한 하늘이 있었죠. 언니는 카페 의자 대신 높고 큰 돌에 앉아 있었는데 옆에도 그만한 돌이 있고⋯⋯. 누군가가 앉아 있었어요.

 

군인인 거 같더라고요. 그리고 그 젊은 군인은 언니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상체를 튼 자세로 언니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요. 보자마자 알겠더라고요. 아, 커플이구나. 근데. 안 그래도 헛것이 보이는 판국에 돌아 버리겠는데 그중에서도 이상한 점이 있었답니다.

 

분명히 군인 같은데 옷 색깔이 갈색빛이더라고요. 모자도 엄청 크고 말이죠. 자세힌 몰라도 우리나라 군인은 아니구나 했죠. 그렇다면! 중국군인가? 역시 내가 이상해진 눈으로 중국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인가? 아니 근데. 가슴팍에 저 빨간 배지는 뭐야. 헉. 혹시 김일⋯⋯. 또 미쳐가기 시작했죠. 저는 무의식적으로 들고 있던 휴대폰으로 사진을 막 찍었어요. 언니를 향해서요.

 

다행히 언니가 제가 완전히 미치는 걸 막아 줬어요. 친절하게는 아니었죠. 갑자기 저에게 달려와선 저를 줄에서 끄집어내더니 마당 저 구석으로 끌고 갔어요. 체구가 큰 편이 아니었는데도 힘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러고서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게 아니라 정말 무섭게 목소리를 쫙 깔아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나를 왜 그런 식으로 계속 쳐다보냐, 도대체 사진은 왜 찍은 거냐⋯⋯.

 

언니 말투엔 뭐랄까 약간 낯선 억양이 있었는데, 뭔가 조금 다른 서울말 같기도 했고요. 당연히 그게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지만요. 어쨌든, 제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었죠. 전 그때 친구가 오고 있다는 사실도 아예 잊은 채였어요.

 

그게 아니라⋯⋯. 전 차근히 대답하기 시작했답니다. 지난달 초에 난데없이 백내장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거의 한 달을 병원에 있었다, 어제 드디어 완치 판정을 받긴 했는데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언니가 더 세게 노려보면서 쓸데없는 말은 모조리 집어치우라고 하더라고요. 어휴, 진짜 무서웠어요. 완전 센 언니한테 제대로 걸렸구나 싶었죠.

 

저는 카톡, 카톡, 울리는 줄도 모르고 바짝 움츠러든 채로 무의식적으로 언니라고 부르면서 눈을 봤을 때, 언니 눈을 봤을 때 다른 화면 그러니까, 어떤 다른 장면이 언니 주위에 나타났다, 나는 그걸 보고 있었다. 언니가 기가 찬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리더라고요. 미친년, 어머, 죄송해요. 요새 스트레스 때문인지 가끔 욱해서요⋯⋯. 아무튼 정신 나간 사람인 줄 알았겠죠. 실제로도 그렇게 저를 쳐다보고 있었고요.

 

그러곤 언니는 그만 됐고 자기 보는 앞에서 사진이나 지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순간⋯⋯. 너무 억울한 감정이 복받치는 거 아니겠어요? 사진이야 물론 싹 지우겠지만 제가 미친 건 아니잖아요. 눈에 보이는 걸 어쩌겠어요.

 

그래서 전 센 언니 앞에서 소심한 객기를 부렸죠. 죄송하고 당연히 사진은 깨끗이 지울 건데 혹시 그 장면이 궁금하진 않냐고. 그러면서 바로 그 군인분이 언니를 많이 아끼는 것 같았다고, 그런 표정이었다고 말했어요. 둘이서 나란히 갈대밭 앞에 앉아 있었다는 것도요.

 

왜, 우리가 보통 ‘하얗게 질린 얼굴’이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실제론 표정만 굳어진 거지 피부색은 달라진 게 없는데도 쓰는 그 말이요. 근데 그땐 아니었어요. 진짜로 언니 얼굴이 외계인처럼 새하얗게 변하더라고요. 그러곤 잠시 멍하니 서 있었어요. 언니, 언니 하고 두어 번 불렀는데도 말이에요. 그 틈에 저도 뭔가가 생각이 났답니다. 저는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카톡이 엄청 와 있었어요. 그 전에 제가 알아차리지도 못한 메시지들이었죠. 대충 읽어 보니 이거더라고요. 기다리던 그 일이 갑자기 잡혔다, 미안하다, 네 남은 평생 마실 커피는 내가 다 산다. 전 이지선 이 기집애, 잘 됐구나 했어요. 아, 친구 이름은 지선이고 걔가 프리랜서 디자이넌데 그 일을 진짜 하고 싶어 했었거든요.

 

아무튼. 곧 정신이 든 언니가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자고 하더군요. 그러곤 대뜸 묻더라고요. 당신 정체가 뭐냐고. 저는 당황해서 얼굴이 벌게졌고 그냥 취준생이라고, 말했듯이 백내장 수술 뒤로 이상한 게 보여서 혼란스러운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죠.

 

잠시 뒤 언니는 머뭇거리다가 핸드백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어요. 제 눈으로 본 군인의 모습은 거의 옆모습이긴 했지만 네, 맞아요. 동일 인물이 확실했어요. 저는 그렇게 말해 줬죠. 언니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어요. 저도 따라 슬퍼졌죠. 이리저리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고요. 언니는 같이 울먹거리는 저를 보면서 그 사람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사람이라고, 목숨 걸고 나를 탈북시킨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러고는 제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지만 또 믿고 싶다고, 그리고 너무 보고 싶다고⋯⋯.

 

그런데 그때 사진을 바라보고 있던 제가 조금 다른 점을 발견한 거예요. 그 어깨에 견장 있잖아요. 그게 다르더라고요. 사진에는 별이 네 갠데 제가 본 모습에는 약간 컸나, 아무튼 별이 하나였거든요. 왠지 말해줘야 할 거 같아서 말했더니 언니가 글쎄, 꺽꺽거리면서 펑펑 울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요? 얼마나 희한한 그림이에요. 멱살 잡은 애가 이제는 멱살 잡힌 애 앞에 앉아서 꺼이꺼이 울고 있으니.

 

울음을 겨우 그친 언니가 했던 말은 이거예요. 뭐, 그 당시만 해도 사실 여부를 떠나서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긴 했지만 어쨌든 더 큰 별 하나를 달고 있다는 건 작은 별 네 개 ‘대위’에서 더 큰 별 한 개 ‘소좌’로 진급했다는 뜻이라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지금 잘 살아있는 거라고 했어요. 그러곤 제 이름을 묻더니 혹시 소현 님이 ‘그곳’의 ‘현재’ 모습을 본 게 아니겠냐고, 또 보이는 게 있으면 말 좀 해달라고⋯⋯. 저는 고개를 살며시 저었어요.

 

순간, 언니와 저는 동시에 외쳤답니다. 사진! 이라고요. 그런데⋯⋯. 사진엔 언니밖에 없더라고요. 정확히는 ‘서울’에 있는 ‘현재’의 언니 혼자와 카페 마당 그리고 몇몇 다른 사람들이었죠. 아무튼 언니의 그 사람과 갈대밭과 산봉우리와 구름 하늘은, 사진에서 찾을 수 없었던 거죠.

 

저흰 잠시 동안 울지도 않고 말도 안 하고 앉아 있었답니다. 언니는 언니대로 저는 저대로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시간이었죠. 조금 뒤 언니가 조심스럽게 연락처를 묻더라고요. 오늘은 너무 갑작스러워서 또 만나고 싶다면서. 따지고 보면 제대로 혼란을 겪는 사람은 저인 것만 같아서 제 마음은 영 내켜 하지 않았지만 제 손은 이미 전화번호를 알려 주고 있더라고요. 저도 답을 찾아야 했기에 제 손이 나섰던 거 같아요. 그리고 헤어졌죠.

 

 

 

언니가 대문을 열고 카페에서 나가더라고요. 원래 저도 조금 기다렸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뭔가가 정리가 안 된 채로 널브러진 거 같지 뭐예요. 뭐, 실제론 빵 냄새가 너무 나서 벗어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히히. 게다가 카페 자리만 쓰고 아니, 그 난리만 치고 그냥 나가긴 좀 미안하잖아요. 어쨌든 배도 고프고 해서 빵이랑 커피를 주문한 다음 다시 그 테이블에 혼자 앉았어요.

 

빵 한 입과 커피 한 모금 후에 전 생각하기 시작했죠.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사람 주위로 어떤 장면이 또 나타났다. 가만있어 봐⋯⋯. 이틀 연속에 똑같은 오후 시간이네. 그럼 앞으로 하루에 한 번씩 매일 이런다는 거야? 돌아버리겠네⋯⋯. 무슨 엑스-위민이냐고. 안 될 말이지만 차라리 눈이 아프거나 해서 그냥 부작용 치료를 받으면 될 일인데 대체 이건 뭐지?

 

그리고. 탈북이라니. 와, 그냥 동네 언니 같았는데 탈북민이었어. 또. 빨간 배지 달고 소좌로 진급한 군인. 그래, 북한군 맞지 뭐⋯⋯. 아무튼 언니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옆에 그 사람. 잠깐만. 이상하네. 뭔가 묘하네? 파주역에서 내린 그 남자. 세 식구. 부모님과 기와집의 모습과 갈색 군복 군인과 갈대밭의 모습, 언니와 파주역 그 남자⋯⋯. 혹시 그 남자도 탈북민일까? 진짜 그들을 통해서 본 가족과 풍경은 현재 ‘북한’의 모습일까?

 

그런데 사진으로는 찍히지 않는다는 건 내 눈으로만 보인다는 건데⋯⋯.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저는 어떠한 답이나 그 비슷한 것마저도 찾지 못한 채 남은 빵을 우걱우걱 씹어 삼키고 거의 다 식어버린 커피까지 모조리 목구멍에 쏟아부었어요. 무식하게 그러고 나서 나중에 집에 가는 길에 까스활명수를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체하기도 했겠지만 스트레스가 심했던 거 같아요.

 

그럴까요? 잠시 쉬었다 할까요? 하하,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이고 그땐 거의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아니니까요. 그나저나 우산 가져오셨어요? 오늘 저녁부터 비 온댔는데. 그러게요, 그냥 지금 왕창 내리고 저희 마칠 때쯤에 딱 그치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아, 저는 민석이가 파라솔만 한 우산 가져 나왔대서 같이 쓰고 가면 돼요. 마침 늦은 오후부터 저녁까지 이 근처에서 볼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네?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대체. 저흰 철저한 파트너라고요. 게다가 전 연하는 관심도 없어요!

 

 

 

그럼 계속할게요. 음⋯⋯. 그런데 그 뒤로는요, 한 일주일 정도요. 헷갈리게시리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매일 이른 오후쯤 사람 많은 곳 한 군데 이상 찾아가서 재차 테스트해 봤는데 본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진짜 황당하더라고요. 그래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때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답니다. 지선이한테도요. 믿든 안 믿든 간에 일단 내 편이니까 정말로 다 털어놓으려고 했었는데 막상 또 며칠 동안 멀쩡하니까 말하려는 마음이 점점 작아지더라고요.

 

사실, 중간에 무작정 하나원까지 찾아가려고도 했었어요. 일반 민간인은 방문할 수 없다는 걸 알아보지도 않고서 말이에요. 탈북민 아니, ‘북한이탈주민’이 더 권장되는 표현이죠. 아무튼 그분들과 어떤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근접했으면서도 다른 데만 빙빙 도는 건 저 스스로를 속이는 거였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니 안성버스터미널에서 아, 하나원이 안성에 있거든요. 그땐 안성에 있다는 거밖에 몰랐지만. 그냥 무작정 안성행 버스를 탔던 거예요. 어쨌든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돌아가는 티켓을 샀죠. 그리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다가 도중에 내렸어요. 공덕에 남북하나재단이 있는데 혹시 거기로 가면 그분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 뭐, 그냥 근처만 서성거리다가 집에 갔어요. 부모님이랑 제일 친한 친구한테도 말 못 하고 있는데 다짜고짜 어떻게 말할 수 있었겠어요?

 

그러다가, 언니와 만나고 정확히 일주일이 지난 날 아침에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며칠 동안 연락 없길래 아예 연락 안 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일주일 전보다 마음이 더 불편하더라고요. 왜냐면 언니는 부탁이 있어서 전화한 거였어요. 자기가 있는 동지회 모임에서 따르는 분이 계시는데 정말 오랫동안 애절하게 남편 소식을 수소문하는 분이라면서, 또 소현 님도 이번 만남을 통해서 뭔가를 더 알아낼 수 있지 않겠냐면서 만날 수 있겠냐고 묻더군요.

 

전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소리쳤어요. 이 언니 뭐야! 진짜 개민폐 쩌네! 라고요. 하하, 맞아요. 욕도 시원하게 한 방 날렸답니다. 그때까지도 꼬박꼬박 언니라고 부르면서 말이에요. 나중에 만나서 이름이랑 나이를 알게 됐을 때 진짜 두 살 언니여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억울하진 않잖아요? 아무튼 그 전화를 받았을 때는 원망스럽기까지 했죠.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는 저를 분명히 봤으면서 또 다른 부탁을 하다니. 근데 또 생각해 보니까 제 입장에서도 질질 끌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다음 날로 약속을 잡았죠.

 

저는 북한이탈주민인 아주머니 한 분과 마주 앉아 있었답니다. 제 두 눈으로 아주머니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이에요. 그나마 사이에 놓인 테이블이 큰 편이어서 서로 약간은 더 떨어져 앉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를 겨우 참아낼 수 있었죠. 어쨌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의사 선생님께 가서 “저는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