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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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마가 담배꽁초를 신발 밑창으로 비벼 뭉갰다. 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육교의 난간이 가늘게 떨렸다. 허공을 훔치면 물기가 묻어날 듯 습도가 높은 날이었다. 란마가 캭, 가래침을 뱉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슈트 차림의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란마가 침 묻은 턱밑을 손등으로 닦았다.
강수 확률 49%. 어젯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어본 날씨 어플에는 그렇게 표시돼 있었다. 젠장, 사람 헷갈리게. 그래서 비가 온단 거야, 안 온단 거야? 현관을 나서기 직전, 신발장 문을 열고 선 채로 란마는 짜증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습기를 머금어 구불거리는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란마가 맞은편 오피스텔 건물을 쏘아보았다.
루시, 그녀가 정확히 그 건물의 몇 호실에 거주하고 있는지는 란마도 알지 못했다. 창 너머로 보이던 거리의 풍경을 근거로 셈해볼 때, 사오 층 정도가 아닐까 추측하는 수밖에.
웹카메라에 비친 그 방은 작았고 천장이 낮았으며, 창문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미색 롤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고 나면, 그 밖으로 연무라도 낀 듯 희뿌연 도시의 하늘 아래, 쇼핑몰 옥상에 설치돼 있는 대형 광고판이 거대한 위용을 드러냈다.
창문을 등지고 서서 그녀는 속이 비치는 검정색 슬립 차림으로 몸을 흔들어댔다.
비제이 루시. 란마는 순간 뒷머리를 달구며 퍼져가는 열감을 느꼈다. 그건 란마의 눈에도 익은 광고판이었다. 대학 시절, 동아리 선배가 얻은 옥탑방에서도 사우론의 눈 같은 그것은 어김없이 올려다보였으니까. 금요일 밤, 넘치는 자유를 어떻게 써버려야 할지 모르겠는 젊은 수컷들은 캔 맥주를 홀짝거리며 남의 집 지붕을 넘나드는 길고양이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곤 했다.
시시한 청춘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들의 삶이 훨씬 흥미로워진 것도 아니었지만.
루시는 그날도 열두 시 정각에 라이브 방송을 마무리 지었다. 루시에게 붙여진 또 다른 닉네임은 신데렐라였다. 루시의 방송이 끝나는 즉시, 란마는 익스플로러에서 지도 페이지를 펼쳐 그녀의 주소지로 추정되는 장소를 탐색하고 나섰다. 그건 란마의 입장에서도 썩 흥미로운 조사였다. 두 시간여의 끈질긴 검색 끝에 란마는 그 일대를 직접 둘러보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루시가 기거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오피스텔의 주소를 찾아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