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너는 기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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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 어린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윤기린은 좋아할 기회가 싹둑 잘려버렸다. 강제 퇴임까지 1년 밖에 남지 않았고, 공무원 연금은 커녕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는 소식을 첫 출근날 새벽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 동기들하고 어울려 놀기도 하고, 캠퍼스 커플도 해 볼 걸. 생명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행동 외엔 공부만 했는데, 이게 뭐람. 지구 종말 같이 중요한 문제를 365일 전에야 발표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어쨌든 합격해서 발령받은 대전까지 와 있으니, 정부대전청사 문화재청으로 출근을 했다. 같은 부서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내선 전화가 울렸다. 정부 기관 답게 여전히 유선전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최숙 청장이 자기 사무실로 호출을 했다. 출근해서 인사를 먼저 드렸어야 했나 걱정을 하며 청장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다. 역시나 정부 기관 답게 수동으로 열어야 하는 나무문이었다. 청장은 기린을 반갑게 맞으며 가죽소파를 가리켰다.

 

“윤기린씨, 어떻게, 성심당은 가 봤어요?”

 

“예, 주말에 들러서 튀소 사먹었습니다.”

 

“잘했네요. 대전에 집은 구했어요?”

 

“일단은 관사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다행이구만.”

 

뭐가 어떤 면에서 다행이라는 건지 모르겠다.

 

“가족은 서울에 계시지요?”

 

“예.”

 

“스물한 살?”

 

“예.”

 

“딱이구만.”

 

뭐가 딱이라는 거지.

 

“오늘 뉴스 봤지요? 지구 종말.”

 

“예.”

 

“사실 우리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랬겠지. 자기들끼리만 뭔가 대책을 세우든 했겠지. 마땅히 대책이랄 것도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예에…”

 

“어제 나사가 포기 선언을 함으로써 확실해져 버렸지요.”

 

“예.”

 

“이제 과학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기린은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문화재청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고 신입을 붙들고 이런 얘길 하는 걸까. 차라리 성심당이 문화재청 업무와 관련이 깊을 것 같은데.

 

“우리가 마지막 희망입니다.”

 

“예?”

 

“지구 탈출이 우리 손에 달려 있어요.”

 

청장은 자신의 책상 옆에 비스듬히 세워진 문화재청 깃발을 결연하게 가리켰다. 짙푸른 남색 바탕에 금색의 궁서체로 대한민국 문화재청이라는 자수가 박혀있고, 테두리에도 금색 수술 장식이 달린 깃발이었다.

 

“문화재청요?”

 

“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 패닉이 오신 걸까.

 

“과기부가 아니고요?”

 

“아뇨. 과학은 포기했어요. 우리 문화재청, 정확히는 윤기린 씨 손에 인류의 생존이 달려 있습니다.”

 

“옉?”

 

기린은 놀라서 숨이 컥 막혔다. 제정신이 아닌 상사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 괴상한 대화를 어서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청장실을 나가고만 싶었다.

 

청장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아까부터 몇 차례 그러는 걸 보니 누군가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브릿지라고 알아요?”

 

기린은 천장의 석고보드 패턴을 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영국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카드 게임 아닌가요?”

 

“아뇨.”

 

이번에는 항상 허리를 두드리던 부친을 떠올렸다.

 

“아! 누워서 허리 들어올리는 체조 자세죠?”

 

청장은 모르면 그냥 아무말 말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장르 소설 플랫폼이에요.”

 

“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브릿지의 괴짜들이 처음 세운 가설이에요. 그런데 그걸 우리가 검토를 해보니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 거죠.”

 

장르 소설? 기린은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기린이 보기에 청장은 패닉에 빠진 게 틀림 없었다.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 말이나 막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류가 멸종을 앞 둔 마당에 소설 타령이라니. 아, 그냥 서울로 돌아갈걸. 남은 생에 직장 경험이나 해보자고 생각했더니 이게 무슨 꼴이람. 내 손에 인류의 생존이 달렸다니. 기린은 피식 쓴웃음이 나왔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청장이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

 

“아, 오셨군요!”

 

기린도 따라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니 은발의 노파가 있었다. 쪽진 머리에 감색 개량 한복을 차려 입은 노파는 형형한 눈빛으로 기린을 살피더니 맞은 편 소파에 반듯이 앉았다. 거의 어깨 너비 만큼이나 긴 은비녀의 잠두에 오방색 실이 나풀거렸다.

 

“인사드려요. 인간문화재 김선정 선생님이세요.”

 

“안녕하세요.”

 

기린은 여전히 의자에 앉지 못한 채로 고개를 숙였다.

 

“앉거라.”

 

노파가 쇳소리의 음성으로 말했다. AI에게 음성 명령을 내리듯이, 혹은 타인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마법 주문을 걸듯이. 시키는대로 의자에 엉덩이를 걸친 기린은 곁눈질로 청장을 살폈다. 기린의 표정을 본 청장은 이분이 누구신지 정녕 모르느냐는 투로 설명을 했다.

 

“김화금 선생님의 신딸이자 서해안 대동굿 전승자이십니다.”

 

기린은 여전히 노파가 어떤 분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아,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청장은 그런 기린을 한심해하며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선생님은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무속인으로서…”

 

노파가 왼손을 살짝 들어 청장에게 손바닥을 보였다. 그 손동작에 어떤 신묘한 힘이라도 실려 있는 듯이 청장은 하던 말을 즉각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기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